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업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한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마트팜 솔루션 융합연구단의 토마토 농장. 사진 KIST
국내 농업 전문가들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한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마트팜 솔루션 융합연구단의 토마토 농장. 사진 KIST

최근 3년간 글로벌 농업 시장의 지형도가 급변했다. 종자 시장과 작물보호제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글로벌 농화학 기업들의 인수·합병 과정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농업 선진국과 후발 국가에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려는 스마트 농업에 대한 시도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세계 농업(종자·작물보호제·스마트팜 등) 시장에서 한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성적표는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농업은 경쟁력을 잃은 지 오래”라고 입을 모았다. 도시 근로자 소득 대비 농가 소득은 1990년 97.4%에서 2016년 64.1%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농업 인구는 600만 명에서 252만 명으로 줄었다. 많은 사람이 농업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고 농촌을 떠나고 있다는 얘기다.

성장 가능성을 보고 농업에 활발하게 투자하고 있는 선진국과 달리 투자도 적다. 2016년 농림수산식품 분야 재정 규모는 19조4000억원으로 정부 총지출의 5% 수준이다. 총지출 대비 농림수산식품 분야 재정 규모는 2005년 6.8%로 정점을 찍은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농업의 반도체’로 불리는 종자 산업에선 어떨까. 세계 종자 시장 규모는 450억달러(약 50조원)로 추정된다. 하지만 한국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흥농종묘, 중앙종묘, 서울종묘 등 3대 종자 회사가 몬산토 등 다국적 종자 회사에 모두 매각되면서 종자 산업의 토대가 거의 무너졌다. 이 때문에 한국은 종자 수출로 인한 로열티 수입보다 종자 수입에 따른 로열티 지출이 훨씬 많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이 해외 국가에 지출한 종자 로열티가 1456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한국이 벌어들인 로열티는 9억5000만원으로 로열티 지출액의 0.6%에 불과했다. 농진청은 현재의 종자 로열티 지출 추세가 계속되면 2020년까지 부담해야 할 로열티가 7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종자 주권을 잃은 한국은 계속해서 비싼 로열티를 내고 해외 종자에 농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다.

국내 작물보호제(농약) 시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국내 작물보호제 업체들은 원제(농약의 원료물질)의 98% 이상을 신젠타·몬산토·듀폰·다우 등 해외 원제사에서 공급받고 있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국내에서 농약 완제품도 판매하고 있어 국내 업체와 경쟁이 불가피하다. 한정된 시장에서 매출을 내야 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와 원제사 간 갈등도 벌어진다. 원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해외 원제사가 갑자기 원제 공급을 끊는 등 횡포를 부려도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 업체도 원제를 개발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국내 시장 규모(2017년 기준 1조2000억원, 글로벌 시장은 60조~70조원)가 크지 않고,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 쉽지 않다.


대기업의 진출·투자로 경쟁력 확보해야

종자와 작물보호제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은 한국 농업에 기회는 없을까. 민승규 한경대 석좌교수는 “뛰어난 한국의 정보기술(IT)을 농업에 접목해 부가가치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진국들이 IoT, 빅데이터,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농업에 접목하는 것처럼 한국도 ‘스마트팜’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실 내외부 환경 정보를 기반으로 작물 생장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주는 스마트팜 솔루션이 그 예다. 이 솔루션을 한국보다 IT 수준이 낮은 국가에 수출해 해외 시장을 넓힐 수 있다.

인구가 늘어나고 식량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세계는 지금 식량 부족 위기에 처해 있다. 현 추세로 농작물을 생산하더라도 식량 수요를 맞출 수 없는데, 기후 환경이 악화하고 물, 에너지, 양분 등 생산을 위한 자원이 줄어들면 식량 공급량은 턱없이 부족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농산물 생산 효율성 증대는 전 세계 농업에 주어진 과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작물 생육 환경에 대한 ‘데이터’다. 어떤 환경에서 작물이 가장 잘 자라는지, 현재 어떤 조건을 달리해야 생산량이 늘어날지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몬산토가 2013년 데이터 기업 ‘클라이밋 코퍼레이션’을 1조원에 인수한 사건은 농업에서 데이터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회사는 30년간 축적한 미주 전 지역 1500억 곳(정밀도 100㎡의 구역 단위로)의 토양 데이터와 60년간의 수확량 데이터를 토대로 미국 1억6000만에이커(약 64만㎢)의 농가에 세분화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노주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마트팜 솔루션 융합연구단장은 “네덜란드의 온실 솔루션 1위 기업 ‘프리바’가 가진 경쟁력은 40년간 축적한 작물의 생육 환경에 대한 데이터”라며 “축적한 데이터가 전무한 한국 농업계는 지금부터라도 데이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모으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화학 기술력과 종자 기술을 가진 국내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거나 협력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3대 글로벌 농화학 기업들은 최근 3년간의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사의 농화학 기술과 종자 개량 기술을 확보했다.

국내 종자 강소기업인 아시아종묘의 류경오 대표는 “국내에서도 대기업이 종자 회사를 인수·합병해 투자하려고 시도했지만 대기업 농업 투자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무산됐다”며 “농업이 발전하려면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고령화된 소농 중심에서 기업화된 대농 중심으로 틀이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은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막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철웅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규모가 작은 국내 업체의 경우 서로 간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농업 진출에 대한 농민의 반발이 크기는 하지만, 일본처럼 기업의 농업 진출을 일정 비율 이하로는 허용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4차 산업혁명 기술과 농업의 만남, 한국형 스마트팜

스마트팜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 사진 KIST
스마트팜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 사진 KIST

국내 스마트팜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답을 얻기 위해 8월 8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스마트팜 상용화 통합솔루션 기술개발 융합연구단을 찾았다. KIST와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5개 연구기관은 한국형 스마트팜 솔루션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3년간 총 276억원의 예산을 투자했다. 연구를 마치고 다음 달 결과물을 내놓는다. 스마트팜은 비닐하우스 같은 시설원예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자동화 농장이다. 재배 시설의 온도와 습도를 센서로 측정하고, 결과에 따라 환풍기·냉난방기 같은 기기를 가동해 작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한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작물을 촬영하면 정보가 자동으로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되며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웹상에서 생육 상태를 점검하고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다.

스마트팜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는 네덜란드로, ‘프리바’라는 온실 환경 제어 솔루션 기업이 있다. 프리바가 판매하는 원예 시스템을 패키지로 구매해 이 시스템이 제공하는 세팅(설정)대로 작물을 키우면 생산성이 높아진다. 

노주원 KIST 융합연구단장은 “프리바의 솔루션은 기본적으로 유리온실이 많은 네덜란드에 맞게 제작된 솔루션으로 우리나라 기후 환경에 최적화된 것은 아니다”라며 “융합연구단은 국내 기후에 적합하면서도 프리바 시스템의 절반 가격의 제품을 곧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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