펍지가 주최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대회 ‘PGI 2018’ 1인칭시점(FPP) 부문에서 최종 우승한 중국 OMG팀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펍지
펍지가 주최한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대회 ‘PGI 2018’ 1인칭시점(FPP) 부문에서 최종 우승한 중국 OMG팀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펍지

전 세계 PC 게임이 판매되는 플랫폼 ‘스팀’에서 8월 9일 현재 판매량 1위, 동시 접속자 수 약 100만명을 기록하고 있는 게임은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틀그라운드)’다. 지난해 3월 ‘먼저 해보기(얼리 액세스)’ 버전(한국 정식 출시는 12월)으로 한국의 중소 게임사 펍지가 개발, 출시한 이 게임은 스팀 판매량 2위인 인기 e스포츠 종목 ‘도타2(밸브코퍼레이션)’보다 거의 두 배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배틀그라운드는 100명의 플레이어가 외딴 섬에서 무기를 이용해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우는 액션 게임이다. 생존을 주제로 한 일본의 소설·영화 ‘배틀로얄’이 서구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여러 차례 게임화된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게임은 자기장 밖에 있으면 능력치가 떨어지는 극적 장치를 통해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싸움으로 계속 몰고 간다.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프라이팬으로 상대방의 머리를 내리치거나 이마저도 없으면 주먹이라도 휘둘러야 한다. 그 어느 것도 플레이어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최후의 1인으로 남을 때까지 ‘불안함’과 싸워야 한다. 펍지는 플레이어들의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배틀로얄 장르를 대중화시킨 브랜던 그린을 개발자로 영입하는가 하면, 가상의 섬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배경이 된 러시아 섬에 디자이너를 상주시키기도 했다. 배틀그라운드를 즐겨한다는 한 게이머는 “배틀그라운드는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한 게임”이라면서 “다른 대형 국내 게임사가 만들었다면 소지품을 늘리는 아이템, 스태미너를 늘려주는 아이템 등을 붙이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우연성’도 배틀그라운드의 흥행에 한몫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배틀그라운드는 잘하는 사람이 남는 게 아니라 ‘누가 생존하는가’가 관건인 게임”이라며 “게이머를 일정 구간으로 몰아가는 자기장 역시 랜덤으로 발생하는 데다 전투 역량이 떨어져도 잘 숨어 있으면 최후의 생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반 게이머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우연성(랜덤성)은 배틀그라운드가 ‘제2의 스타크래프트(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제2의 리그오브레전드(라이엇게임즈)’처럼 글로벌 인기 e스포츠 종목으로 자리잡는 데 발목을 잡을 것이란 지적도 많다. 배틀그라운드가 다른 플레이어를 단순히 죽이는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선수들이 전략을 구사하거나 키보드·마우스 쓰는 스킬을 활용하는 등 기량을 발휘할 여지가 적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배틀그라운드는 중국 e스포츠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총싸움 게임(FPS) ‘크로스파이어(스마일게이트)’와 자주 비교된다. 기본적인 FPS 공식을 따르고 있는 크로스파이어의 경우 플레이어의 스킬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이등병인 플레이어가 소령을 만나면 99% 확률로 질 수밖에 없는 식의 구조다. 섬에서 맞닥뜨린 다른 플레이어가 정확히 어떤 스킬을 보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잔인한지 전혀 알 수 없는 배틀그라운드와 대조적이다.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배틀그라운드’. 사진 펍지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우는 ‘배틀그라운드’. 사진 펍지

배틀그라운드 세계대회 8000석 매진

7월 25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의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에서는 총상금 200만달러(약 22억원)가 걸린 ‘펍지 글로벌 인비테이셔널 2018(PGI 2018)’이 열렸다. PGI 2018은 펍지가 처음으로 개최한 글로벌 규모의 e스포츠 대회다. 정규 리그는 아니었지만, 배틀그라운드가 e스포츠로서 국제무대에 첫발을 뗀 순간이었다. 펍지 관계자는 “8000석 규모의 관객석이 매진됐고, 향후 정규 리그를 함께 운영하게 될 방송사 등 파트너사들도 리그 운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전했다.

e스포츠 업계에 종사하는 한 전직 프로게이머는 “게임 특징이 랜덤성이다 보니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가진 플레이어가 많지 않고, 보는 사람들마다 응원하는 플레이어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어떤 플레이어를 옵저빙(observing·e스포츠 경기 중 방송으로 송출될 화면을 선택해 보여주는 것)할 것인가도 계속 과제일 수밖에 없다”면서 “유저 수를 늘림으로써 ‘하는 재미’를 증명했지만, ‘보는 재미’를 어떻게 배가시킬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펍지는 20개팀이 국가대항전 형식으로 맞붙은 이번 PGI 2018에서 팀별로 20개 별도 방송을 내보내는 실험을 했다. 또 실시간 게임 데이터를 스크린에 띄워 해설자들이 흥미진진하게 실황을 중계,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있는 요소를 도입했다. 펍지 관계자는 “내년부터 북미·유럽에서 정규 리그를 개최하고, 팬덤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종목 게이머들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식으로 동기부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한국 게임사들, MMORPG 개발 쏠림
“e스포츠 뛰어들 생각조차 없었다”

지난해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결승전 현장. 사진 넥슨
지난해 넥슨 아레나에서 열린 ‘피파온라인3 챔피언십’ 결승전 현장. 사진 넥슨

국내에서 게임의 성공이 e스포츠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받은 경우는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사례가 유일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간 ‘서든어택’ ‘카트라이더’ 등의 흥행 게임을 낸 국내 대형 게임사 넥슨도 글로벌 e스포츠 시장에서만큼은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장르 중심의 게임 개발로 쏠림현상이 너무 심했고, 이런 게임들이 ‘보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데에 별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MMORPG의 경우 몬스터를 죽이고, 아이템을 얻는 데 집중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경기하고 이를 관전하는) e스포츠에 적합하지 않은 장르”라면서 “게임사들은 이미 아이템과 각종 게임 콘텐츠 부가 사업으로 수익 올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e스포츠 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국내 3대 게임사들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e스포츠 규모가 아직 전 세계적으로 1조원이 안 되는 작은 시장이기는 하지만, 외국 대형 게임사들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거대한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자사 PC 온라인게임 ‘블레이드앤드소울’의 대전 모드를 활용해 게임이 서비스되고 있는 북미, 유럽, 대만, 러시아 등 아홉개 지역의 대표선발전을 거쳐 9월 중 글로벌 대회를 진행하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게임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e스포츠 경기장인 ‘넥슨 아레나’를 4년째 운영하고 있는 넥슨은 ‘카트라이더’나 ‘피파온라인4’ 같은 기존 게임들을 활용한 e스포츠 리그를 지속적으로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모바일게임사인 넷마블도 지난달 ‘펜타스톰 포 카카오’를 활용해 총 9개 지역, 12개 팀이 참석한 글로벌 리그를 개최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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