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승규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일본 동경대 농업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농촌진흥청장, 한경대 석좌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민승규 동국대 농업경제학과, 일본 동경대 농업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농촌진흥청장, 한경대 석좌교수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우리나라 농민들이 네덜란드 기업 ‘프리바’의 시설원예 복합 환경 제어 솔루션을 많이 씁니다. 이 솔루션에 모이는 데이터는 어디로 갈까요? 다 네덜란드 프리바 본사로 갑니다. 한국이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국 농가의 중요한 정보가 외국으로 유출되는 셈입니다.”

8월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한국 농업의 진짜 위기는 ‘데이터 주권’을 뺏기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프리바는 이렇게 쌓인 한국의 데이터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고 솔루션 기능을 강화할 것이다. 프리바 솔루션을 통해 농가의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제품에 대한 농민의 의존도는 높아진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한 그는 2010년 당시에도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 농업 위기를 ‘끓는 물속 개구리’에 빗대 언급한 적이 있다.

뜨거워지는 물은 위기상황으로 치닫는 한국 농업의 현실을 빗댄 것이고 그 물에서 튀어나오지 않는 개구리는 바로 농업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민 교수는 “농민뿐 아니라 국민, 정책을 만드는 모두가 하나가 되어 뜨거워지는 물에서 튀어 나오려는 노력을 할 때 농업에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30여년간 한국 농업이 가야 할 길을 고민한 그를 만나 우리 농업이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 농업이 실제로 위기인가.
“수입 개방 이후 농가 수익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농업 인구는 줄고 도시와 농촌 간 격차는 벌어졌으며 농가 부채는 늘어나고 있다. 식량인 동시에 미래 산업의 성장 동력으로 간주되는 종자산업에서 한국은 경쟁력을 잃었다. 작물보호제(농약)도 거의 모두 외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스마트팜(스마트 농업) 분야다. 한국의 앞선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 최근에는 농업에서 꿈과 희망을 찾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젊은 농부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미래가 밝다고 본다.”

농업이 왜 중요한가.
“과거 농업은 단순한 먹을거리 산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농업이 다양한 분야와 융·복합되고 있다. 농업과 ICT, 생명공학기술(BT) 등을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농업은 생명 산업이 되고 있다. 해외 여러 사례를 보면 농업이 큰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성공사례를 어떻게 활용해 한국 농업을 발전시킬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글로벌 농화학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경쟁력을 높여야 하나.
“한국은 쌀 종자가 발달했고 일본은 과수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농업 부문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까지 한·중·일이 협력해 하나의 농업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농업’이라는 이미지를 특화시켜 함께 가지 않으면 한국만 낙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컨대 한·중·일 생산자들이 협력해 한국의 안동소주, 일본의 고시노 간빠이(사케), 중국의 마오타이주를 묶어 ‘삼국주’라는 이름으로 파는 것이다. 중국, 일본과의 협력과 경쟁을 통해 새 시장을 여는 것이다.”

한국 농업이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농업 분야 연구·개발(R&D)을 확대해야 한다. R&D에 대한 무게 중심은 4차 산업혁명 기술 쪽에 둬야 한다. 농업 선진국과 기업이 활용하고 있는 빅데이터와 데이터 활용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작물보호제, 농기계, 비료, 가공 등 농업 유관 산업에 민간 주체가 많이 뛰어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민간 분야의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고 농업이 발전한다. 네덜란드에서 함께 공부한 5명의 박사 중 3명이 졸업하고 창업을 했는데 모두 농업 생산 쪽이 아닌 농업 유관 산업에 뛰어들었다. 한 친구는 장미꽃 사진을 찍으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꽃의 품질을 선별해주는 기술을 가지고 창업했다. 창업 1년 만에 이익을 내면서 성장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그동안 무분별하게 쌓아온 데이터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 농촌진흥청, 농협, 농어촌공사 등 다양한 농업 관련 기관이 있는데 이들 기관이 수십년 동안 쌓아온 데이터의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데이터는 의사결정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정리·조직해야만 유용한 ‘정보’가 된다. 각 기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범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농가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노하우나 재배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 정비가 필수다. 현재 한국은 농가의 재산권 개념이 분명하게 자리잡지 않았다. 데이터의 수집·이용 관련 갈등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책을 수립할 필요도 있다. 미국 농기계 회사 ‘존디어’는 농기계 판매 시 농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가 존디어 소유임을 인정하는 내용을 계약서에 넣고 있다.”

중국은 농가에 사물인터넷, 지능형 설비를 보급하는 등 IT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도 소규모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처럼 IT 관련 장비나 센서 등 지능형 설비 도입을 지원하는 방식도 좋다.”

정부 지원책이 한국 농업의 자생력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다.
“현 정부는 올해부터 농촌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하는 청년 농업가에게 월 최대 100만원(2년차 90만원, 3년차 8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 일부에게는 이런 지원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농업가에게 도전 정신을 키워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열심히 하려는 농업가에게 기회를 주는 인센티브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쌀 직불금과 같은 보조금은 재배면적에 비례해 금액을 산정하고 있어 영세 농가보다 대규모 농가에 더 큰 혜택이 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직불금은 농민의 소득 안정을 위한 복지 정책의 하나로 도입된 만큼 소규모 농가에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도록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보조금을 계속 줘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한국의 보조금 지급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도 한참 낮다. 2013년 기준 국내 농업총생산액 대비 농업보조금 비율은 3.7%로 OECD 회원국 평균(11.3%)의 3분의 1, 유럽연합(EU) 평균(17.9%)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일본(14.1%)이나 미국(7%)과 견줘서도 매우 낮다. EU나 미국 등 선진국이 농민에게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유는 농업은 중요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농업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에 큰 역할을 했음에도 부가가치가 낮아 지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다.

농업 정책은 복지 차원에서의 접근과 산업 차원에서의 접근을 동시에 해야 한다. 70대 이상의 소농가에는 복지 차원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반면 30~50대 젊은 농민에게서는 경쟁을 통한 성장을 이끌어 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기술 등 혁신적인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젊은 농부들에게 농업의 미래가 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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