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샌프란시스코만의 금문교. 외부인이었던 토목건설업자 조지프 B. 스트라우스에게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금문교 건설을 맡기고 책임자로 일하게 해 금문교를 완성하도록 했다. 사진 블룸버그
미 샌프란시스코만의 금문교. 외부인이었던 토목건설업자 조지프 B. 스트라우스에게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금문교 건설을 맡기고 책임자로 일하게 해 금문교를 완성하도록 했다. 사진 블룸버그

1921년 환갑의 토목 기술자 조지프 B. 스트라우스는 설계도면을 들고 은행을 전전한다. “2700만달러만 있으면 다리를 만들 수 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된 후에 몰려드는 인구로 1872년부터 샌프란시스코만을 잇는 교량 건설이 논의됐지만 최소 1억달러라는 막대한 공사비와 태평양과 연결된 샌프란시스코만의 급한 조류때문에 주(州)정부와 전문가들은 다리 건설을 생각도 못하던 상태였다. 하지만 스트라우스는 만 양쪽에 주탑을 세우고 탑 위로 케이블을 빨랫줄처럼 옆으로 걸친 다음 케이블에 교량상판을 매다는 현수교 형식을 제안했다. 스트라우스의 설득을 받아들인 주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는 당시 세간의 비판을 뒤로하고 그에게 전권을 맡겨 1933년 교량 건설에 착수하게 했다. 그리고 스트라우스는 4년 만(1937년 완공)에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완성했다. 조지프를 믿고 지원해준 정부는 하루에 10만대가 지나는 이 다리의 통행료로 매일 60만달러를 번다.

2009년 4월 28일 쉴라 베어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현 워싱턴대학교 총장)은 티머시 가이트너 당시 재무장관의 사무실에서 스티븐 래트너를 처음 만났다. 쉴라 베어는 당시를 회고하며 “내가 그에 관해 아는 것은 미심쩍은 평판을 지닌 사람이라는 점”뿐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를 하다 사모투자회사 쿼드랭글그룹을 만든 월가금융인을 오바마 행정부가 위기에 처한 미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을 관할할 최고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래트너는 2009년 파산했던 GM을 4년 후인 2013년 흑자전환시키며 회생시켰다. GM의 올해 상반기 글로벌 매출액은 368억달러에 달한다.

자동차의 기본도 모르던 래트너가 파산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를 구원하고 은행들에 외면받던 토목업자 스트라우스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2737.4m)를 만들었다. 이 성공의 이면에는 외부인이라도 능력이 있다면 업무를 맡기는 개방성과 일단 업무를 맡겼으면 책임자들을 신뢰하고 그들이 장기간 일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선진국 정부들의 태도가 있다.

그리고 선진국 정부들은 건축물을 만들거나 위기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특별한 사례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관료들을 대할 때에도 이런 태도를 유지한다. 정책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선진국들의 일하는 방식을 살펴봤다.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 대표적 사례는 호주 정부의 금융감독 체계 개편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주는 원래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수익성)과 영업행위를 모두 한곳의 정부기관에서 관리‧감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무건전성을 관리‧감독하는 쪽은 금융회사에 수익성을 높이라고 요구했고, 영업행위를 관리‧감독하는 쪽은 수익성보다는 소비자보호에 더 신경쓰라고 요구하는 식이어서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호주 정부는 1995년부터 감독과 정책을 따로 분리하는 체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이 업무의 책임자는 스탠 월리스였다.

그런데 월리스가 한창 이 업무를 추진하던 시기인 1996년 3월 연방선거로 정권이 노동당에서 자유당으로 넘어갔다.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호주 재무부는 이전의 노동당 정부에서 결정했던 월리스의 업무를 계속 추진토록 했고 1997년 월리스가 작성한 보고서를 기초로 1998년 금융감독 조직을 건전성 감독기구(APPA)와 영업행위 감독기구(ASIC)로 나눴다. 더 나은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판단했고 정책 책임자에게 일을 맡긴 후에는 정부의 이념을 떠나 끝까지 이를 추진한 사례다.

프랑스 정부의 사례도 주목해볼 만하다. 프랑스는 재무부 산하에 공기업 전담기관인 국가참여청(Agence des participations de l’État)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참여청은 프랑스의 모든 공기업을 관리·감독하는데 2000년 이후 공기업 임원에 대해 3~5년의 법정임기를 보장하도록 제도를 변경해 정권이 바뀌어도 나머지 임기를 수행토록 했다. 정치권력이 바뀌었다고 해도 해당 기관이 해온 업무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조치였다.


전문성 위해 개방하고 포용

개방성과 포용력을 정책을 추진하는 힘으로 사용한다는 점도 선진국 정부들의 공통분모다. 많은 선진국들이 정치권력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만 정책결정에 힘을 발휘하도록 하지 않고 자격이 되는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견제와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제도들을 이용해 정책의 개방성과 포용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미 캘리포니아 정부가 정부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스트라우스의 이야기를 들었고, 오바마 정부가 사모펀드의 창립자를 자동차 회사를 살리는 데 썼던 태도다.

일례로 덴마크의 금융감독청(DFSA)은 최고 의결기구로 금융기업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위원회는 교수 등 금융과 법률분야 전문가 외에도 금융소비자대표, 산업계(기업)와 민간 금융사 대표 등 8명의 내외부 인사로 구성돼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모여 금융업의 주요 사항들을 결정한다.

영국은 경제‧금융 분야를 포함한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업무를 일반 국민에게도 개방한다. 영국 정부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임원을 선임할 때 반드시 전문가 패널로 구성된 인선위원회의 심사와 면접을 거치는데 인선위원회에는 독립사정관 1명을 참여하도록 했다. 독립사정관은 일반 국민 중 지원자를 모집해 필요한 교육훈련을 실시한 후 인선위원회에 파견된다.

스웨덴의 연금개혁방식도 개방적 정책결정이 긍정적 결과로 나타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공적연금의 적자가 누적되자 스웨덴 정부는 1992년 7개 정당과 재무‧보건복지장관, 법률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금실무작업단을 꾸렸고 국민 여론까지 반영해 1998년 보험료 인상과 연금액 인하, 수급 연령 연장 등의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합의했다. 1985년부터 연금개혁 방안을 모색하면서 14년간이나 관료나 정치권력자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이념과 정치색깔을 떠나 적자가 늘어나는 연금을 후세에 물려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정책의 기초부터 마무리까지 밀고 나갔다. 또 이 과정에서 연금전문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 제도 개혁의 큰 방향성을 잡아 나갔다.

에드워드 팔머 당시 사회보험청 연금팀장은 한 인터뷰에서 스웨덴 국민들이 전문가들의 말을 경청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가지기는 하지만 정치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연구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방법론을 써서 객관적인 결과를 보여주려고 하고 지식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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