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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 포스텍(포항공대) 컴퓨터공학과, 노리 공동창업자, 소프트뱅크벤처스 벤처파트너

“요즘 많은 블록체인 업체들이 생기다 보니, 어떤 펀드가 투자했는지가 회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어요. ‘해시드’가 투자하고 있다고 하면, 다른 글로벌 투자 펀드들도 업체를 신뢰합니다. 해시드에 투자받으려고 줄서는 기업들이 많은 이유죠.”

세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인 ‘콘센서스’에서 만난 중국의 한 블록체인 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펀드 규모 기준 국내 최대 블록체인 투자펀드인 해시드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크다는 것이었다. 해시드는 이더리움, 카이버네트워크, 오미세고 등 글로벌 블록체인 업체 30여곳에 투자했다.

5월 13일(이하 현지시각)과 14일 두 차례에 걸쳐 뉴욕에서 열린 비공개 블록체인 행사와 콘센서스 현장에서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와 만났다. 김 대표는 “블록체인은 기업의 성장에 기여한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기여한 만큼 투명하게 보상해주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투명한 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블록체인 업계로 뛰어들게 된 계기는.
“인공지능(AI) 수학교육 플랫폼 ‘노리(KnowRe)’를 창업하고 운영하면서, 국내외 여러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해본 경험이 있다. 약 3년 반 전 우연한 계기로 시가총액 2위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의 백서(사업 계획서)를 접한 뒤, 이더리움이 매우 혁신적인 기술 플랫폼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후 점차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언젠가는 세계의 개발자들이 반드시 이 플랫폼의 가치를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블록체인 업계에 뛰어들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블록체인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는 일보다는, 세계에 쏟아져나오는 뛰어난 사업을 접하고 여기에 기술적인 조언을 해주고 커뮤니티를 조성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해시드를 창업했다.”

‘블록체인의 본질’을 알아야 제대로 투자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블록체인의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 주식회사 모델은 회사가 최대한의 이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주주들만이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는다. 실제로 이윤을 만드는 데 기여한 많은 사람들이 정작 이윤 배분에서 배제돼 왔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하청업체 직원들은 대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하청이라는 개별 작업에 대한 보수로 현금을 받을 뿐이다. 대기업의 성장에 비례하는 이익을 공유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대기업 성장에 비례하는 이익을 공유하려면 하청업체가 현금 대신 대기업의 주식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주식회사 모델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블록체인에서는 기업의 이윤을 만드는 데 기여한 모든 사람이 투명한 절차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다. 주식회사 모델로 친다면, 주주, 서비스 참여자 등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든 모든 이해관계자가 포함된다. 소비자 역시 쇼핑몰에서 리뷰를 남기는 식으로 서비스에 기여했다면 보상받을 수 있다. 어떤 행동을 기여했다고 볼지는 개별 기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는 주체별로 기업의 서비스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투명한 보상 문제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블록체인 업체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구체적인 투자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을 가장 먼저 본다. 어떤 업체에 투자하거나 자문하기 전에 여러 번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사람들의 역량과 함께 블록체인의 미래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이들이 구상하고 있는 블록체인 사업이 어떠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시장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중점적으로 검토한다.”

그 외에 어떤 일들을 하나.
“해시드는 투자한 블록체인 업체들이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좋은 개발자와 팀을 만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블록체인 분야는 제품 개발, 마케팅, 영업뿐만 아니라 아직 규제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적인 문제에서도 고려할 게 많다.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아직도 한국의 블록체인 커뮤니티에서는 암호화폐 가격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다. 블록체인 시장 전반에 대한 진지한 분석이나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부족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이 세계적으로 높은 위상을 가졌던 것처럼, 미래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도 의미 있는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호화폐 거래를 넘어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져야 한다. 여러 블록체인 업체들을 한국으로 초청하고, 대중들에게도 블록체인의 이론적인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해시드 라운지’가 그것이다. 벌써 17번이나 진행했다.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글로벌 블록체인 업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블록체인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블록체인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초기 단계다. 지금 당장 세계의 모든 산업이 블록체인으로 일거에 전환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아무래도 중앙화된 기존 시스템에 비해 처리 속도나 확장성 측면에서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블록체인 기술들이 잇따라 개발 중이다. 이들이 서비스를 실제로 내놓는 올해 3분기(7~9월)가 업계에 변화를 가져올 전환점이 될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분위기인데.
“지난해 암호화폐 거래 시장 과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플랫폼이 만들어질 때에는 과열된 에너지가 생겨나곤 한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에너지를 무조건 억누르기보다는, 한국이 블록체인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규제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산업이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본격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블록체인 산업 육성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정부의 본격적인 규제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암호화폐를 이용한 다단계 문제나 사기성 블록체인 사업에 일반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부의 규제·감독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도 요건을 갖춘 블록체인 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투자 경험이 많고 경쟁력을 갖춘 벤처캐피털이 이에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과세도 마찬가지다. 암호화폐 거래에도 과세가 필요하다. 합리적인 수준의 과세 정책이 마련돼야 시장이 양성화된다.”

블록체인으로 가장 크게 바뀔 분야가 있다면.
“송금이나 해외 결제는 물론 음악·영상·만화 등 콘텐츠 시장에도 블록체인이 활성화될 것이다. 오프라인 결제에 쓰이는 포인트 카드나 마일리지 같은 분야에도 블록체인이 쉽고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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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준 대표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는 사업에 기여한 모두가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 블룸버그

올해 가장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작년까지는 블록체인 기반의 신생 기업이 많이 생겼다면, 올해 들어서는 수백만명 이상의 실사용자와 수천만명 이상의 다운로드 앱을 보유한 기업들이 앞다퉈 블록체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이미 뛰어난 수준의 제품과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검증한 팀을 보유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업체와 서비스가 나와서 시장을 장악하기보다는, 이처럼 이미 있는 업체·서비스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때 더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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