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크게 스타트업·투자자·정부·교류기관 등 4개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크게 스타트업·투자자·정부·교류기관 등 4개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최근 20억원 규모로 투자금을 유치한 A 스타트업 대표는 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다. 경쟁 스타트업들이 많게는 100억원대 투자를 받는 분위기여서, 대중에게 20억원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로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는 “투자 유치는 물론 우리 회사에는 경사지만, 홍보할 만큼 큰 투자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과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왔던 중후장대 산업의 발전 엔진이 멈추고 있다는 우려 속에서도, 스타트업 생태계만큼은 가파르게 팽창하고 있다.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10월 2일 한국무역협회 행사에서 “2018년 현재 한국 스타트업은 긍정적으로 커나가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투자가 불붙고 있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벤처 투자액은 1조6149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1조16억원)보다 61.2% 증가한 수준이다. 하반기 전망도 긍정적이다. 중소기업벤처부는 올해 벤처 투자액이 3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잠재력을 본 자본가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사업가가 공존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생태계를 구성하는 창업·투자·정부·교류기관 등 4대 주요 영역을 분석했다.


1│생태계의 주인공, 스타트업

스타트업 생태계의 주인공은 창업 초기 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start-up)이다. 스타트업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로, 대개 창업 5년 전후의 신생 기업을 의미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기술 집약적인 인터넷 기반 기업들이 주류다. 지금은 증시에 상장한 시가총액 10조원 규모의 게임 회사 넷마블, 2조원 규모의 펄어비스 등의 회사도 작은 스타트업에서부터 몸집을 불렸다.

국내에서는 과도한 규제로 스타트업이 진출하는 사업의 분야가 한정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탄생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창업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면, 한국에서는 ‘불법’의 낙인을 벗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지난해 아산나눔재단이 발표한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는 세계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57곳은 한국의 규제를 적용하면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3곳은 아예 사업을 시작할 수 없고 44곳도 일부 조건을 바꿔야만 규제를 통과할 수 있었다. 차량 공유 업체 우버(미국)와 디디추싱(중국)은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는 공중위생관리법에 저촉되는 식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정부에서 허가한 분야에 스타트업들이 몰려 과당경쟁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금융 분야의 경우, 해외에서는 문제 될 부분을 골라 규제하고 나머지 영역에서는 자유롭게 신사업을 하도록 허용한다. 하지만 국내 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것을 금지하고 예외 사항을 나열하는 방식이어서 기존 법에 신사업을 끼워 맞춰야 한다. P2P(개인 간) 대출회사 ‘8퍼센트’가 지난 2015년 대부업체로 등록하지 않고 대출을 중개했다는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방송통신위원회를 통해 사이트 폐쇄 조치를 내렸다. 당국이 기존 금융법으로 P2P 대출 사업 모델을 정의할 수 없어, 대부업법에 따라 규제하기 때문이다.

O2O(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결합)를 포함한 서비스업은 국내에서는 시장 질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다. 승차 공유(카풀) 서비스 ‘풀러스’는 한정된 영업시간을 극복하고자 출퇴근 시간을 이용자가 고를 수 있도록 하려다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딪혔고, 서울시는 경찰에 풀러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풀러스는 경영난을 겪다가 결국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2│스타트업의 파트너, 투자사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스타트업 다음으로 주목받는 구성원은 투자사들이다. 실적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창업 초기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투자사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을 간접 지표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금 유치는 운영 자금을 조달받는 것과 더불어 성장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투자사에 대해 파악하려면 우선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을 알아야 한다. 스타트업의 성숙도에 따라 연계되는 투자사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창업 극초기 단계에서 지원하는 ‘엔젤 투자자’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금·경영 지원을 해주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스타트업에 주식을 투자하는 기관·자본인 ‘벤처캐피털(VC)’ 등으로 투자사를 분류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성장 과정에서 투자를 유치하는 일반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창업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고자 할 때는 엔젤 투자자로부터 투자받아 회사를 세운다. 이후 어느 정도 회사의 형태를 갖추면 액셀러레이터가 스타트업에 소규모 지분 투자를 한다.

액셀러레이터는 성장성 있는 창업 초기 기업을 발굴하고 이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멘토링, 공간 지원 등을 해준다. 프로그램 끝나면 VC와 대중을 대상으로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도록 데모데이를 진행한다. 후배를 육성하고자 하는 성공한 벤처 사업가, 지방자치단체의 창조혁신센터 등이 액셀러레이터로 나선다. 프라이머, 스파크랩스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16년 11월 액셀러레이터 제도가 도입된 후 19개월 만에 중소기업벤처부에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는 100개를 돌파했다.

액셀러레이터를 거쳐 어느 정도 성장한 스타트업이 사업 확장을 위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는 단계에 만나는 파트너가 VC다. VC는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하고 회사의 성장에 따른 평가 차익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낸다. 흔히 회자되는 수백억원대의 굵직한 투자는 주로 VC에서 나온다. 지난해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설립한 VC인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600억원)와 아주그룹의 아주IB(200억원)는 숙박 O2O 스타트업 ‘야놀자’에 총 80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이 유치한 투자 금액 중 가장 큰 규모다.

VC와 액셀러레이터 모두 스타트업의 잠재력을 평가하고 투자한다. 그렇다면 VC와 액셀러레이터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액셀러레이터는 VC보다 ‘육성’에 더 집중하고, VC는 ‘이익 회수’에 좀 더 치우친다. 하지만 최근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VC가 늘어나면서 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는 하다.

단 국내 VC들이 스타트업의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를 알선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개선할 부분으로 꼽힌다. 스타트업의 엑시트 방안은 인수·합병(M&A)와 IPO, 프로젝트 종료, 장외 매각·상환 등 크게 네 가지다. M&A 비중이 높은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M&A를 통한 엑시트는 작년 11월 기준 3.37%에 불과했다(한국벤처캐피탈협회).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과 IPO를 활발히 주선하는 해외 VC들과 달리, 정부의 벤처 투자금을 받아서 집행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국내 VC는 대부분 정부의 벤처 지원 자금을 받아 투자하고 있어,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펀드 한 건당 30억원 이내로 분산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지난 6월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스타트업 M&A는 지속적인 답보 상태”라고 지적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 VC가 아닌 일반 VC의 경우 돈만 투자할 뿐이지 스타트업을 육성하지 못한다”면서 “투자한 회사가 어려우면 그냥 죽게 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3│모태(母胎)펀드로 돈 푸는 정부

규제로 몸살을 앓는 스타트업은 자금 지원에 있어서는 정부에 크게 기대고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강력한 ‘전주(錢主)’이기 때문이다. VC들도 정부 지원금을 받아 투자를 집행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지원금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을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키면서 부처 이름에 ‘벤처’를 포함했을 만큼 의욕적이다.

중소기업벤처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모태펀드를 통해 1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스타트업 지원에 사용할 방침이다. 모태펀드는 개별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결성된 각종 투자조합이나 창업투자조합에 투자하는 펀드에 투자하는 자금이다. 출자 기관은 중소기업벤처부, 특허청 등 정부 기관이고, 한국벤처투자가 자금 관리를 담당한다.

정부 지원 자금은 창업 초기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단비 같은 존재다. 창업가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개선됐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7’에 따르면 스타트업 창업가 116명은 평균적으로 ‘정부의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 기여도(role)’라는 항목에 56.4점을 줬다. 이는 전년 대비 12점 이상 높아진 수준이다. 창업가들은 임금 보조금과 벤처 펀드 조성을 스타트업에 가장 도움이 되는 정부 지원책으로 꼽았다.

이 같은 훈풍에 힘입어 창업가 116명 중 절반(48.3%)이 ‘내년에는 올해보다 사업 환경이 나아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긍정적인 전망을 한 창업가(23.3%)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4│스타트업 모아주는 교류기관

스타트업 생태계의 마지막 조연은 스타트업들 간 교류를 돕는 ‘교류기관’이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가 대표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주도로 2013년 만들어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분야의 선도 기업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 네트워크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는 정기적으로 콘퍼런스 등 행사를 열어 스타트업들의 교류의 장을 주선한다. 스타트업 해외 진출과 미디어 홍보 등도 돕는다.

스타트업에 공간을 대여해주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공유 사무실)’는 최근 창업가들 간 교류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창업가들이 따로 사무실을 꾸리고 사업을 시작했던 것과 달리, 요즘 창업가들은 위워크, 패스트파이브, 현대카드 스튜디오블랙 등 코워킹 스페이스를 찾는다. 은행권이 출자한 청년 창업재단 디캠프(D.CAMP)는 코워킹 스페이스 기능에 더해 교류기관 역할도 하고 있다.

코워킹 스페이스는 회의실을 입주 업체들끼리 공유하도록 해 비용 부담을 줄였다. 또 회사들 간 소통 행사를 마련해 협업을 주선하기도 한다. 코워킹 스페이스의 위치도 장점으로 꼽힌다. 선릉역, 역삼역, 강남역, 광화문역 등 대개 접근성이 좋은 역세권에 위치해 있어 사업 파트너들과 미팅을 잡기 편리하다. 그 외 스타트업 생태계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전문 미디어들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축이다.


plus point

한국의 ‘넥스트 유니콘’ 6곳

이민아 기자

한국에서 탄생한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회사)’은 2014년 이후 L&P코스메틱(2018년) 단 한 곳뿐이었다. 쿠팡이 2014년 5월, 옐로모바일이 같은 해 11월 글로벌 유니콘에 이름을 올린 후 4년 만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유니콘 기업 리스트에 오른 전 세계 236개사 중 한국 기업은 이 3곳(1.2%)을 제외하면 없었다.

희망이 없다며 좌절할 필요는 없다. 유니콘 등극을 앞둔 한국 스타트업들이 비상(飛上)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야도 배달·송금·AI·앱서비스 등 다양하다.

배달 앱 서비스 ‘배달의민족’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14조원 규모의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의 대표 기업이다. 이 회사는 중국계 벤처캐피털인 힐하우스캐피털 컨소시엄과 미국 골드만삭스 컨소시엄으로부터 각각 570억원, 4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액은 약 1464억원이다.

간편 송금 앱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올해 기업 가치 1조원 돌파를 예고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올해 6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세콰이어 차이나로부터 약 4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누적 투자액이 약 1300억원을 기록했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해 글로벌 컨설팅사인 KPMG가 매년 집계하는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가운데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핀테크 업권의 절대 강자다.

식자재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는 57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번 투자는 ‘유니콘 감별사’로 불리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VC 세콰이어로부터 받아, 컬리가 성장성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따라붙었다. 밤 11시까지 주문할 경우 채소와 과일 등을 다음 날 아침 7시 이전에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국내 AI 의료영상진단 기업 ‘루닛’은 CB인사이츠에서 발표한 ‘100대 AI 기업 랭킹’에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루닛은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흉부 X선 영상을 분석해 그 결과로 폐암 결절을 검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간 의료진이 직접 환자의 흉부 X선 영상을 보고 폐암 결절을 찾아내야 했는데, 루닛의 AI 기술을 활용하면 의료진이 놓치는 결절도 찾을 수 있다. 폐암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는 기술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국내 스타트업도 있다. 인도의 ‘국민 앱’인 ‘트루밸런스’를 개발한 ‘밸런스 히어로’가 대표적이다. 트루밸런스는 스마트폰 선불폰의 사용량 등 요금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다. 인도 스마트폰 사용자의 90%가 선불 요금제를 사용하므로 잔액 확인, 충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트루밸런스는 지난 2014년 인도에서 출시 후 3년 만에 다운로드 수 5000만 건을 달성했다.

중동을 석권한 영상통화 서비스 ‘아자르’를 개발한 ‘하이퍼커넥트’도 순항하고 있다.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발생하는,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강자다.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는 아자르를 올해 초 ‘2018 주목할 한국 1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아자르는 현재 230개 나라에서 19개 언어로 서비스 중이고, 하루 평균 이뤄지는 영상통화가 6000만 건에 달한다. 올해 4월 기준 누적 다운로드는 2억 건을 넘었다. 하이퍼커넥트는 올해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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