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미국 뉴욕 푸르덴셜 센터에서 열린 ‘케이콘(KCON) 2018 NY’ 콘서트에서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 CJ ENM
지난 6월 미국 뉴욕 푸르덴셜 센터에서 열린 ‘케이콘(KCON) 2018 NY’ 콘서트에서 아이돌그룹 레드벨벳이 공연하고 있다. 사진 CJ ENM

지난해 8월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스테이플스 센터. 아이돌 가수 워너원과 갓세븐 등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공연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은 한국어 가사를 목청 높여 따라 불렀다. 이날 공연은 1시간 만에 표가 매진될 정도로 인기였다.

공연장 밖 각종 부스에는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한국 화장품 사용법을 관찰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 산다는 LA지만 현장에는 한국 문화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온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세계적인 한류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CJ ENM의 케이콘(KCON) 모습이다.

케이콘은 K팝, K드라마, K뷰티, K푸드 등 한국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최대 한류 컨벤션이다. 올해로 7년째를 맞은 케이콘은 미국시장에선 한류가 통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지금까지 해외시장에 한류를 알리는 문화 첨병 역할을 해오고 있다.

CJ ENM 관계자는 “초기에는 케이콘 실패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오히려 투자를 늘려 한류를 전파해온 결과 한류에 대한 글로벌 인식이 좋아졌다”며 “CJ ENM의 최근 목표는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확산돼 있는 한류를 글로벌 무대로 더 확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CJ ENM이 해외시장에 눈을 돌린 이유는 녹록지 않은 국내 콘텐츠 시장 환경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에는 제값을 주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탓에 국내 1인당 콘텐츠 소비금액이 선진국보다 절대적으로 낮다. 잘 만든 콘텐츠가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콘텐츠 사업자인 CJ ENM의 주 수입원은 드라마, 예능 등 콘텐츠 판권 판매와 채널을 통한 광고 수익이다. 그러나 최근 TV 시청인구가 줄어들면서 TV 광고시장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TV 광고시장 규모는 4조1000억원으로 연평균 -0.18%포인트 성장률을 기록했다.

판권 판매를 통한 수익도 한계에 직면했다. CJ ENM은 자체 플랫폼 없이 프로그램별로 해외 방송사나 플랫폼 업체에 판권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제작사의 경우 판권 판매 수익 외에 추가 수익이 없는 반면 판권을 구매한 해외 플랫폼 사업자의 경우 구독 서비스 가입자의 연간 회원료와 광고 수익, 타 플랫폼 판권 판매 매출 등으로 원 제작사보다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린다. CJ ENM이 해외시장에서 콘텐츠를 통한 수익을 더욱 많이 내기 위해서는 자체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자체 플랫폼 구축해야 성장 가능

이런 가운데 CJ ENM이 지난 6월 출시한 해외 시청자 대상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글로벌 티빙’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J ENM은 글로벌 티빙을 통해 6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 방영된 엠넷(Mnet) 프로듀스48의 본 방송을 실시간으로 공개했다. CJ ENM은 넷플릭스처럼 경쟁력 있는 자체 제작 콘텐츠를 직접 유통해 해외 시청자를 확보하고 광고, 방송 관련 상품 판매(e커머스) 등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CJ ENM이 일본 아이돌그룹 AKB48(포티에이트)의 소속사 AKS와 손잡고 프로듀스48를 기획한 것도 해외진출 전략 중 하나다. 동방신기, 카라 등 일부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해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메이저 그룹 반열에 들긴 했지만, 일본이라는 세계 2위의 거대 음반시장에서 K팝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듀스48는 AKS와의 협업을 통해 방영 전부터 일본인의 관심을 모았다. 프로듀스48에서 선발된 한·일 합작 걸그룹 ‘아이즈원(IZONE)’은 한국과 일본에서 오는 10월 말 동시 데뷔한다.

최근 CJ ENM은 해외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합작 법인도 설립했다. CJ ENM이 쌓아온 콘텐츠 제작 능력과 빅히트의 아이돌 프로듀싱 시스템, 해외시장 진출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세대 한류를 이끌 아이돌그룹을 발굴할 계획이다. 양사가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공동 제작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plus point

프로듀스 시리즈 만든 일등공신
시청률 보증수표 안준영 PD

안준영 CJ ENM PD. 사진 CJ ENM
안준영 CJ ENM PD. 사진 CJ ENM

‘시청률 보증수표’ ‘오디션 장인’ ‘악마에게 영혼을 판 PD’.

CJ ENM의 스타 PD인 안준영 PD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는 2015년 뮤직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를 제외하면 줄곧 오디션 프로그램만 연출해왔다. 2010년 ‘슈퍼스타K2’로 처음 메인 연출을 맡은 이후 ‘댄싱9’ ‘프로듀스’ 시리즈 등을 책임졌다. 맡는 프로그램마다 케이블 방송 최고 시청률을 찍으며 ‘시청률 보증수표’란 별명을 얻었다.

안 PD는 무엇이 달랐기에 프로그램을 항상 성공시킬 수 있었을까. 그는 ‘프로듀스101’ 시즌1을 마치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송에 출연할 연습생들과의) 사전 미팅에서 한 연습생에게 ‘본인에게 연습생이란 어떤 의미인가요’라고 물었다. 연습생은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라고. 숱한 서러움과 고통에도 훗날의 성공만을 꿈꾸며 이를 악물고 감내했던 지난날,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었을 그 느낌을 떠올리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날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자리한 연습생 시절을 상기시킬 수 있는 요소를 프로그램에 녹이기로 결심했다.”

프로듀스 연습생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일까. 안 PD는 슈퍼스타K2·K3에서 시종일관 경쟁의 ‘치열함’과 ‘냉정함’을 강조하면서 긴장감을 유도했던 편집 방식을 바꿔 프로듀스 시리즈에서는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슈퍼스타K4·K5가 기존 방식을 고수하다가 시청자를 떠나보냈던 것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경쟁보다 성장에 초점을 맞췄던 케이팝스타(K Pop Star) 시즌3는 평균 1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안 PD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경쟁 프로그램이 성공한 비결을 받아들여 프로듀스 시리즈에 적용했다.

안 PD는 또한 시청자들이 단순한 관람을 넘어 프로그램을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했다. 시청자 투표는 연습생의 최종 데뷔의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국민 프로듀서님을 기다립니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세요’ 와 같은 문구로 시청자 참여를 유도한 것은 마케팅 전략일 뿐 아니라,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끈 주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안 PD는 프로듀스 시리즈가 가져온 최대 성과로 ‘방송가를 구성하는 관계자들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프로듀스 시리즈는 대형 기획사, 중소 기획사 구분 없이 연습생들이 방송에 나와 자신을 알릴 기회의 장이 됐다”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면서 방송사와 기획사가 상생해야만 모두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했다”고 말했다.

성공 가도만을 달려왔을 법한 그는 자신을 ‘IQ가 고작 106인 노력파’라고 말했다. 슈퍼스타K, 댄싱9, 프로듀스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도 두뇌가 아닌 철저한 ‘독기’라고 자평했다. 안 PD 주변에서는 그의 장점으로 냉정한 자기성찰과 자기변신 능력을 꼽기도 한다. 또 실패를 하더라도 같은 실패를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오기’가 현재의 그를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다.

백예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