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리넌에는 트렁크 바닥에서 두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펼쳐진다.
컬리넌에는 트렁크 바닥에서 두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펼쳐진다.

자동차가 ‘엔진룸-실내-트렁크’로 구성된 3박스 형태에서 실내 공간을 더 넓힌 해치백과 지상고를 높여 험로 주행성을 높인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등으로 분화한 것은 필요에 따라 변형된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게다가 자동차는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진화했다. 여기에 럭셔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더해지면서 수퍼 프리미엄 시장이 탄생했다. 흔히 말해 ‘집 한 채 값’인 자동차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국내에도 공식 론칭한 롤스로이스 컬리넌은 기술 발전과 인간 욕구가 만나 만들어진 ‘끝판왕’이나 다름없다.

세계적으로도 프리미엄 SUV 시장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의 전국 평균 레귤러 휘발유 가격이 2013년 갤런(약 3.79ℓ)당 3.51달러에서 2016년엔 2.14달러까지 떨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물론 작년 7월 48달러였던 북해산 브렌트유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현재는 72달러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한 번 커진 시장이 급하게 줄어들지 않아 대배기량 엔진을 사용하는 픽업트럭과 대형 SUV의 인기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어디에나 시장이 커지면 더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모델을 찾는 수요가 있기 마련이다. 전통의 suv 맹주라고 부를 수 있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가 가장 먼저 이 인기의 파도를 탔다. 험한 오프로드를 견딜 수 있는 강인한 차체는 정글이나 다름없는 일반 도로에서의 안전성을 보장했고, 승용차에 비해 높고 넓은 차체 덕에 고객들은 시원한 시야와 함께 더 넓은 실내 공간까지 누릴 수 있다. 게다가 뒷자리 공간을 크게 키운 롱 휠베이스 모델이 추가되면서, 그동안 전통적으로 대형 세단의 영역으로만 생각되던 업무용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대형 럭셔리 SUV를 전문 기사가 운전하는 쇼퍼 드리븐(Chauffeur-Driven) 자동차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독일 브랜드들도 기존의 SUV보다 더 크고 화려한 차들을 잇달아 내놓거나 준비하고 있다. BMW는 X5의 차체를 키우는 것을 넘어 럭셔리 쿠페에 사용하던 숫자 8을 넣은 X8을 2019년에 내놓을 계획이다. 아우디는 Q8, 벤츠는 기존의 GLS에 577마력 엔진을 얹은 AMG 모델까지 내놓았다. 여기에 그동안 한 번도 SUV를 만들어보지 않았던 이탈리아 마세라티나 람보르기니마저 뛰어들면서 점점 더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들 중에도 가장 프리미엄이라고 말할 수 있는 SUV로 영국 벤틀리의 벤테이가와 롤스로이스 컬리넌이 있다. 벤테이가는 차체 길이가 5100㎜를 넘어 풀사이즈 SUV급인 데다 W12 6.0ℓ 엔진을 얹어 여유로운 성능을 발휘한다. 이번에 국내에도 데뷔한 롤스로이스 컬리넌은 이를 뛰어넘는다. 우선 차 길이가 5341㎜로 더 길다. 차 폭은 2164㎜로 현대 싼타페보다도 무려 27㎝가 더 넓어 도로를 가득 채운다. V12 트윈 터보 6.75ℓ 엔진은 563마력의 최고출력과 무려 86.7㎏·m의 토크를 1600rpm이라는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뿜어낸다. 100% 알루미늄인 럭셔리 차체를 쓴 컬리넌의 무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넉넉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힘으로 이 큰 덩치를 시속 250㎞로 여유롭게 달릴 수 있게 돕는다.


트렁크와 실내가 분리되는 컬리넌

겉모습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른 어떤 SUV에서도 볼 수 없는 높은 후드 라인과 판테온 신전을 가져온 듯한 롤스로이스 특유의 라디에이터 그릴이 만드는 당당함이다. 컬리넌은 SUV로는 처음으로 3박스 디자인을 적용했고 4인승 시트를 선택하면 SUV 최초로 트렁크와 실내에 유리로 된 격벽을 세우게 된다. 트렁크를 여 닫을 때 실내 온도가 바뀌는 것을 막고 소음까지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레크리에이션 모듈이라는, 어떤 종류의 레저 활동 장비라도 싣는 것이 가능한 맞춤 공간도 주문할 수 있다. 백미는 컬리넌 뷰잉 스위트라는, 트렁크 바닥에서 전동으로 펼쳐지는 두 개의 의자와 테이블이다. 산 위나 강가 등 멋진 곳을 찾았을 때 캠핑용 의자나 테이블을 번거롭게 펼칠 필요가 없다. 

컬리넌의 고급스러운 실내.
컬리넌의 고급스러운 실내.

기본 사양을 제외하고 대부분 주문 제작이 가능하다 보니 차값도 4억6900만원부터 시작한다. 시트의 재질과 모양, 진짜 나무를 가공해 만드는 장식에는 원하는 무늬를 새기거나 컬러를 지정할 수도 있다. 하다못해 바닥에 깔리는 양털 매트도 두께와 재질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다른 자동차 회사가 유명 홈 오디오 회사와 제휴하고 그 브랜드를 드러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과 달리 컬리넌의 스피커에는 ‘Bespoke Audio(맞춤 오디오)’라는 표시만 있다. 다른 누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롤스로이스 자체가 브랜드라는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컬리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디서나 수월한(Effortless, Everywhere)’이라는 모델 슬로건이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뭔가를 고민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액셀 페달을 바닥까지 밟아야 한다거나, 머리 크기만 한 돌들이 깔린 오프로드를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 등은 사실 재미의 일부다. 하지만 이건 롤스로이스와 컬리넌에 어울리지 않는다. 운전자와 탑승자는 특별한 노력 없이 어떤 지형이나 장소라도 갈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철학은 복잡한 오프로드 기능 선택 버튼이 아닌, ‘Everywhere’라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전자장비가 알아서 최적의 성능을 발휘하게 만든 것에도 드러난다. 이처럼 간결하고 명확하게 브랜드 철학을 전달했던 차는 사실 없었기에, 가격을 뛰어넘는 대단함이 있다.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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