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홍승 동국대 산업공학과, 교토대 수리공학 박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정보전략부장(CIO),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자문교수
고홍승
동국대 산업공학과, 교토대 수리공학 박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정보전략부장(CIO),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자문교수

고홍승 교토정보대학원대학 교수는 교토대에서 수리공학(응용수학·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돼 1994년부터 5년간 전략기획실 정보전략부장(CIO)으로 근무했다. 고 교수는 삼성에서 “그땐 삼성에 홈페이지도 없어서 웹사이트 만드는 일도 내가 했다”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나온 뒤, 2004년부터 교토로 돌아가 교토정보대학원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7월 17일 오후 일본 교토의 교토정보대학원대학 햐쿠만벤(百万遍) 캠퍼스에서 만난 고 교수는 일본과 한국의 기업 문화에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일본 기업은 덜 준비된 사원을 뽑아 내부에서 인재로 키워내고, 현장의 목소리를 중시한다는 설명이다. 청년들도 입사하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했다. “학생 땐 인사도 잘 안 했는데, 회사에 들어가더니 매너 있게 인사하고 말투도 교양 있어보이게 바뀌더라”는 것이다.

고 교수와의 인터뷰에는 같은 대학에 재직 중인 시바야마 기요시(柴山潔) 교토정보대학원대학 교수도 함께했다. 시바야마 교수는 교토 출생으로 교토대를 졸업하고, 이 대학에서 조교수를 거쳐 교토공예섬유대학에서 퇴직했다. 그는 짙은 교토 사투리로 교토의 문화와 교토 사람의 특성에 대해 알려줬다.


교토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독특한 이곳만의 문화가 있다. 교토 기업도 독특하다. 어떤 점이 지금의 교토 기업을 만들었나.
“교토 기업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교토 기업엔 아직 오너가 있는 기업이 많다. 일본전산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 회장은 창업자로 아직 기업을 경영하고, 세계적인 계측 분야 전문 기업 호리바제작소의 최고경영자(CEO) 호리바 아쓰시(堀場厚)는 호리바 신키치(堀場信吉) 창업자의 손자다. 도쿄나 오사카엔 오너 기업이 없다. 오너 기업엔 단점도 있지만, 오너는 회사 경영이 악화됐을 때 분명히 책임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교토 기업은 생산하는 제품이 개인 소비자용(B2C)이 아니라 기업용(B2B)이다. 기업이 고객이기 때문에 리먼 사태와 같은 경제 위기 때 타격이 적다. 마지막으로 교토 기업은 문어발처럼 기업을 확장하지 않고, 처음 시작한 분야에서 수직으로 깊게 파고든다. 무라타제작소는 세라믹, 일본전산은 모터에 관계된 분야에 사업을 집중했다.”

시바야마 교수에게 묻겠다. 독특한 교토기업의 분위기는 어디서 기원하는가.
“나는 교토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교토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을 감안해서 들어줬으면 좋겠다. 대체로 교토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교토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일본 전국적으로도 좀 독특하다. 역사적으로 교토는 과거 수도였고, 일왕이 대대로 여기서 살았다. 메이지유신 후 일왕 거처가 도쿄(東京)로 옮겨졌지만, 도쿄는 ‘동쪽 수도’라는 뜻이고 진정한 수도라는 의미의 지명은 교토(京都)다. 교토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우리가 최고야’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뒤집어 말하면 교토 사람은 독립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다. 교토 사람들은 ‘넘버원(No.1)’이 아니라 ‘온리원(Only One)’이 되길 원한다. 그래서 교토 기업은 다른 회사가 하는 제품을 따라서 만들지 않는다. 기업도 오직 자신들만의 연구를 하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만들고 싶은 물건을 만들고, 팔고 싶은 걸 판다. 교토 기업인 시마즈제작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정말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소량으로 제작해 다른 기업에 공급한다. 보통은 대량 생산해야 생산 원가가 낮아져 이익이 남지만, 필요한 기업을 위해서 소량이라도 제품을 개발한다.”


고홍승 교수의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시바야마 기요시 교토정보대학원대학 교수.
고홍승 교수의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시바야마 기요시 교토정보대학원대학 교수.

삼성전자와 비교해 교세라, 일본전산 등 교토 기업의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교토 뿐만이 아니라 일본 기업이 인재를 육성하는 시각이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과 다르다. 삼성은 내부에서 인재를 육성하기보다 외부에서 이미 우수한 인재로 키워진 사람을 영입한다. 내가 삼성전자에 근무할 때에도 박사학위 소지자가 1000명에 가까울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활용을 잘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일하다가 불만이 생겨 퇴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일본 회사들은 일반적인 수준의 학생을 뽑아 내부에서 인재로 키운다. 쉽게 말해 박사를 잘 뽑지 않는다. 채용하는 인력은 석사가 가장 많다. 이직률도 상당히 낮다. 일본 학생들은 박사학위를 받으면 회사에 취직하기 어려워진다. 석사까지가 높은 확률로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는 마지막 학력이다. 회사에선 석사학위 소지자를 뽑아도 얼마든지 연구·개발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학교나 연구소로 취직한다.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는 도호쿠대학 전기공학 학사다. 그는 교토 기업인 시마즈제작소에서 주임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노벨상을 받았다.”

조직 내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 기업은 상대적으로 의사 결정이 톱다운(Top-Down) 방식인 경우가 많다. 일본은 바텀업(Bottom-Up)에 가깝다. 현장 직원들에게 ‘이런 건 어떤가요?’라고 묻고 들은 뒤 ‘그것 해 보면 괜찮겠네요’라고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한국처럼 해야 할 일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경우는 잘 없다. 관리자보다 현장에서 일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장인정신이 무엇인지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아주 귀하게 여긴다. 오너라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여기 와서 놀란 점이, 일본의 직장인들은 애사심이 깊다는 거다. 자기가 하는 일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도 학교에 다닐 땐 흔한 청년이었는데, 회사에 입사하자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 땐 인사도 잘 안 했는데, 회사에 들어가더니 매너 있게 인사하고 말투도 교양 있어 보이게 바뀌더라. 이런 것이 큰 차이를 가져온다.”

한국 기업에도 장점이 있을 텐데 어떤 점이 있을까.
“일본 기업은 변화가 더디고, 확실하게 파악을 한 뒤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 같으면 배워야 할 점이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해 한국엔 일본과 같은 높은 수준의 기술이 없지만, 빠른 경영으로 삼성, LG, SK가 성공한 것이다. 지금 일본 회사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너무 늦다. 이래선 삼성을 쫓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일본 기업도 알고는 있지만 성향이란 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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