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알람이 울렸다. 서둘러 씻고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어린이집 등원 가방을 싼다. 단잠에 빠져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워 전날밤 남은 국에 밥을 말아 먹인다. 엄마랑 더 놀고 싶다고 치대는 아이를 들쳐안고 8시에 겨우 어린이집 문안에 밀어넣는다. 여느 때처럼 아이는 등원을 거부한다.

‘어머니, OO이 일찍 재워주세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인지 항상 졸려해요.’

업무 중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문자가 왔다. 오늘도 일에 회의는 끝이 날 줄 모른다. 대표 보고 기간인 남편은 오늘도 늦는다는 문자다. 어린이집 문을 닫기 직전인 7시 30분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뒷정리 중인 선생님 주변에서 홀로 서성이던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나온다. 친정 엄마가 보낸 반찬을 꺼내 저녁밥을 먹이고 놀아주다보니 어느새 밤 11시. 침대에 누운 아이는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내일은 엄마가 더 일찍 오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조용히 거실로 나와 쌓여 있는 설거지를 한다. 자정이 되어서야 가져온 일을 꺼내들었다.

‘이코노미조선’이 부부가 모두 일하는 가정의 남성과 여성 15명을 심층 취재한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한 대한민국 30~40대 맞벌이 부부들의 하루다. 지난해 기준 유(有)배우자 가구 중에서 맞벌이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44.6%다. 우리나라 부부 두 쌍 중 한쌍은 맞벌이 부부인 것이다. 

한국의 맞벌이 부부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이가 부모의 손을 어느 정도 덜 타는 나이로 여겨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끝없는 허들을 넘어야 한다. 눈치보다가 예정보다 빨리 복귀해야 하는 육아 휴직, 아무도 없는 교실에 제일 먼저 등원시켰다가 가장 늦게 데리고 나와야 하는 어린이집, 방과 후 과정이 있어야 선택할 수 있는 유치원, 돌봄교실과 사교육 시장 중 양자택일해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7, 9세 남매의 엄마이자 은행원인 이선아(가명)씨는 ‘이코노미조선’에 “어느날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아들이 ‘왜 엄마는 맨날 제일 늦게 나를 데리러 오느냐’며 펑펑 울었다”면서 “평소 일하는 나를 응원해주던 속깊은 아들이라고만 여겨 안심하고 있었는데, 감춰뒀던 아이의 속마음을 듣자마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자란다
자란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돌봄 절벽에 내몰려 있다.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출퇴근 왕복 2시간을 더하면 하루 12.4시간의 ‘돌봄 공백’이 발생한다. 집이 가까워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1시간 이내로 준다고 쳐도 최소 11시간이다.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의 돌봄 공백 문제는 심각하다.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어린이집·유치원 아동의 기관 이용 시간이 평균 7.08시간인 반면 초등학교 입학 후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5.54시간으로 준다. 1.5시간 만큼의 공백이 생긴다. 실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저학년 10명 중 1명은 성인 보호자의 적절한 돌봄 없이 주당 9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 아이들의 공백을 메울 만한 손은 턱없이 부족하다. 육아 휴직을 마친 부모가 복직 후 기댈 수 있는 공적 돌봄서비스인 ‘아이돌봄서비스’(만 3개월 이상~만 12세 이하 아동)는 2017년 기준 6만3546가구가 이용하고 있다. 같은 기간 만 12세 이하 자녀를 가진 맞벌이 가구 수가 151만6000가구에 이르는 것과 비교했을 때 공급이 수요에 크게 못미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방과 후 이용할 수 있는 초등 돌봄교실은 2017년 기준 약 24만명이 이용 중이다. 정부가 추산하는 초등 맞벌이 돌봄 수요는 46만~64만명이다. 이 때문에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는 경쟁률이 2 대 1에 이를 정도로 빡빡하다.

하지만 정부는 맞벌이 가구의 서비스별 돌봄 수요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관련 통계치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위원회가 급하게 통계 자료를 작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할마·할빠(육아를 도와주는 조부모를 일컫는 말)’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맞벌이 부모들은 이런 이유로 사교육 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대기업 과장으로 일하는 홍지연씨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돌봄교실 하교 시간이 오후 1시로 당겨졌다”면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방학 시작 전부터 일찌감치 조사해보고 점심을 제공하는 월 45만원짜리 학원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벽 넘지 못해 ‘경단녀’로

맞벌이 부부가 육아 과정에서 갈등을 겪거나 돌봄 공백을 채울 수 없게 되면 결국은 한쪽이 퇴사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경단녀’가 된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경력단절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1~3학년(만 7~9세) 자녀를 둔 직장건강보험 여성 가입자 1만5841명이 새학기를 전후한 2~3월에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나타났다. 육아휴직, 어린이집 유치원의 고비를 어찌어찌 넘었더라도 엄마 돌봄이 가장 필요하다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정부는 2006년부터 12년간 예산 127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다. 하지만  성적표는 참담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명당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사상 최저치인 1.05명까지 떨어졌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5일 정부가 발표한 새로운 저출산대책은 출산율에만 집착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일단 ‘삶의 질개선’으로 옮긴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환영한다. 다만 이행기에 있는 만큼 충분한 연구 검토를 통해 재원을 효율적이고 유연하게 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남성, 아동을 독립적 주체로 보고 각자가 살며 맞닥뜨리는 장애를 제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일·가정 양립 정책을 만들 때에도 업종별 다른 근로 현실을 반영해 효율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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