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에 누렇게 뜬 채 말라 죽은 배추가 널려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추석 물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8월 28일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에 누렇게 뜬 채 말라 죽은 배추가 널려 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며 추석 물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사진 이정은 인턴기자

파랗게 펼쳐진 배추밭 곳곳에 배추가 누렇게 쓰러져 있었다. 1년 내내 25도를 안 넘어 배추 재배에 최적이라는 해발 1200m, 면적 149만㎡(약 45만평)의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고랭지 배추밭도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8월 28일 배추밭을 살피던 농민 이정만(50)씨는 “연평균 5t 트럭으로 3000포기씩 1600대 정도를 출하하는데, 올해는 200~300대도 못 나간 상황”이라면서 “고온이 지속돼 배추가 썩거나 녹아내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랭지 배추 수확이 한창일 때인데도 밭은 한산했다. 매봉산 북서쪽은 쓸 만한 배추를 아예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무름병 같은 병충해가 생기고 가뭄으로 잎 끄트머리까지 칼슘이 가지 않아 칼슘 결핍 장애가 생긴 탓이었다. 김기덕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센터 박사는 “원래 이곳은 흙이 물을 잘 머금고, 산이 높아 안개가 있어 수분을 보전할 수 있는 환경인데 올해는 (배추가 자라기 어려운 기온인) 28도가 넘는 날이 30일가량 지속돼 피해를 봤다”며 “고랭지 배추밭마저 농사가 안 됐다는 것은 폭염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추석 전까지 식탁을 책임지는 고랭지 배추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배춧값이 치솟고 있다. 이날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배추 도매가는 포기당 5571원을 기록해 예년(3880원)보다 70% 가까이 올랐다. 최근 서울 양천구 등촌시장에서 배추 3포기를 사서 겉절이를 담갔다는 조성덕(57)씨는 “알배기 배추만 한 작은 여름 배추 세 포기를 1만8000원에 샀다”며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대파는 1㎏에 2666원에 거래돼 지난해 8월 말과 비교해 66%가 뛰었다. 무와 당근도 44~48%가 올랐다.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가을 제철과일 사과와 배의 수급도 심상치 않다. 폭염으로 열매가 화상을 입는 경우가 늘면서 사과가 4만2924원(10㎏)에 팔리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2만5454원)과 비교하면 59%가 넘게 오른 것이다. 이맘때 3만원대에 팔리던 배도 4만5358원(15㎏)으로 훌쩍 뛰었다.

폭염으로 평년보다 수온이 2~3도가량 오르며 수산물 가격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자연산 생선이 일단 잘 안 잡히고, 양식장은 집단 폐사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8월 셋째 주(8월 13~18일) 수협노량진수산에서 고등어 1㎏이 평균 1500원에 거래되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 급등했다. 자연산 광어(1㎏)는 2만6800원에 거래돼 40%가 뛰었다. 갈치는 30%, 자연산 참돔(1㎏)은 20%가 각각 올랐다.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사과·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사과·배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폭염 길었던 해, 농수산물 물가 3.8%p 급등

올해처럼 33도가 넘는 폭염이 장기화한 해의 농수산물 물가는 크게 뛰는 경향을 보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폭염 일수가 길었던 1990년, 1994년, 1996년, 2004년, 2013년의 7~8월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물가상승률 대비 0.6%포인트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수산물의 물가상승률은 다른 해 대비 3.8%포인트나 높아 폭염이 식탁 물가에 직격탄이 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9월 말로 추석이 다가오면서 물가 대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용인시 신봉동에 사는 주부 최금주(55)씨는 “조기 4마리가 1만원, 햇배가 개당 4000~5000원인데, 추석이 임박하면 물가가 더 오르지 않겠느냐”며 “올해 제사는 못 지내겠다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8월 30일 배추, 무, 사과, 배, 소고기, 달걀, 오징어, 조기 등 14개 중점 관리 품목을 정해 일일 공급량을 평상시 대비 1.3~1.7배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plus point

‘국민 과일’ 사과, 2030년엔 강원도에서 재배

2030년 무렵 경북 영천 대신 강원도 정선이나 영월·양구가 사과 주산지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연평균 12도대의 서늘한 기후를 찾아 사과 재배 지역이 강원도 산간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공개한 ‘기후변화에 따른 주요 농작물 주산지 이동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경북 영천의 사과 재배 면적은 1970년 1625.4㏊였으나, 2015년 평균 기온이 13.5도로 상승하면서 707.4㏊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강원 정선의 경우 사과 재배 면적은 3.7㏊에서 141.8㏊로 37배 늘었다. 평균기온이 11.4도로 1.6도 상승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다른 주요 과일의 재배 지역도 북상하는 추세다. 전통적인 복숭아 주산지인 경북 청도의 경우 복숭아 재배 면적이 1970년 198.6㏊에서 2015년 1007.9㏊로 4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충북 충주는 같은 기간 재배 면적이 24배 가까이 늘면서 2015년 1542.7㏊를 기록, 청도보다 복숭아 재배 면적이 넓어졌다. 경북 지역에 집중돼 있던 포도 주산지는 최근 강원 영월, 경기 가평·화성 등 북부 지역으로 확대됐다. 남해안 일대에서 주로 재배됐던 단감 역시 경북 지역으로 생산지가 북상했다. 감귤은 과거 제주도에서만 재배가 가능했으나 2015년에는 전남 고흥, 경남 통영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졌다. 통계청은 21세기 후반이 되면 강원도 산간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 기후로 변해 주요 농작물 재배 가능지가 지금보다 더 북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농가에서도 이런 기후 변화를 고려해 과일을 재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학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환경·자원연구센터장은 “최근 강원도에서 사과 재배 농가를 지원하고 있는데 젊은 농가를 중심으로 재배 과일을 전환하는 사례가 있다”면서 “시설 투자부터 재배 기술에 대한 적응까지 초기에는 소득 감소가 불가피하겠지만,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우정 기자, 이정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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