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요미즈야키 찻잔. 사진 기요미즈야키단지협동조합
기요미즈야키 찻잔. 사진 기요미즈야키단지협동조합

교토(京都)는 흔히 한국의 경주에 비교되는 도시다. 약 1000년이라는 오랜 기간 수도였고, 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 관광도시이기 때문이다.

경제력도 크지 않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2014년 교토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10조540억엔(약 105조5800억원)으로, 광역 자치단체인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중 13위였다. 일본 수도인 도쿄도(都)의 94조9020억엔, 오사카시가 있는 오사카부(府)의 37조9340억엔 등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이름난 대기업이 없는 까닭이다. 지역 전체의 경제력은 작아도,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다르다. 교토 기업 중 세계적 게임 회사인 닌텐도(任天堂)는 시가총액 5조2077억엔(7월 말 기준)으로 12위, 일본전산(日本電産)은 4조8239억엔, 무라타제작소(村田製作所)는 4조3927억엔으로 24위에 올라 있다.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가 창업한 교세라(京セラ)는 일본 증시 시가총액 50위 밖에 있지만, 역시 그가 창업한 통신회사 KDDI는 5위에 올라 있다.

이보다 더 작은 교토 기업도 많다. 시가총액 순위가 낮다고 얕잡아봐서는 안 된다. 교토 기업 오므론은 8월 17일 기준 일본 증시 시가총액 순위 136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오므론의 시가총액 1조441억엔(약 10조4411억원)은 같은 날 한국 LG전자의 시가총액(11조8481억원·29위)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과거 교토 기업은 도쿄와 오사카에서 출발한 재벌 대기업과 비교해 규모가 작고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소니,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을 제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오랫동안 전기·전자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기술을 발전시킨 결과, 각자의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대기업 위상이 흔들리는 동안 교토의 기업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가는 기업으로 떠올랐다.

교토 기업은 빠른 성장 덕에 주가 상승률도 높다. 지난 5년간 파나소닉(오사카 기업)의 주가는 57%, 히타치제작소(도쿄 기업)는 17% 올랐다. 반면 교토에 근거를 둔 일본전산은 280%, 무라타제작소는 148% 상승했다. 이들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1│교토의 오래된 전통을 이어받아

교토에서는 경주와 달리 세계적인 기업이 여럿 탄생했다. 경주는 이미 1000년 넘게 수도의 지위에서 벗어나 있지만, 교토는 불과 150년 전까지 일본의 수도였고, 화려한 전통 산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 산업은 현대적인 산업에 영향을 줬다.

교토의 대표적 전통 산업은 니시진오리(西陣織)와 기요미즈야키(清水焼)가 있다. 니시진오리는 교토 니시진에서 생산되는 비단으로, 최고급 기모노에 사용한다. 교토엔 5~6세기쯤 양잠과 견직물 기술이 전해졌고, 8세기에 조정에서 견직물 기술을 이어받을 장인을 관청이 관리하게 하며 고급 직물을 생산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기술이 이어지고 있다. 니시진오리를 완성하려면 많은 공정을 거쳐야 하고, 하나하나의 공정은 숙련된 기술자의 손으로 이뤄진다. 전통적이고 호화로운 기모노를 비롯해, 현재엔 넥타이와 인테리어 소품, 숄, 가방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기요미즈야키는 교토의 유명한 사찰 ‘기요미즈데라(清水寺)’로 올라가는 언덕길 일대에서 만들어지는 도자기다. 다도(茶道)가 유행한 에도(江戸) 시대에 교토의 도자기 문화를 꽃피웠다.

도쿠가 요시히로(德賀芳弘) 교토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창업자의 ‘아메바 경영’이 니시진오리와 기요미즈야키의 공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아메바 경영은 ‘아메바’라고 불리는 작은 단위로 조직을 나누고, 이런 소규모 조직 내 구성원들이 노력과 협동으로 목표를 달성한다. 그는 “니시진오리를 만들려면 26개의 공정을 거쳐야 하고, 공정은 각각 다른 사람이 한다. 모든 작업자가 최고의 전문가가 아니면 완성한 견직물 품질이 떨어진다. 기요미즈야키도 마찬가지다. 흙을 고르는 전문가, 굽는 전문가 등이 다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규슈섬 남부 가고시마(鹿児島)현 출신이지만, 첫 직장은 전기 절연체를 만드는 교토의 쇼후(松風)공업이었다. 원래 기요미즈데라 근처에서 수출용 도자기를 만들다가 요업(窯業)회사로 발전해 도자기 재질로 절연체를 제작하게 된 회사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경영 철학이 기요미즈야키 제작 방식과 닿아있는 셈이다.

기술 측면에서도 교토 기업의 뿌리엔 전통 산업이 있다. 가와키타 히데타카(川北英隆) 교토대 대학원 경영관리연구부 명예교수는 “교세라나 무라타제작소의 세라믹 기술도 기요미즈야키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2│자신만의 분야 개척

4차 산업혁명으로 각광받는 교토 기업은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오므론, 호리바제작소, 시마즈제작소 등이 있다. 새로운 흐름을 타고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이동통신, 스마트 팩토리 등 새로운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이 기업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무라타제작소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스마트TV 등 각종 IT 기기의 핵심 부품인 MLCC(적층세라믹콘덴서)를 생산한다.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부품이다. 전자기기는 성능은 갈수록 고도화되지만 두께는 더 얇아지기 때문에 부품 사이의 전자파 간섭 현상을 막아주는 초소형 MLCC가 꼭 필요하다. 초소형 고사양 MLCC는 무라타제작소와 함께 삼성전기, 다이요유덴 등 3개 업체가 글로벌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 이 중 무라타제작소가 세계 시장 점유율 40%로 1위다. 업계에서는 현 7조원 수준인 글로벌 MLCC 시장이 10년 뒤에는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MLCC 업계에서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한 자동차 전장(電裝)용 MLCC 생산 능력 확충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에 600~1000개씩 들어가는 MLCC가 일반 자동차에는 3000개, 전기자동차에는 1만5000개 들어간다. 단가도 전장용이 스마트폰용보다 약 4배 비싸다. 올해 무라타는 구형 MLCC 생산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고, 전장용 초소형 MLCC 위주로 생산 체제를 재편한다.

오므론은 4차 산업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공장을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 사람이 더 쉽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계가 지원해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므론은 또 혈압계, 체중계를 제조하는 헬스케어 사업도 하고 있다. ‘오므론커넥트’라는 서비스를 통해 의료기기로 측정한 데이터를 관리하고, 이를 다양한 건강·의료 관련 기업과 연계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 기능이 있는 혈압계·체중계·활동량 체크 기계의 데이터를 다른 회사의 서비스와 연계해 원격의료와 예방의료 지원도 하고 있다.

일본전산은 하드디스크(HDD)용 모터 등 정밀 소형 모터에 특화한 기업이다. 1973년 총직원 4명으로 창업한 후, 지난해엔 전 세계에서 11만명을 고용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드디스크용 모터 세계 시장 점유율은 85%에 달한다. 하드디스크는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있지만, 정밀 소형 모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모터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를 대체하고 있고, 로봇·드론에도 모터가 꼭 필요하다. 일본전산은 앞으로 3년간 5000억엔(약 5조원)을 투자해, 자동차나 로봇, 백색가전용 모터 시장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호리바제작소는 정밀 환경계측기기 전문 기업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측정기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대기오염 측정장비, 의료용 시스템 및 반도체 시스템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각국의 환경 규제가 엄격해지면서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액과 이익을 기록했다.

의료영상 진단기기 제작 업체 시마즈제작소는 IoT 기술을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에고장 예방 서비스를 제공한다. 제품에 내장된 센서에서 발생되는 장치 가동 정보를 수집하고, 자체 진단 정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결함·고장의 전조를 감지하는 원격 유지보수 기능을 제품에 탑재했다.


니시진오리로 만든 기모노. 사진 니시진오리공업조합
니시진오리로 만든 기모노. 사진 니시진오리공업조합

3│일찍 글로벌 진출해 경쟁력 쌓아

교토 기업은 일반 고객을 상대로 제품을 파는 B2C가 아닌,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는 B2B가 중심이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일찍부터 일본 대기업이 아닌 세계를 상대로 영업에 나섰다. 많은 일본 기업이 아직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일본’이라는 내수시장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는 것과 다른 점이다.

두 가지 점은 연결돼 있다. 가와키타 교수는 “교토 기업은 처음부터 독특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최초의 근대적인 교토 기업이라고 볼 수 있는 시마즈제작소는 1896년, 일본 최초로 뢴트겐(X선) 촬영 장치를 개발했다. 독일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시점과 불과 1년밖에 차이 나지 않는 발명이었다. 의료용 X선 장치는 1909년 개발했다. 하지만 역시 이런 시장은 일반 대중을 상대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내수시장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

가와키타 교수는 “X선 촬영기는 일본에서 많이 팔리는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 세계 시장에서 판매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교세라나 일본전산이 창업 초창기부터 세계 시장에 진출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무라타 제작소가 2014년 발표한 치어리딩 로봇. 사진 블룸버그
무라타 제작소가 2014년 발표한 치어리딩 로봇. 사진 블룸버그

4│핵심 사업 관련 기업 적극적 M&A

인수·합병(M&A)으로 성장했다는 점도 다른 일본 기업과 다르다. 다만 교토 기업은 창업 당시 시작한 본업과 연관된 분야의 기업을 인수한다는 특징이 있다. 일본전산이 대표적이다. 일본전산은 적극적 M&A로 하드디스크에서 자동차 등 산업용 모터 분야로 사업 영역 확대에 성공했고, 최근 10년간 순이익이 다섯 배쯤 늘었다. 일본전산은 ‘돌아가는 것과 움직이는 모든 부문에서 세계 1위’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모터 부문에 기술력을 보유한 적자 기업을 인수해 세계 최고의 기업이 됐다. 오므론도 공장 자동화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갖추기 위해 해외 기업을 인수했다. 화물 운송용 이동 로봇 기술을 갖고 있던 미국 ‘어뎁트 테크놀로지(Adept Technology)’를 인수한 게 대표적 사례다.


5│자산 효율적 사용해 ROA 높아

교토 기업은 미국 기업은 물론, 다른 일본 기업에 비해서도 ROE(자기자본이익률)가 낮고 ROA(총자산이익률)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ROE는 특정 기업이 투입한 자기 자본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냈는지 나타내는 지표이고, ROA는 자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해 이익을 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다.

도쿠가 교수는 “주주만을 위해 경영하는 기업은 ROE가 높다. 하지만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많이 하고 자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ROA가 높다. 소니나 파나소닉도 R&D 투자를 많이 하지만, 매출액과 비교하면 교토 기업이 더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기업처럼 차입을 극대화하고 R&D로 몸집을 불린 소프트뱅크의 ROE는 23.7%나 되지만, ROA는 3.7%에 불과하다. 소니의 ROA는 2.7%, 파나소닉의 ROA는 3.9%다. 하지만 교토 기업인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오므론의 ROA는 각각 7.6%, 8.5%, 8.8%로 소니·파나소닉의 배 가까이 높다. ROE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손덕호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