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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블록체인 스타트업 콘센시스의 뉴욕 본사. 세계 각국의 화폐가 벽에 붙어 있다. 사진 블룸버그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 감독에) 활용했으면 삼성증권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4월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18 미래금융포럼’에 참석한 하재우 한국R3 대표는 블록체인 기술이 금융 분야의 보안 성능을 강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3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 분야 블록체인 컨소시엄이다.

삼성증권 사태는 우리사주에 주당 1000원의 현금배당을 해야 하는데, 실수로 1000주를 배당하면서 실제 발행되지도 않은 주식 28억주가 삼성증권 직원들의 계좌에 입고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삼성증권과 한국 증권시스템의 신뢰도가 떨어졌다. 그렇다면 블록체인 기술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막을 수 있었다는 걸까.

하 대표는 금융당국과 증권사가 실시간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증권시스템은 증권사가 알아서 거래를 처리하고 사후에 금융당국의 확인을 받는 식이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문제가 발생해도 사후에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고객과 증권사, 증권거래소, 예탁결제기관 등 거래에 참여하는 모두가 같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가 정보를 숨기거나 조작하는 게 불가능해지고, 실수를 하더라도 금융당국이 바로잡을 수 있다. 하 대표는 “금융당국에 있어 블록체인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금융산업은 블록체인 혁명이라는 도미노의 첫 번째 블록으로 여겨진다.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인 높은 보안성과 비용 절감이 극대화될 수 있는 분야가 금융이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는 산업 특성상 중개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금융업체 간 거래에서는 중앙은행이 중개자 역할을 하고, 개인이 카드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할 때는 결제대행사가 필요하다. 거래 내역을 기록하고 검증한 뒤 보관하는 중개자가 있어야 금융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특정 기관의 중앙 서버가 아닌 거래 참가자가 나눠서 보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비용 부담을 줄여준다.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은 블록체인을 세계 금융업계가 도입하면 연간 150억~200억달러 규모의 정보기술(IT) 인프라 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세계 금융기관 간 데이터 전송업체인 스위프트(SWIFT)는 금융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글로벌 금융업계가 블록체인 도입으로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이 400억달러(약 43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기도 했다.

높은 보안성도 금융업계가 블록체인에 주목하는 이유다. 한곳에 모든 정보가 집중돼 있는 금융 시스템에서는 해킹이나 바이러스 감염만으로 모든 거래가 정지될 수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시스템 전체가 해킹당할 가능성이 없고, 일부 정보가 해킹되거나 조작되더라도 다른 이용자의 기록과 대조해 문제를 수정할 수 있다. 미국의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콘센시스의 도니 벤저민 수석자문관은 “세계에서 수십억달러 규모의 암호화폐가 거래되고 있지만 암호화폐 시스템 자체가 해킹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완벽한 보안이 블록체인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실시간 보험금 지급도 가능해

보험이나 해외송금 같은 분야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보험사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해서 보험금을 자동으로 지급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 프랑스 보험사인 악사(AXA)는 항공기 지연에 따른 보험금을 자동으로 지급하는 피지(Fizzy)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항공기 지연 보험 가입자들의 계약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둔 다음 글로벌 항공 교통 시스템에 연결해 항공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되면 자동으로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해외송금 처리 비용과 시간을 대폭 줄일 수도 있다. 은행을 통한 해외송금은 중간에 환전을 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암호화폐를 해외송금에 활용하면 중간 환전 과정이 생략돼 훨씬 빠른 송금이 가능해진다.


plus point

[Interview] 반사 짜띠까와닛(Vansa Chatikavanij) 오미세고 전무
“높은 은행 문턱 넘지 말고 은행 없이 거래하세요”

뉴욕=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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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 짜띠까와닛 오미세고 전무. 사진 오미세고

올해 4월 국내 카드업계 1위 신한카드가 금융 블록체인 서비스 업체인 태국의 ‘오미세고(OmiseGO)’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오미세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오미세고는 이미 2013년부터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서비스하고 있는 ‘오미세’의 자회사다. ‘은행 중심에서 벗어나자(Unbank the Banked)’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고 예금·인출·송금·결제 같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인 ‘콘센서스’가 열리기 직전 주말인 5월 11~12일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녹다운센터에서는 ‘이더리얼 서밋(Ethereal summit)’이라는 블록체인 콘퍼런스가 열렸다.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인 조셉 루빈이 창업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콘센시스(ConsenSys)’가 주최한 이 콘퍼런스에는 이틀간 3000여명이 참석하며 성황을 이뤘다. 콘센시스 연사로 뉴욕을 찾은 반사 짜띠까와닛(Vansa Chatikavanij) 오미세고 전무를 12일 녹다운센터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어떻게 은행을 거치지 않고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나.
“오미세고는 ‘지갑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를 개발하고 있다. 이용자가 본인의 지갑을 가지고 있다가 결제·환전을 하려고 할 때 다른 지갑과 연결해주는 것이다. 은행의 중앙 서버에 지갑이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각자 네트워크에 지갑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거래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창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블록체인 기술이 기존 은행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은행을 대체하는 다양한 금융 서비스들이 쏟아질 것이고, (블록체인에서 투명하게 금융 거래 내역이 공개되면) 사용자들은 본인의 돈을 직접 추적·관리할 수 있게 된다. 굳이 은행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기술적인 자극이 될 것이라고 본다. 은행은 지금 너무 비대해져 자정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건강문제가 심각한데 꼬리만 살랑대는 ‘뚱뚱한 개’와 같은 상태다. 현재 서비스를 개선하는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해결돼야 할 과제가 있나.
“오미세고뿐만 아니라 많은 블록체인 회사들이 규제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블록체인 회사들은 대부분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는데 어떤 나라가 어떤 식으로 규제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규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불확실성이 서비스를 만들어 앞서 나가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 블록체인 업체들이 내놓는 서비스들을 보면 마치 개발자들을 위한 것 같다. 주류 같지 않다. 소비자들이 친근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과 사용자경험(UX)을 개선해야 한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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