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등 독창적 기술 확보해
전 세계 공장 자동화 분야 선도
기계·사람 협업하는 생산 추구

작업자가 물품을 상자에 담아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한 가지 공정을 끝내고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물품이었다. 1분쯤 뒤, 30m 밖에서 바퀴 달린 흰색 기계가 조용히 달려왔다. 로봇청소기를 크게 만든 것 같은 귀엽게 생긴 이 기계는 작업대에 도착해 상자를 몸 위에 실은 뒤 어디론가 떠났다. 다음 단계 공정에서 다른 작업자가 일할 수 있도록 물품을 전달해주기 위해서다.

이 기계는 인공·지능(AI)을 탑재해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판단하고 사람의 일을 덜어주는 ‘자동 반송(搬送) 모바일로봇 LD시리즈(이하 모바일로봇)’였다. 대당 가격이 4000만원에 달하는 이 모바일로봇은 공장자동화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일본 교토의 기업 ‘오므론(OMRON)’이 만들었다. 7월 20일 오전 일본 시가(滋賀)현 구사쓰(草津)시 오므론 구사쓰공장에서 만난 오므론 관계자는 “모바일로봇은 삼성전자도 생산 공정에 활용하고 있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음료수 배달에 쓰인 적이 있다”고 했다.

오므론은 4차 산업혁명을 맞아 독창적인 기술력으로 각광받는 일본 기업 중 하나다. 구사쓰공장 자체가 오므론의 공장 자동화 기술이 집약돼 오므론이 판매하는 컨트롤러와 센서 등을 생산한다. 오므론은 뛰어난 공장 자동화 기술력으로 한국에서도 삼성과 현대자동차, LG, SK 등 대기업을 비롯해 중견·중소기업까지 다양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오므론은 1933년 다테이시 가즈마(立石一真)가 창업했다. 구마모토(熊本)현에서 태어난 다테이시는 구마모토고등공업학교 전기과(현 구마모토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뒤, 이노우에전기제작소에 들어가 기술 개발, 생산 노하우를 얻었다. 뢴트겐 사진(X선 사진) 촬영용 타이머를 개발한 그는 1933년 오사카에서 오므론의 전신인 다테이시전기제작소를 창업했다. 도쿠가 요시히로(德賀芳弘)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시 X선 촬영장치를 만들던 시마즈제작소가 교토에 있었기 때문에 창업에 교토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므론은 1945년 교토로 본사를 이전했다.


7월 20일 오므론 구사쓰 공장에서 작업자가 만든 제품을 상자에 쌓아두자 자동 반송 로봇이 다가왔다. 이 로봇이 제품을 옮기기 위해 상자를 싣고 있다. 사진 손덕호 기자
7월 20일 오므론 구사쓰 공장에서 작업자가 만든 제품을 상자에 쌓아두자 자동 반송 로봇이 다가왔다. 이 로봇이 제품을 옮기기 위해 상자를 싣고 있다. 사진 손덕호 기자

무인 개찰기, ATM 등 세계 최초 개발

오므론의 역사엔 몇 개의 ‘세계 최초’ 딱지가 붙어 있다. 1960년 세계 최초로 무접점 스위치를 만들었다. 현재 이 기술은 센서 기술로 발전해 오므론이 공장 자동화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갖추게 했다. 1964년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자동감응식 신호기를 개발했다. 도로 위에서 차량과 행인의 흐름을 제어하는 전자 교통신호기가 이것이다. 1967년엔 무인역 시스템, 즉 무인개찰기를 만들었다. 1971년엔 흔히 ATM이라고 부르는 현금자동지급기를 개발했다.

지금 오므론의 성장을 이끄는 분야는 공장 자동화와 관련된 제어기기 사업 부문이다. 지난해(2017년 4월~2018년 3월) 매출액은 8600억엔(약 8조6000억원)이었다. 이 중 제어기기 사업이 46%, 자동차 전장부품인 차재(車載) 사업이 15%, 혈압계와 체온계 등 헬스케어 사업이 13%, 전자부품 사업이 12%, 무인개찰기와 같은 사회 시스템 사업이 7%를 차지한다. 일본전기제어기기공업회에 따르면 제어기기 분야에서 오므론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40%다.


M&A로 로봇 기술 확보

사람이 방 안의 불을 켜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먼저 눈으로 불이 꺼져 있다는 사실을 보고, 이 정보를 뇌가 판단한 후, 스위치까지 이동한 후, 손 관절을 움직여 스위치를 누른다. 오므론은 눈 역할을 하는 센서, 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 관절 역할을 하는 서보모터(servomotor·제어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동력 발생 장치), 실제로 움직이는 팔 역할을 하는 로봇까지 모두 갖추고 있다. 오므론 관계자는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갖춘 기업은 파낙(FANUC), 미쓰비시전기, 지멘스 등이 있지만, 센서와 컨트롤러, 모터, 로봇, 안전 분야 등 스마트 팩토리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갖춘 기업은 전 세계에 오므론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오므론은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로봇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인수한 회사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어뎁트 테크놀로지(Adept Technology)’다. 구사쓰공장에서 직원들을 돕던 모바일로봇도 원래는 어뎁트가 기술을 개발했다. 미야나가 부사장은 “오므론은 어뎁트를 인수해 기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어하고, 사람의 움직임을 비슷하게 재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AI와 사물인터넷(IoT)이 공장에 접목되면서 생산 공정을 최적화하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하는 기업이 많아졌다. 보통 ‘스마트 팩토리’는 기계와 통신(IoT), AI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오므론은 조금 다르다. ‘사람’을 강조한다. 완전히 공장에서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사람과 기계가 서로 도우면서 일의 효율을 높이려 한다. 미야나가 유타카 오므론 부사장은 “사회의 밑에 산업이 있고, 그 밑에 공장이 있다. 사람과 기계를 조화롭게 하고, 기계의 움직임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지 연구해 전 세계 제조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제조현장 혁신을 일으키겠다”고 했다.


오므론 구사쓰공장 내부. 오므론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집약돼 있다. 사진 오므론
오므론 구사쓰공장 내부. 오므론의 스마트 팩토리 기술이 집약돼 있다. 사진 오므론
1971년 미국의 한 은행에 오므론이 개발한 현금자동지급기가 설치돼 있다. 맨 왼쪽이 다테이시 가즈마 오므론 창업자다. 사진 오므론
1971년 미국의 한 은행에 오므론이 개발한 현금자동지급기가 설치돼 있다. 맨 왼쪽이 다테이시 가즈마 오므론 창업자다. 사진 오므론

오므론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스마트 팩토리를 만들어 제조업을 혁신하기 위해 ‘아이오토메이션(i-Automation)’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세 개의 ‘아이(i)’ 중 첫번째인 ‘integrated(제어진화)’는 고속·고정밀도의 기계를 만들어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고, 두 번째인 ‘intelligent(지능화)’는 현장의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하는 것이다. 마지막 ‘interactive(사람과 기계의 새로운 협조)’는 로봇과 사람이 협동하는 생산 라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오므론은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 맡기고 인간은 창조적 분야에서 활동을 즐겨야 한다’라는 경영 이념하에 기계가 인간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협조 관계가 공장 자동화의 미래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8월 20일 방문한 오므론 구사쓰공장은 사람과 기계가 협조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 있었다. 작업대에선 기계가 사람이 조립할 부품을 순서대로 알려주고 부품을 사람에게 갖다 주면서 일을 도왔다. 모바일로봇이 사람 대신 스스로 판단해 물품을 운반하는 것은 맞지만, 그 목적은 서로 다른 공정을 담당하는 ‘사람’ 작업자가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것에 맞춰져 있다. 오므론 구사쓰공장 고이즈미 히데아키(小泉秀明) 공장장은 “사람과 기계가 협조하며 일할 수 있는 생산 라인을 구축해 생산성이 두 배로 올랐다. 실제로 기계와 협업하는 작업자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오므론 전략 수립 기반된 SINIC 이론
“수요 예측해 기술 개발한다”

다테이시 창업자는 1970년 교토에서 열린 ‘국제미래학회’에서 ‘SINIC(Seed-Innovation to Need-Impetus Cyclic Evolution) 이론’이라는 미래 예측 이론을 발표했다. 다테이시 후미오(立石文雄) 오므론(창업자의 아들)회장은 2014년 5월 교토대 경제학부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창업자(아버지)는 더 이상 미국·유럽의 기업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해 SINIC 이론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피터 드러커도 이 이론에 상당히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SINIC 이론은 과학과 기술, 사회 사이에 순환 관계가 있으며, 서로 다른 두 개의 방향에서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본다. 하나의 방향은 새로운 과학이 새로운 기술을 낳아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것이고, 다른 방향은 반대로 사회의 수요가 새로운 기술 개발을 촉진해 새로운 과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2개의 방향이 서로 원인이나 결과가 되면서 사회가 발전해나간다는 이론이다.

컴퓨터·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에 나온 이 이론은 정보화 사회의 출현 등 21세기 전반까지의 변화상을 정확하게 예측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업자 다테이시는 농업사회→수공업사회→공업화사회→기계화사회→자동화사회→정보화사회→최적화사회→자율사회→자연사회의 순으로 인류 사회가 발전해 나간다고 예측했다. 그가 이 이론을 만들 때엔 자동화사회였고,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는 정보화사회였다. 오므론 측은 2005년부터 최적화사회에 돌입했으며, 2025년부터 ‘자율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최적화사회란 물질적 풍요보다 마음의 풍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신적인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움직임이 눈에 띄는 시대를 말한다. 효율성·생산성을 추구하는 산업 사회의 가치관이 스러지고 삶의 기쁨을 추구하는 가치관이 높아지는 시기다. 그다음으로 2025년부터 찾아올 것으로 예측된 자율사회에선 개인이 사회의 제약 없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한다. 다테이시 후미오 회장은 강연에서 “오므론은 SINIC 이론을 나침반으로 삼아 장기 비전을 세운다”라고 했다.

SINIC 이론은 ‘수요를 예측해 기술을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경영에 활용할 수 있다. 실제로 창업자 다테이시 가즈마가 처음 X선 사진 촬영 타이머를 개발할 당시엔 X선 사진을 촬영하는 데 쓸 정확한 타이머가 없었다. 그래서 의사가 X선 사진을 찍을 때 어려움을 겪었다. 다테이시는 이 수요를 포착해내고 타이머를 개발했다. 무인개찰기도 마찬가지다. 서울에 처음 지하철이 개통됐을 때는 자동으로 표를 인식하는 장치가 없어 역무원이 일일이 표를 검사하고 사람을 통과시켰다. 무인개찰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자동화사회’였다. 전철역의 혼잡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검표하는 기계가 필요했다.

plus point

오므론, 세계 최초로 복지법인과 합작해 장애인 고용 늘려

오므론교토타이요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 오므론
오므론교토타이요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 오므론

교토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남쪽으로 20분쯤. 스쳐 지나가며 봤던 교세라(京セラ), 닌텐도(任天堂)보다 더 독특한 회사가 눈에 들어왔다. 오므론이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세운 자회사 ‘오므론교토타이요(オムロン京都太陽)’였다.

오므론 창업자 다테이시 가즈마(立石一真)는 경영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59년 ‘우리들의 활동으로 우리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갑시다’라는 사헌(社憲)을 제정했다.

국립벳푸병원 정형외과 과장이었던 나카무라 유타카(中村裕)는 1950년대부터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통해 재활 훈련을 하는 데 주력했다. 1964년 도쿄에서 열린 패럴림픽에 일본 선수단장으로 참여한 그는 충격을 받았다. 미국·유럽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고 긴자(銀座·도쿄의 번화가)에서 쇼핑을 즐기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지만, 일본 선수들은 병원이나 집밖에 갈 곳이 없었다.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선수들은 미국·유럽 선수와 달리 직업이 없이 국가나 단체의 보호를 받는 처지였다. 그래서 그는 이듬해 ‘보호가 아닌 기회를!(No Charity, but a Chance!)’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사회복지법인 ‘다이요노이에(太陽の家·태양의 집)’를 창설했다.

나카무라의 뜻은 민간 기업과 합작해 장애인이 당당하게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 자립할 여건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일본 기업인 300여명을 만났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렵다,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6년 만인 1971년, 오므론 창업자 다테이시를 만났고, 다음 해 오이타현 벳푸시에 ‘오므론타이요’를 세웠다. 사회복지법인과 민간기업(오므론)이 자본을 공동으로 출자하고 공동 운영으로 장애인 고용을 확대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미야지 이사오(宮地功) 오므론교토타이요 사장은 “당시 일본에 장애인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라며 “다테이시 창업자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기업 이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도전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공장은 설립 첫해부터 흑자를 냈다. 오므론다이요가 성공하자, 소니·혼다·덴소(도요타자동차 자회사)·후지쓰·미쓰비시상사 등이 다이요노이에와 합작회사를 세웠다. 오므론은 1985년 다이요노이에와 합작한 두 번째 사회복지법인 ‘오므론교토다이요’를 설립했다.

7월 19일 오후 오므론교토다이요에서 기자의 취재를 위해 공장을 안내해 준 아라이 히로아키(荒井裕晃)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이었다. 이 공장에선 체온계, 타이머, 광전센서 등 총 1500종류의 제품을 다품종 소량 생산한다. 전체 직원 184명 중 147명이 장애인이다. 생산관리와 품질관리도 절반(16명)은 장애인이 맡고 있다.

오므론의 공장자동화 특징인 ‘사람과 기계의 협업’도 이 현장에 적용돼 있다. 장애가 있어도 불편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기계가 돕는 것이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탄 작업자가 작업 테이블 상단에 놓인 골판지 상자를 하나씩 집어 포장할 수 있도록 기계가 도입돼 있다.

아라이는 “장애가 없는 사람이라면 상자를 하나씩 집기 위해 일어서면 되지만, 휠체어에 탄 작업자는 일어설 수 없어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며 “하루에 300개를 만든다면 작업자가 무의식적으로 300회 일어서야 하지만, 장애인의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기계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비장애인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개선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덕호 기자,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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