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장 미슬토 회장 출신│1972년 생, 일본 사가현 출신 재일교포 3세,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창업│야후재팬, 일본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겅호 등 100개 투자│11국 120여 스타트업에 약 2000억원 투자 개인 자산│ 2조4000억원(21억달러, 2014년‘포브스’ 추정)
손태장 미슬토 회장
출신│1972년 생, 일본 사가현 출신 재일교포 3세, 도쿄대 경제학부 졸업
창업│야후재팬, 일본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겅호 등 100개
투자│11국 120여 스타트업에 약 2000억원 투자
개인 자산│ 2조4000억원(21억달러, 2014년‘포브스’ 추정)

손태장(孫泰蔵·46, 일본명 손타이조) 미슬토(Mistletoe) 회장을 인터뷰한 것은 지난 9월 3일 싱가포르 시내에서였다. 손 회장은 10월 18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열리는 ‘이코노미조선 글로벌 콘퍼런스’의 기조 연설자로 참석한다. 그에 앞서 미슬토 싱가포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재일 교포 3세인 손태장 회장은 일본 최고 부자인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의 친동생으로 열다섯 살 터울이다. 손태장 회장은 자수성가한 재외 동포 사업가 가운데 한국 국적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손태장 회장은 일본 최대 온라인게임업체인 겅호(GungHo)온라인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2014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손 회장의 자산 규모를 2조4000억원(21억달러)으로 평가했다. 2016년 겅호 회장에서 물러난 손 회장은 작년 도쿄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본격적인 투자자로 변신했다. 미슬토는 본인이 세운 벤처 투자사다.

손태장 회장은 “주식처럼 변동성이 큰 자산이 많아 정확한 규모는 나도 잘 모르지만 (투자 여력이) 수천억원(수백억엔) 정도는 더 있다”고 했다. 그는 “투자할 때 사업 계획서는 보지 않고 오직 창업자에게 세상을 바꿀 기술과 열정이 있는지만 본다”며 “테크놀로지가 변화·진화하면서 마법과 같은 세상이 예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투자한 벤처들은 난민 캠프에서 물 걱정 없는 샤워를 가능케 하는 여행용 가방 크기의 물처리 시스템, X레이·CT 자료에서 암세포를 찾는 인공지능, 우주 쓰레기를 처리하거나 집 안에서 곡식을 키우는 기술 등 한결같이 사회적 난제에 도전한다.

손 회장은 올해 초 한국 스타트업에 처음 투자했다. 클래스팅이라는 기업이다. 손 회장은 “학교 교사들이 온갖 잡무 탓에 정작 좋은 교육을 위한 교재 연구를 못 하는 게 현실인데, 교사가 창업한 이 스타트업은 다른 교사가 올린 좋은 교재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서 “앞으로 본격적으로 한국 벤처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또 투자에 대한 위험부담에 대해 “투자금을 남에게 빌리지 않고 내 개인 자산으로만 하기 때문에 괜찮다. 손해 보거나 실패하는 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세계 120여 스타트업에 2000억원(200억엔)을 투자했다”며 “앞으로 죽을 때까지 내가 가진 돈을 모두 테크놀로지 벤처에 투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미슬토 사무실은 쇼핑몰부터 매력적인 부티크, 아기자기한 거리시장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는 부기스(Bugis) 지역에 있었다. 듀오타워(Duo Tower)라는 고층 주상복합빌딩의 5층에 있는 공유오피스 스펙트럼(Spectrum) 안이었다. 그는 바깥에서 다른 일을 보다가 인터뷰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도착했다. 청바지에 검은색 티셔츠 차림, 트렌디한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자기 회사 직원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직원들이 손 회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일에만 열중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인터뷰하기 며칠 전 일본 언론에 난 ‘미슬토의 도쿄 오피스 폐쇄’ 이야기로 질문을 시작했다.


1 일하는 방식의 개혁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오는 변혁의 시기, 오피스는 필요없다

최근에 미슬토의 400평짜리 도쿄 오피스를 아예 폐쇄했다.
“2~3년쯤 전부터 ‘오피스라는 게 정말 필요한 걸까?’를 생각해 왔다. 요즘 자주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일은 현장(現場)에서 하는 게 가장 좋다’이다. 미슬토를 예로 들면, 우리는 기업가를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기업가가 있는 곳으로 가는 편이 좋다. 그곳이 우리에게는 현장이니까. 세계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에 투자 하고 싶다면, 그 문제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우리가 가는 쪽이 정보를 얻거나 네트워크를 넓히는 데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본사의 의미가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특히 도쿄라든지 대도시는 출퇴근 러시가 대단하지 않은가. 다들 편도에 1~2시간씩 쓰면서 굉장히 괴롭게들 다니고 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다. 아침부터 사람을 너무 소모시킨다. 인간의 ‘스트레스’라는 것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그렇게까지 해서 사무실에 오는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도쿄 오피스를 폐쇄한 계기였다.”

정말 사무실은 필요 없나.
“1996년 처음 회사를 설립한 이후 연쇄창업자(Serial Entrepreneur)로서 수많은 회사를 만들어 왔다. 22년간 경영자로 살아왔다. 그러면서 오피스의 기본 방향에 대해 꽤나 많은 시행 착오를 겪었다. 경영하던 회사 중에는 규모가 커진 곳도 있고 순식간에 끝난 곳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큰 빌딩 한 동 전체를 사무실로 쓴 적도 있었고 아파트의 방 한칸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3년 전 도쿄 가이엔마에(外苑前)의 빌딩에 나의 핵심 회사 미슬토의 400평짜리 사무실을 냈다. 단순한 사무실은 아니었다. ‘세계를 바꾸는 이노베이터들을 돕는 베이스 캠프’였다. 세계적인 과제 해결에 노력하는 각종 커뮤니티를 위해 무료 교류 공간을 마련했다. 대규모 행사를 여는 사무국 공간도 마련했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창업 이벤트 ‘슬러시’의 도쿄 행사를 위한 직원도 여기 있었다. 그 외에도 스타트업 전용 공간, 공용 미팅 룸, 누구나 쓸 수 있는 인터넷 연결 책상 등을 마련, 우리뿐 아니라 많은 스타트업·기업가들이 일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과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특히 최근 1~2년은 나 스스로가 세계 현장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도쿄 오피스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미팅은 전자회의 시스템으로, 사내 연락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툴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현재는 싱가포르에 거주하지만 이곳 사무실에 오는 일도 많지 않다. ‘워킹 애니웨어(working anywhere·어디에서 일해도 좋다)’라는 제도도 도입했다. 미슬토 직원 상당수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무실 밖에서 일할 때가 많다. ‘사무실이 없는 쪽이 사고(思考)가 정지되지 않고 더 창의적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다. 모두와 만나고 싶다면, 행사나 만찬회를 열면 된다.”

‘사무실이 있고 일단 모여 있는 게 안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오는 정도의 큰 혁의 시기다. ‘브라질에선 이런 기술이 있고 이런 도전을 하고 있어’라는 식의 정보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곧바로 알 수 있다. 바로 연락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거나 투자를 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을 통해 이노베이션이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 일의 방법과 내용이 바뀐다. 그런데 기술이 변하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지만 우리의 행동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ancy)’ 때문이다. 익숙해진 것은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한 것이다. 일본어에 ‘게모노미치(獣道)’라는 것이 있다. 동물이 한 번 지나가기 시작해 풀이 쓰러지고 길이 나면 다들 거기로만 다니는 것이다. 매번 지나가면서 풀을 헤집기가 번거로우니까 거기로 다니는 게 편한 것이다. 나중에 비가 와서 지형이 변해버려 그 길보다 다른 길로 가는 게 빠르더라도 ‘아냐, 그냥 지금까지 갔던 길이 좋아’라고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왜 싱가포르로 이주했나. 싱가포르 오피스를 놔두는 이유는.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허브 같은 곳이다. 세계의 과제를 해결하고 사회에 충격을 주는 스타트업을 지원하기 위해 아시아 거점을 여기에 두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도 스펙트럼(SPECTRUM)이라는 파트너도 찾았다. 스펙트럼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창업자·스타트업·투자가·정부 등을 연결하는 비즈니스 클럽이다. 운영사는 싱가포르에서 컨설팅·투자를 하는 골든 이퀘이터 그룹(Golden Equator Group)이다. 이노베이션을 일으키려면 투자가와 기업인뿐 아니라 과학자나 디자이너, 정부 관계자, 언론인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중요하다. 거기에서 서로의 경험이나 지식·인맥을 제공함으로써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그러한 커뮤니티를 ‘스펙트럼’ 내에서 만들어 가려고 한다.”


손태장 회장은 AI 시대의 교육과 인재육성법을 묻는 질문에 ‘21세기 스킬 4C’라고 쓰여진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4C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상상력), 크리티컬 싱킹(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법),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이다. 사진 최원석 편집장
손태장 회장은 AI 시대의 교육과 인재육성법을 묻는 질문에 ‘21세기 스킬 4C’라고 쓰여진 노트북 화면을 보여줬다. 4C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상상력), 크리티컬 싱킹(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법),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이다. 사진 최원석 편집장

2 인공지능(AI)시대에 살아남기
화이트칼라 대량 실직에 대비하라

인공지능(AI)시대의 화이트칼라 대량 실직 위험을 얘기한 적이 있다.
“AI 시대의 변화는 빠른데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는 속도가 너무 느리면, 거대한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그 마찰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는데, 한 예가 ‘실업’이다. 로봇·AI가 점점 인간의 일을 대체하게 된다. 일을 잃게 된 사람들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로 전직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 왔던 방법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새 일을 배우는 게 귀찮다. 하지만 기존의 일을 할 곳이 없어지게 된다. 그럼 ‘난 사회에서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해버리게 되고 점점 위축돼 자살자까지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로의존성’을 늘 경계해야 한다. ‘스스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 나가는 것은 괴로운 일이 아니다’라는 마인드셋을 가져야 한다.”

정말 화이트칼라 대량 실직이 일어날까.
“최근 몇 년간 AI·로봇이 사람 일을 빼앗을 것이라는 논의가 활발했다. 전문가 중에는 기존 일자리 중 70~80%가 사라질 것이라 보는 이도 있다. 육체 노동자보다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주로 사라질 것이다. 변호사·의사 등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직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물밀듯 밀려들 것이다. 도시에서도 일자리가 적어 슬럼이 형성되고 치안이 악화하면서 테러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도시화의 문제는 미국 유명 학자들도 이미 지적하고 있지만, AI가 내 상상을 뛰어넘는 기세로 진화하고 있어 학자들 지적보다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앞으로 각국 정부는 AI에 따른 실업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그 대책의 하나로 ‘일자리 나누기 법’ 같은 것이 제정되지 않을까. 하루 8시간 노동을 4시간씩 둘로 나누거나 초과근무 수당을 억제해 한 명분의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개인의 삶의 질은 퇴보할 수도 있을 텐데.
“AI 시대에 가계 수입 감소가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수입이 반감하면, 식비·교육비 등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 가처분 소득을 유지할 만한 극적인 지출 삭감이 가능하다면,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손해보험 회사 조사에 따르면 집과 차비, 보험료, 수도 광열비, 통신비가 생활비의 42%를 차지한다. 이 비용을 80% 정도 줄이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여기에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다. 자율주행차와 퍼스널 모빌리티 이용으로 자동차 관련 보험료 지출을 극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더 효과적인 것이 주거비 삭감이다. 그래서 새로운 마을을 제로 베이스에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인프라에서부터 교육·의료 복지 같은 소프트웨어까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21세기형 도시를 형상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사회의 큰 과제를 해결하는 시범 도시의 모습을 본다면, 다가오는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도시를 구상하고 있나.
“도시라는 것은 그 시대 교통 기술의 영향을 받는다. 20세기는 자동차·철도가 한꺼번에 발달했다. 도시 중심에 역이 있고 도로가 격자 꼴로 정비돼 있다. 앞으로는 자율주행차나 드론 기술의 발전에 맞춰 도시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도시는 사람보다 자동차 위주이지만, 베니스는 그렇지 않다. 거리에 차가 들어오지 못하고 이동할 때는 수상의 곤돌라를 타거나 걸어야 한다. 그래서 거리가 도보 스케일로 설계돼 있다. 무거운 짐은 수로를 이용해 나른다. 운반용 트럭은 없다. 수로와 육로가 나뉘어 있어 사람과 차의 충돌사고 걱정도 없다. 곤돌라 대신 자율주행차, 물길 대신 지하도가 있는 도시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공상이 아니다. 이미 상자 1개 크기의 무인 자동배달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지하에 수도관 크기의 통로를 파서 AI를 탑재한 소형 운반 로봇이 그 통로를 다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땅 위의 화물 트럭이 없어진다. 세계의 대도시 교통 정체 원인은 화물 트럭에 있다고 한다. 화물 트럭이 불필요해지면 정체와 운전자의 인력난, 사망 사고가 줄어들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과 베니스의 도시 모델을 조합하면, 오늘날의 물류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손태장 회장은 미래를 바꾸려면 학교 교육부터 달라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내일 죽어서 내 아이에게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다면‘세계는 네가 바꿀 수 있다’라고 전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최원석 편집장
손태장 회장은 미래를 바꾸려면 학교 교육부터 달라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내일 죽어서 내 아이에게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다면‘세계는 네가 바꿀 수 있다’라고 전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최원석 편집장

3 AI 시대의 교육과 인재육성
논리적 과제 해결의 시대는 끝났다

재작년 ‘알파고’ 사건이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그는 이 말을 듣고 노트북을 열더니 ‘21st century skills 4C’라고 쓰인 화면을 보여줬다.)
“21세기 스킬인 ‘4C’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첫번째는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상상력), 다음은 크리티컬 싱킹(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법)이다. ‘정말 그런 걸까?’라고 기존 상식을 늘 의심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시작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가는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스킬도 중요하다. 단순 지식은 가치가 없어지는 시대다. 지금까지 ‘스마트한 사람’의 정의는 지식을 많이 갖고 있어 그 지식을 적절한 때 끄집어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건 앞으로 AI쪽이 훨씬 잘하게 될 것이다. 그것보다는 지금까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만들지 않았던,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힘, 창의성(Creativity)이 중요해진다. 너무 많은 지식은 오히려 창의성을 발휘하는 데 방해가 된다. 많은 지식을 가질수록 그것에 젖어버리니까. 이것도 경로의존성이다.”

알파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작년 10월이었다. 알파고보다 더 강력해진 ‘알파고 제로’ 개발에 관한 논문이 발표됐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알파고 제로는 전신인 알파고처럼 인간의 과거 대국 데이터를 학습하지 않는다. 바둑의 기본 룰만 가르치고 다음은 AI가 ‘자율’ 학습으로 대국을 반복 숙달하는 방법이 채용됐다. 과거의 대국 데이터를 주지 않았는데도, 인간 챔피언을 꺾은 알파고와 대전시킨 결과 100승 0패로 알파고 제로가 압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 개발자인 데이비드 실버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는 ‘사람들은 뛰어난 AI를 만드는 데 빅 데이터와 거대한 컴퓨팅 파워가 필수라 생각하지만, 알파고 제로는 과거의 알파고보다 적은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로 개발됐다. 우리는 바둑의 타블라 라사(tabula rasa)를 발견했다’라고 했다. 타블라 라사는 라틴어로 ‘글자가 적혀 있지 않은 서판’이다. 사람에게는 원래부터 어떤 관념·원리가 새겨져 있지 않다는 생각을 철학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교육에는 두 생각이 있다. 기존의 지식·관념을 교사가 학생에게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계통주의’와 어린이의 직감이나 감각을 중시하고 체험과 경험을 통해서 아이의 발달을 촉진하는 ‘경험주의’다. AI도 교육에 대한 두가지 생각을 골고루 활용하고 있는데, 인간의 학교 교육은 여전히 계통주의에 편중돼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

앞으로의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세계에는 논리적 사고력이 뛰어난 엘리트들도 풀지 못하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존재한다. 정치·경제 상황에서 보듯 세계는 상호 관계하면서 많은 요소가 얽혀있는 복합계다.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과제 해결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 ‘네? 지금부터가 과제 해결의 시대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 있다. 사실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과제를 새롭게 ‘설정’하는 힘이 중요하다.”

본인의 자녀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아직 어려서 학교에는 가지 않고 있지만, 갈 나이가 되더라도 전통적인 초·중·고, 대학에는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홈스쿨링’을 할 생각인가요?’라는 말을 듣는데, 집에서 가르칠 계획도 없다. 세계 전체가 배움의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곳에 가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의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에서는 학교가 결정되면 그 학교밖에 갈 수 없다. 게다가 선생님도 거기에 어쩌다가 있게 된 선생님밖에 고를 수 없다. 어쩌다가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면 행운이지만,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세계 곳곳에 여러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니,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고르고, 디자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배우는 환경에 대해서는 될 수 있는 한 자유도를 주고 싶다. 진심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 이거 공부하세요’라고 해서 가르침을 받게 되면 흥미가 있던 것도 싫어지게 될 수 있지 않나. 그럴 거면 차라리 안 가르치는 게 낫다. 학교는 무리해서 가르치려고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곳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는 않아’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부 재료는 얼마든지, 어디에나 있으니까. 사회에 대한 일이나 경제나 회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아이가 정말 생각한다면, 내가 일할 때 같이 데려가면 된다. 스포츠가 좋다고 하면 스포츠를 하러 가면 된다.”

아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
“‘내가 내일 죽어서 한 마디밖에 말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내 아이에게 무슨 말을 전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한다. ‘세계는 네가 바꿀 수 있다’라고 전하고 싶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러한데, 대기업, 재벌기업에 들어가면 자기가 회사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사장도 자기가 회사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차원을 높여 ‘나라를 바꿀 수 있다’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어떨까. 투표한 것만으로 나라가 정말 바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들 ‘내가 뭔가를 해봤자 어차피 안 바뀐다’고 생각한다.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포기해버리는 것밖에 없다. 포기해버리는 것밖에 없다는 것은 ‘나는 적당히 살아갈 수밖에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도 ‘정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들 노력하기 시작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열심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공부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점점 앞으로 나아가고, 자기 스스로 길을 열어가고, 그러면 역시 한번뿐인 인생을 진지하게 즐겁게 살 수 있다. 부모는 아이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나.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돈이 많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풍족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뭔가 자신이 정말로 몰두해서 ‘즐겁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없다. 친구랑 열심히 해서 만약 잘 안 되더라도 ‘그래도 같이해서 좋았어, 다음에 또 열심히 해 보자!’라고 말하거나, 잘되면 잘되는 대로 또 ‘예이!’ 하며 즐거워 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내 아이가 나중에 눈을 감을 때 ‘아 뭔가 굉장히 즐거웠어’ ‘여러분 덕택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것을 어떻게 실제로 아이가 생각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어릴 때부터 뭔가를 해 보면서 자기가 한 일 때문에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는 경험을 점점 쌓게 하면 된다’라고 말하겠다. 작은 것이라도 괜찮다. 작은 것이라도 바뀐다면 ‘(내가) 바꿨다!’라고 아이는 생각할 것이다. 이런 것을 계속하게 된다면 ‘나도 세상을 바꿀 수 있겠어’라고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런 환경을 아이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


4 기회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세렌디피티의 힘을 믿으라

창업 성장의 기회를 어떻게 찾을 수 있나.
“‘세렌디피티’라고 하는 게 있다. 우연히 일어난 놀라운 만남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좋은 만남’을 세렌디피티라고 말한다. 세렌디피티를 컨트롤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렌디피티가 많이 일어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다든가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걸 구체적으로 말하면 ‘플랜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계획을 세우면 사람은 계획을 지키고 싶어하게 된다. 인간은 여러 변수를 한꺼번에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세계를 단순화하게 된다. 단순화한 상태에서 세운 계획이기 때문에, 실제의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일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5년 전을 되돌아보면, 지금의 이런 생활을 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나, 그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 나의 행동이 변하는데, 이런 것은 미리 계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험사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인생의 50년 계획을 세웁시다’라고 말해봤자 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계획을 세우고 그것만 따른다는 것은, 주변에서 많은 세렌디피티 시그널이 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마용 말의 눈가리개를 스스로 달고 마는 것과 같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꼭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plus point

손태장이 아버지에게 받은 세가지 가르침
상식 의심하기, 책임 부여하기, 폭풍 칭찬

최원석 편집장

손태장(가운데)과 손정의 형제. 열 다섯살 터울이다. 형제의 아버지인 손삼헌(오른쪽). 사진 CEO BANK·니혼게이자이신문
손태장(가운데)과 손정의 형제. 열 다섯살 터울이다. 형제의 아버지인 손삼헌(오른쪽). 사진 CEO BANK·니혼게이자이신문

손태장(일본명 손타이조) 회장은 규슈 사가현의 시골에서 4형제의 막내로 자랐다. 형(손정의)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족도 기업가가 많다. 아버지인 손삼헌도 같은 사업가였다. 손태장이 초등학교 2, 3학년 때 아버지는 “오늘 뭘 배우고 왔니”라고 물었다. 그가 “분수의 나눗셈을 배웠다”고 들뜬 목소리로 얘기하자, 아버지는 “타이조, 학교 선생님은 가끔 거짓말을 가르친다”고 했다. “상식을 의심하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지혜를 짜내라”는 의미. 손태장이 언급한 21세기의 스킬 ‘4C’에서 크리티컬 싱킹이었던 셈이다. 아버지의 첫번째 가르침은 ‘상식을 의심하라’였다. 그의 형(손정의)도 그런 교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두번째 가르침은 ‘책임 부여하기’다. 손태장이 열 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파친코가 신규 출점을 했다. 홍보 전단지를 만들게 됐는데, 현지 인쇄 회사에서 나온 제안이 너무 평범했다. 아버지는 손태장에게 그림을 맡겼다. 손태장은 ‘내가 그린 전단지에 우리 가족의 삶이 걸려 있다’고 여기고 비장한 각오로 고민했다. 아버지와 의논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너한테 맡겼으니, 네 마음대로 그려라’라고만 했다. 옥구슬에 사람들이 휩쓸리는 광경을 그렸고, 그 그림이 그대로 실렸다. 오픈 당일 파친코에 손님이 쇄도했다. 낯선 아저씨들이‘어떤 광고지보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알기 쉽다’ 등의 칭찬을 했다. 손태장은 “전단지 때문에만 성공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가족에게 내가 뭔가 도움이 됐다고 느꼈다. 보통이라면 ‘무리다’라고 생각해도 이러한 성공 체험이 있으면 ‘가능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노베이터’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체험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있기 때문에 보통이라면 못할 것처럼 보이는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 손태장은 “내 경우는 아버지가 그 기회를 준 것이다. 많은 아수라장을 뚫고 살아왔는데, 그것을 뛰어넘게 된 것도 ‘나 스스로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번째는 ‘폭풍과도 같은 칭찬’이다. 손태장이 초등학생 때 쪽지시험을 쳤는데, 손쉽게 10점 만점을 받을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였다. 만점 답안을 들어 보였을 때 아버지는 “와, 타이조, 너는 천재다!”라고 기뻐했다. “아니에요, 모두 만점이에요”라고 해도 못들은 척했다. 8점이나 9점을 맞아오면 아버지는 “명인도 실수할 때가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면서 “너의 천재 솜씨는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단정했다. 그림을 가져가면 “너는 피카소다”라고 하는 식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정말 그럴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것이 모티베이션이 돼 계속 열심히 노력하게 됐다는 것이다.

plus point

미슬토는 어떤 회사?
사회 난제 고민하는 ‘외로운 미치광이’ 찾아 투자

장우정 기자

일본 지바현에 있는 ‘비비스톱’에서 아이들이 실험하고 있다. 사진 비비타 트위터
일본 지바현에 있는 ‘비비스톱’에서 아이들이 실험하고 있다. 사진 비비타 트위터

반바지 차림에 웃통을 벗은 한 남자가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원 한복판에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영락없는 ‘미치광이’처럼 보인다.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미치광이와 섞여 춤추기 시작한다. 뒤를 이어 한 명, 두 명, 세 명이 합류한다. 이 공원은 춤추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순식간에 막춤판이 된다. ‘외로운 미치광이’는 ‘막춤판의 리더’가 된다.

‘시디베이비(CD Baby)’의 창업자인 데릭 시버스는 지난 2010년 ‘어떻게 무브먼트(movement·운동)를 시작하는가’라는 주제로 한 테드(TED) 강연에서 3분 남짓의 이 영상을 소개했다. 시버스는 미치광이와 함께 최초로 춤추기 시작한 ‘첫번째 남자’에 주목했다. 그는 “하나의 무브먼트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퍼스트 팔로어(first follower)’”라고 말했다.

미슬토는 당장은 조롱거리처럼 보이는 훌륭한 미치광이의 일을 ‘무브먼트화’하기 위해 기꺼이 자금을 대는 ‘퍼스트 팔로어’를 지향하는 회사다. 이런 미슬토의 철학은 투자회사 포트폴리오만 봐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슬토는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없앨 수 있는 일종의 ‘바다 쓰레기통’을 만들겠다는 한 이십대 네덜란드 청년의 엉뚱한 아이디어에 곧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2013년 보얀 슬라트가 창업한 ‘오션클린업(Ocean Cleanup)’이 주인공이다. 오션클린업은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거대한 뱀 모양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수거 장치를 처음으로 바다에 투입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드론(무인기)으로 아프리카 르완다에 의약품을 나르고 있는 ‘집라인(Zipline)’,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기술을 개발한 ‘애스트로스케일(Astroscale)’도 미슬토가 투자한 회사다.

미슬토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수익모델을 갖춘 회사보다 장기적으로 사회 난제에 도전하고 해결 의지를 밝히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은 투자금이 100% 손태장 회장의 개인 자금에서 나가기 때문에 가능하다. 2013년 설립된 미슬토는 현재까지 세계 120여개 스타트업에 200억엔(약 2000억원)을 투자했다. 손 회장은 그간 투자한 만큼 향후에도 수백억엔쯤은 투자할 여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이들 놀이공간 무료 오픈

미슬토는 아예 자체 지분 100%의 스타트업 ‘비비타’를 설립하고 일본 지바현 가시와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인 ‘비비스톱(Vivistop)’을 최근 개관했다. 전면 무료로 오픈된 이 공간은 아이들이 구비돼 있는 도구와 자료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고 실험해보는 곳이다. 커리큘럼도, 교사도 없는 아이들만의 공간을 추구한다. 기존 공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손 회장의 실험이다.

미슬토 싱가포르 지사의 강시현 투자부문 디렉터는 “미슬토는 ‘수익률’보다는 사회 문제 해결을 우선순위로 두기 때문에 ‘벤처캐피털’보다는 ‘컬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서로 다른 개인이 특정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조하는 것) 커뮤니티’로 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석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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