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종이상자에 식료품을 넣어 포장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종이상자에 식료품을 넣어 포장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은 아직 종신고용의 문화가 남아 있는 나라다. 최근엔 정년을 넘었더라도 일할 의지만 있으면 70세, 또는 그보다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한 구인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동시장은 한국보다 유연한 부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노동자 파견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별다른 기술이나 능력이 필요 없는 단순 사무직뿐만 아니라, 전문성이 요구되는 IT업계에서도 파견사원에게 중요 업무를 맡기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한국에선 노동 문제를 말할 때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선 크게 ‘정사원(한국의 정규직)’ ‘계약사원’ ‘파견사원’ ‘파트타이머·아르바이트’ 등 4가지로 분류한다. 이 중 계약사원, 파견사원, 파트타이머·아르바이트는 비정규고용의 범주에 들어간다. 계약사원과 파견사원은 비정규고용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계약사원은 일하는 회사에, 파견사원은 인력파견업체에 소속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어떤 회사가 파견사원을 고용하고 있으면, 노동자 파견 계약을 맺은 파견사용사업주의 지휘 명령하에서 근로를 시켜야 한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근로 5459만명 중 비정규직의 비율은 37.3%(2036만명)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선 파트타이머(997만명), 아르바이트(417만명)의 비중이 높고, 계약사원은 291만명, 파견사원은 134만명이다.

일본 재계가 ‘6중고’ 중 하나로 노동 규제를 꼽았던 것은 파견사원 문제 때문이었다. 제조업 파견 등에 대해 노동 규제가 심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선 1985년 파견법을 제정했다.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업종을 법으로 규정하는 ‘포지티브 방식’이었다. 당시엔 13개 업무만 파견노동을 사용할 수 있었고, 파견 기간은 1년 또는 9개월로 제한됐다. 이후 파견 업종을 확대해 나가다가, 1999년에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업종을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후 일본 기업들은 파견 노동자를 더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파견 노동자를 일시에 대량 해고하면서 사회문제가 커졌다. 새로운 일감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기 시작했다. 실직 후 집세를 낼 수 없게 된 파견 노동자 500여명이 2008년 연말 도쿄 히비야(日比谷) 공원에 모여들어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숙식을 해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파견법을 강화했다. 일용직 파견노동을 금지했고, 그룹 내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 파견할 수 있는 노동자 비율을 80%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법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제조업 파견을 원칙적으로 제외한다는 등의 파견법 개정법안이 상정되는 등 규제 강화 논의 속에 파견노동 시장은 축소되는 경향을 보였다.

2012년 말 자민당의 아베 정권으로 바뀐 이후에는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파견법이 개정됐다. 개정 전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기계 설계, 방송 연출, 통·번역, 재무, 연구·개발 등 26개 업종만 파견 기한에 제한이 없었고, 다른 업종은 원칙적으로 1년, 최장 3년간만 일할 수 있었다. 개정법에선 원칙적으로 파견 가능기간을 3년으로 정했지만, 파견사업주가 3년을 넘겨 이 노동자를 계속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에도 노동조합에 의견을 물은 뒤 조합 측에서 이의만 제기하지 않는다면 파견 연장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같은 사업장에 동일한 노동자를 3년 이상 파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들어갔다.

노동자에게 유리한 내용도 포함됐다. 파견 사업 전체를 허가제로 변경해 무자격 업체 등에 노동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줄였고,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에 이들의 경력 형성을 염두에 둔 체계적 교육훈련을 실시하게 했다.

2015년 파견법이 완화됐지만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는 2014년까지 완만하게 감소하다가 2015년부터 3년 연속 증가하고 있다. 경제가 살아난 데다 인력 부족 현상까지 겹쳐 기업이 정규직으로 채용해서라도 우수 인재를 잡아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직은 노동시간 규제 안 받아

한국은 7월 1일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사회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일본은 노동시간 단축을 넘어 세부 시행규칙에 대한 논의가 꽤 진전된 상태다. 일본이 지난달 ‘일하는 방법 개혁’ 법을 통과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법은 고소득 전문직은 노동시간의 규제를 받지 않도록 하면서도, 일본에서 사회 문제가 된 과도한 야근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에 도입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금융회사 딜러나 컨설턴트, 연구직 등 연 수입 1075만엔 이상의 고소득 전문직은 ‘주 40시간’ 등의 노동시간 규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해 일하는 방식이다. 야근수당이나 휴일수당 등은 받지 못한다.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G7(서방 선진 7개국) 중에서 최하위다. 이 제도는 고소득 전문직은 일한 시간이 아니라 성과를 토대로 평가받고 임금을 받도록 한다. 오래 일하더라도 돈을 더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일하고 높은 성과를 내도록 유도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노동자의 잔업시간은 ‘1개월 45시간, 1년 360시간’을 원칙으로 정했다. 그러나 당국이 이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추가 잔업을 시킬 수 있지만, 추가 잔업이 월 45시간을 넘는 달은 1년에 6개월까지로 제한했다. 연간 잔업시간도 720시간을 넘으면 안 된다.

단 이것은 휴일 노동을 포함하지 않는 기준이다. 휴일 노동을 포함하는 경우는 월 100시간 미만, 6개월 평균 80시간 미만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 기준이 1947년 일본 노동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실질적 잔업 상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준을 위반하는 기업엔 벌칙을 부과한다. 지금까지는 노사가 합의만 하면 몇 시간이라도 잔업을 할 수 있었다.


plus point

연 매출 22조원의 대기업형 파견업체도

2014년 10월 미네기시 마스미 리쿠르트홀딩스 사장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리쿠르트홀딩스의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블룸버그
2014년 10월 미네기시 마스미 리쿠르트홀딩스 사장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리쿠르트홀딩스의 도쿄증권거래소 1부 상장 축하 행사에 참석했다. 사진 블룸버그

한국도 파견 노동자가 있지만 활성화돼 있지는 않다. 한국은 청소·경비 등 일이 단순한 32개 업무만 파견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지만, 일본은 항만운송 건설업, 의료 등을 제외한 모든 업무에 파견근로가 가능하다. 미국·영국은 파견 규제가 아예 없고, 독일도 건설업 이외 업종에서 파견이 가능하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여전히 포지티브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파견노동이 활성화되지 못했다”라며 “세계적인 파견노동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장 경직화를 초래해 고용 창출이나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파견노동이 활성화돼 있는 일본에선 대형 파견업체도 존재한다. 인력 파견업체 리쿠르트홀딩스는 도쿄주식거래소에 상장돼 있고, 시가총액은 5일 기준 5조1031억엔으로 15위다. 유니클로 브랜드로 유명한 패스트리테일링(16위)이나 닌텐도(17위)보다 높다. 리쿠르트홀딩스는 지난해(2017년 4월~2018년 3월) 매출액 2조1733억엔(약 22조원), 순이익 1516억엔(약 1조5350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보다 11.9%, 11.0% 성장했다. 리쿠르트홀딩스의 일본 인재 파견 매출액은 5092억엔(약 5조1465억원)으로 전년보다 9.9% 증가했다.

손덕호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