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과몰입(중독)의 관점으로 보는 정부는 셧다운 규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즐기는 것을 과몰입(중독)의 관점으로 보는 정부는 셧다운 규제를 이어갈 예정이다.

“맞다. 셧다운 당하는데…. 헐.”

2012년 10월 13일 밤 국제 게임대회 ‘아이언스퀴드’에 참가한 프로게이머 이승현군(당시 15세)은 ‘스타크래프트2’ 2세트 경기를 하다 갑자기 대화 창에 GG(Good Game)를 쳤다. GG는 졌다는 항복 선언이다.

이군이 ‘셧다운’을 언급하며 갑자기 경기를 포기하자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관중과 중계 캐스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군이 갑자기 경기를 포기한 이유는 국내에만 있는 셧다운 규제 때문이었다.

셧다운은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것을 원천 차단한 제도(청소년보호법)다. 프랑스에서 열린 대회에 온라인으로 접속해 참가했기에 현지 시각에 맞춰 밤에 경기해야 했는데 이군이 이 제도에 걸려 접속이 차단된 것이다.

e스포츠 업계에서 널리 알려진 ‘셧다운 GG’ 사건이 있은 지 6년이 지났지만 셧다운 규제는 여전하다. 정부 관계자는 “청소년보호법으로 2011년부터 인터넷게임물 제공자가 청소년에게 새벽에는 게임을 제공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존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게 정부 방침”이라며 셧다운제 완화 방침이 없다고 했다.

국내 e스포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못 쓰고 있는 주된 이유는 셧다운제와 같은 규제와 e스포츠 매개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국내 게임 개발사들은 이런 악환경 속에서 경쟁력 있는 e스포츠용 게임 개발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으로 불리는 것은 게임에 리그, 중계방송 등 스포츠 요소를 도입하는 데 선두주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온게임넷(OGN)을 개국하고 ‘스타리그’라는 브랜드로 스타크래프트 리그를 운영해 전 세계 스타크래프트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도 국내 e스포츠 업계의 힘이다. 업계에선 e스포츠라는 용어 자체가 한국 때문에 생겼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종주국의 현재 지위는 초라하다. 글로벌 e스포츠마켓 조사 회사인 뉴주(Newzoo)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e스포츠 시장 규모는 830억3000만원(2016년 기준)으로 전체 글로벌 시장의 14.9%에 그쳤다.

같은 해 북미 지역의 e스포츠 산업 규모는 1200억원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개발사에서는 이렇다 할 e스포츠 게임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며 “대부분은 미국 등 외국에서 개발한 게임을 가지고 하는 경기들”이라고 했다.

리그오브레전드(LoL) 등 다수의 외국 게임에 e스포츠 부문을 모두 내준 셈이다.

정부 규제와 e스포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런 현실의 주된 원인이다. 셧다운제뿐 아니라 온라인 게임 월 50만원 결제 한도 제한 등도 e스포츠의 대표적 규제로 꼽힌다. 또 아시안 게임 시범종목으로 선정된 현재도 대한체육회에서는 e스포츠를 정식종목으로 받아주지 않고 있고, e스포츠협회도 정회원이 아니다. 대한체육회의 정회원이 되면 △국민체육진흥기금 지원 △공중파 중계방송 △초·중·고등학교 교과목 선정 등이 가능하지만 e스포츠는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이유찬 전남과학대 교수(e스포츠학과)는 “대한체육회 정회원이나 아시안게임의 정식종목으로 선정돼 제도권으로 들어가면 정식 선발된 선수와 지도자 등 증명된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데, 지금은 게임 개발사별로 프로 선수와 지도자 규정이 다 다르고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어디서부터가 프로 선수이고 아마추어 선수인지를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여전해

국내에서 e스포츠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데는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도 한몫한다. 게임을 중독 등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병리현상으로만 보기에 e스포츠에 대한 육성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은 “여전히 대한민국에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유찬 전남과학대 교수도 “오버워치나 리그오브레전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등 미국 게임 개발사에서 개발했던 게임들은 제작 단계에서부터 e스포츠 리그를 만들 것을 생각하고 제작에 들어간 게임인데 우리나라 경우에는 게임 과몰입(중독)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많다 보니 지금까지 게임 회사들이 개발 단계에서 e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 게임 회사들도 e스포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e스포츠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을 모아 아마추어 리그를 운영하거나 전담 교육과정을 갖춘 학교를 세우고 학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들도 e스포츠 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와 호주는 지난 5월부터 오는 9월까지 하이스쿨 e스포츠 리그(HSEL)를 운영하고 있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고교생들은 누구나 e스포츠인 리그오브레전드 토너먼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개 리그를 만들고 유튜브 등을 통해 참여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중국 산둥성 지난에 있는 란샹기술고등학교는 e스포츠 전문교육기관이다. 3년 과정으로 e스포츠 이론과 실습을 교육하고 있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에게는 학비가 전액 면제다.

미국은 투자 시스템을 통한 육성에 중점을 두고 e스포츠 산업을 키우고 있다.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2014년 게임 전문 스트리밍 채널 트위치를 10억달러에 인수했다.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등을 자회사로 둔 세계적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William Morris Endeavor(WME)는 e스포츠를 미국 방송국 TBS를 통해 방영하고 있다. 코카콜라도 대표적인 e스포츠 스폰서 기업이다. 매주 e스포츠를 주제로 한 온라인 쇼를 진행하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e스포츠로 흥행하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단 외국처럼 게임 자체가 재미있고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아야 하는데, 국내 게임사들도 이런 경쟁력있는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정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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