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초기 주거·연구시설을 개조한 시마즈 창업기념관. 사진 시마즈제작소
창업 초기 주거·연구시설을 개조한 시마즈 창업기념관. 사진 시마즈제작소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다나카 고이치라는 이름이 발표됐을 때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학교수도, 박사급 연구원도 아닌 일본 중견기업 시마즈제작소(이하 시마즈)의 대졸 연구원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직급은 과장보다 한 단계 낮은 주임이었다.

시마즈는 143년 역사의 정밀기기 제조업체다. ‘일본의 에디슨’으로 불리는 발명가 시마즈 겐조가 ‘과학기술 입국’의 기치를 내걸고 1875년 창업했다. 의료용 X선 장비와 컴퓨터 단층촬영(CT) 스캐너, 항공기 부품 등이 주 종목이며 지난해 매출은 3425억엔(3조4800억원)이었다.

스웨덴 왕립과학아카데미가 발표한 다나카의 수상 이유는 단백질 등 생체고분자의 질량과 입체구조를 해석하는 방법을 개발, 바이오산업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 사실 그의 업적의 큰 부분은 우연의 산물이었다. 실험 도중 부주의로 의도치 않게 섞여버린 용액을 분석해 본 것이 획기적인 해석 방법을 발견하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기초과학 연구를 중시하는 시마즈 고유의 기업문화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성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학(도호쿠대 전기공학부) 졸업 후 소니에 지원했다 떨어진 다나카는 지도교수 추천으로 시마즈에 입사했다. 원했던 의료사업부 대신 중앙연구소에 배치받은 게 전화위복이 됐다. 그는 2004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좋아하는 실험을 온종일 할 수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기초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혁신 원천

시마즈제작소의 기술에 대한 집착은 유별난 구석이 있다. 돈 되는 제품보다 남이 안 만드는 제품을 만들려는 풍토가 대표적이다.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질량분석기 개발도 학계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연구 범위와 방법에 제한을 많이 두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충실한 이해 없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내버려 둔다는 뜻은 아니다. 회사가 시장 트렌드를 분석해 팀별로 적절한 아이템을 지정해주면 그 범위 안에서 연구자의 재량권이 상당히 인정된다는 의미다. ‘10년 뒤 상용화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공통의 목표다.

장기적으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 개발’에 무게중심을 두고 운영하다 보니 세계적인 ‘히트작’ 개발도 꾸준히 이어졌다.

1877년 일본 최초로 유인 경기구(輕氣球)를 띄우는 데 성공했고 1909년에는 역시 일본 최초로 의료용 X선 기술을 상품화했다. 1952년과 1961년에는 각각 세계 최초로 광전자식 분광 광도계와 원격 조종식 X선 텔레비전 장치를 개발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제조한 ‘직접교환방식 FPD(Flat Panel Detector) 탑재 순환기(혈관계와 림프계) 촬영용 X선 진단장치’는 현재 이 회사의 효자상품 가운데 하나다. 화질이 깨끗하고 입체적인 촬영이 가능해 전 세계 병원으로부터 주문이 몰리고 있다. 다나카는 올해 초 일본 국립장수의료연구센터와 함께 소량의 혈액으로 알츠하이머를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내놓아 다시 한 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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