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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콘센서스 행사 첫날, 등록을 위해 최소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주최 측인 코인데스크는 올해 콘센서스에 8400명이 참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진 뉴욕=장우정 기자

좁은 도로가 꽉 막혀 꼼짝 못 했다. 월요일 아침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심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의 차량을 타고 뉴욕 맨해튼 웨스트 54번가에 막 들어선 참이었다. 5월 14일 현지시각 오전 7시 40분.  왼편으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멀찍이 오른편에 미국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가 만든 ‘LOVE(사랑)’ 조각상이 보였다.

스마트폰 시계를 계속 쳐다보며 마음을 졸이자 우버 기사는 “오늘은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막힌다”고 했다. 그는 곧 “급한 것 같은데 걸어가는 게 훨씬 빠를 것 같다”며 갓길에 차를 댔다. 빠른 걸음으로 한 블록을 걸어 6번가와 만나는 교차로에서 왼편으로 꺾자 길 건너 오른편으로 힐튼 미드타운호텔이 보였다. 생각보다 호텔 입구가 번잡하지 않아 쉽게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가 입이 벌어졌다. 로비 전체에 끝도 없이 꼬불꼬불 늘어선 사람, 사람의 행렬. 방금 전 교통정체보다 더한 광경이었다. 줄 끄트머리에 서 있는 사람에게 “설마 이게 줄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런 거 처음 보냐’는 듯 무표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날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세계 최대 블록체인 콘퍼런스 ‘콘센서스(Consensus 2018)’의 첫날 풍경이었다. ‘ㄹ’ 자 모양으로 늘어선 줄 곳곳에서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이 바닥에서 뭐해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앞에, 옆에, 뒤에 선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는 사람이 보였다. 이들은 각자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추진하려는 사업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로 “대단하다” “멋지다” “우리가 이렇게 협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식의 네트워킹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세계 관계자 1만 명, 뉴욕 심장부에 모여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이자 이번 행사 주최사인 코인데스크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린 콘센서스의 참석자가 총 8400명이었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적어도 1만~1만5000명은 이곳에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콘센서스는 1인당 2000~3000달러(약 230만~330만원)에 달하는 등록비 때문에 시작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비트코인과 비슷한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4월 28일 트위터를 통해 “콘센서스 2018 보이콧을 선언한다”며 “이렇게 비싼 참가비를 받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업계의 구루(guru·스승)로 꼽히는 부테린의 보이콧에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지지 의사를 밝히며 콘센서스 불참을 선언했다. 콘센서스 흥행이 어렵지 않겠냐는 전망까지 나왔지만 실제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싱가포르의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공개적으로는 콘센서스 불참 의사를 밝혔던 업체 관계자들을 현장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며 “블록체인 업계가 총집결하는 자리인 만큼 아무래도 비공식적으로라도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맨해튼 중심가에 모인 이 사람들은 호텔 로비에 있는 카페와 미드타운호텔 주변 카페, 식당, 펍 등을 점령하고 비즈니스 미팅을 이어 갔다. 코인데스크는 1만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5분의 1은 금융권 종사자였다고 밝혔다. 정보기술(IT)·서비스업이 11%, 투자업 종사자가 4%를 차지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는 1만 명 중 20%가 진짜 블록체인으로 사업하고 있거나 해보려는 사람일 것으로 추정했다. 바꿔 말하면, 나머지 80%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블록체인 가면’을 쓴 가짜·사기꾼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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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투자 업계 관계자는 “콘센서스 세션 발표자들과는 연락을 주고받고 자주 만날 수도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발표자와의 미팅 대신 주로 비즈니스 미팅 중심으로 일정을 잡았다”며 “발표 세션의 청중은 업계 고참들보다 블록체인 업계에 갓 입문했거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콘센서스 참석자 추이를 보면 블록체인 업계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불과 400명이 참석했던 이 행사는 지난해 3000명  규모로 성장했고, 올해는 그보다도 규모가 세 배 이상 커졌다.
세계 70개국에서 모인 1만 명은 블록체인이 대체 뭐기에 콘센서스에 모인 것일까. 그 이유를 찾아가려면 우선 블록체인의 핵심을 이해해야 한다. 다섯 가지 문답으로 정리했다.


1|블록체인과 비트코인, 둘의 관계는?

블록체인 기술이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비트코인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직접 거래할 수 있는 통화라는 점에서 금융기관 대신 ‘거래의 신뢰·보안’을 책임질 보완 기술이 필요했다. 블록(덩어리)은 암호화폐 거래 내용의 묶음, 체인(사슬)은 블록을 차례차례 연결하는 것을 뜻한다. 즉 블록체인은 ‘거래 내용을 묶어 연결해 놓은 일종의 거래장부’라고 할 수 있다. 금융기관은 이 거래장부를 중앙컴퓨터에 저장한다. 블록체인에서는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거래 참여자의 컴퓨터에 거래장부의 사본이 각각 저장돼 누구나 거래를 확인할 수 있다.


2|이더리움은 또 무엇인가? 비트코인과 어떻게 다른가?

비트코인이 정부가 발행하고 금융기관이 관리하는 기존 통화를 대체한다면, 2014년 등장한 이더리움은 개인 간 거래할 수 있는 통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블록체인 서비스들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

1994년생 비탈릭 부테린 주도로 골드만삭스 출신 조셉 루빈, 프로그래머 가빈 우드 등이 참여해 만든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에 거래 내역뿐 아니라 계약을 추가로 입력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어떠한 조건을 입력하고, 이것을 만족했을 경우 계약이 실행되도록 써 넣는 것이다. 지난해 프랑스 보험사 악사(AXA)가 내놓은 ‘비행기 연착 보험’이 대표적이다. 보험 가입자가 예약한 비행편과 출발 시간, 해당 비행기의 실제 출발 시간 등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해두면 연착 시 이를 인식해 자동으로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역시 비트코인처럼 금융기관이나 추심기관 같은 제3자가 개입할 필요가 전혀 없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을 스마트폰에 있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 같은 앱(응용프로그램) 장터로 비유했다. 현재까지 나와 있는 블록체인 서비스의 90%에 달하는 1500여 개 서비스가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더리움과 비슷하게 블록체인 앱 장터 역할을 하는 플랫폼으로는 이오스(EOS), 카르다노, 네오, 퀀텀 등이 있다.

블록체인 업체인 메디블록 고우균 대표는 “계약을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계약이 만족스러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생활에 있는 것들이 모두 디지털화돼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제약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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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 기술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비트코인이 등장하면서부터다.


3|블록체인 서비스 업체들이 자금을 모으는 ICO는 IPO와 무엇이 다른가? 주식회사의 주식과 ICO를 통해 만들어지는 암호화폐는 어떻게 다른가? 그 암호화폐의 가치는 어떻게 산정되나?

암호화폐공개(ICO·Initial Coin Offering)는 사업을 위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주식 상장을 뜻하는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와 비슷하다. 각각 암호화폐와 주식을 투자자에게 주고 자금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시행 조건에서 큰 차이가 있다. IPO를 하려면 창업 후 몇 년간 재무제표에 대한 회계 감사를 거쳐야 하는 등 일정 요건이 필요하다. 사업 안정성이 검증돼야 하는 것이다. ICO의 경우는 창업 몇 개월 만에도 사업 아이디어를 담은 백서를 온라인상에 공개하고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모을 수 있다. 투자자들은 백서를 기준으로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판단해 투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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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릭 부테린은 블록체인을 모든 산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더리움’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사진 블룸버그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인 코인스케줄에 따르면 지난해 ICO 건수는 211건(38억8000만달러) 규모로 2016년(45건·9500만달러) 대비 폭증했다. 코인데스크는 올해 1분기(1~3월)에만 63억달러 규모의 ICO가 진행됐다며, 이미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ICO가 폭증하면서 사기성 자금 모집도 늘어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과 무관하거나 사업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백서가 쏟아졌다.

미국 뉴욕·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블록체인 투자펀드 TLDR의 그레이엄 프리드먼(Graham Friedman) 대표는 기자에게 “가치 있는 것과 없는 사업을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면서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좀 더 수준 높고 경험 있는 업체들이 두각을 드러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암호화폐 발행 수는 일괄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비트코인처럼 총발행량이 한정(2100만 개)돼 있는 암호화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암호화폐는 사전에 정해 놓은 조건에 따라 1년에 얼마만큼을 추가 발행하기도 한다.

정부가 실물화폐를 찍어 뿌리면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암호화폐 발행량이 늘어나면 해당 화폐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회사의 사업이 잘될 것으로 기대해 암호화폐 수요가 늘어날 경우, 가치는 올라간다.


4|대기업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다고 하는데, 블록체인 업체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블록체인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중앙에서 통제하는 조직이나 대표자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받아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각 참여자가 중앙통제기관을 대신해 거래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보상으로 암호화폐를 발행해 지급하는 것이 특징이다. 참여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거래의 신뢰도가 올라가고 해킹이나 위변조 가능성이 낮아지지만, 동일 장부를 지나치게 많은 사람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력 낭비, 처리 속도 지연 문제가 발생한다.

대기업들이 활용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는 암호화폐를 발행할 필요가 없다. 기업이 중앙에서 관리하는 역할을 하면서 특정 참여자만 네트워크에 들어오도록 제한해 장부를 나눠 갖기 때문에 처리 속도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블록체인 서비스는 관리자가 필요에 따라 구동 방식을 바꿀 수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블록체인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투명성’ ‘탈중앙화’를 충족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대기업들의 블록체인 서비스를 엄밀한 의미에서 단순 ‘분산형 데이터베이스(DB)’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5|블록체인이 꼭 필요한가? 기존 기술로 대체할 수는 없는가?

블록체인이 잠재력 있는 기술인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모든 업체가 뛰어들어야 할 기술인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일단 블록체인의 잠재력과 현재 기술 수준의 간극이 크다. 콘센서스의 각종 세션과 별도 인터뷰·미팅 등을 통해 뉴욕에서 만난 블록체인 관계자들은 블록체인 기술의 현주소에 대해 공통적으로 ‘초창기(infancy)’ ‘초기 단계(at the early stage)’ ‘너무  어린(too young)’이라는 표현을 썼다. 블록체인이 상용화되려면 초당 거래 승인 건수를 높이고, 거래 수수료를 낮추는 등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많다는 얘기다.

중계자나 중앙집권형 기관을 신뢰할 수 있고, 그 역할이 필요하다면 탈중앙화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 김열매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존 시스템으로 구현하지 못했던 부분 중에 블록체인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사회적 투자, 기부 사업처럼 비용이 발생하고 거래 관계가 있으나 시스템이 불투명하고 체계화되지 않았던 분야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다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로 블록체인을 활용해 투명하게 기부할 수 있는 업체들이 잇따르고 있다. 2013년부터 비트코인으로 기부받고 있는 비영리재단 ‘비트기브(Bitgive)’는 기부자들이 비트코인으로 기부금을 입금하면 이후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있다.


plus point

콘센서스 찾은 美 유명 힙합 스타 스눕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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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유명 래퍼 스눕 독. 사진 스눕 독 페이스북

 콘센서스 둘째 날이던 5월 15일 저녁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Meatpacking) 지역의 한 비공개 장소에 미국 유명 래퍼 스눕 독(46)이 나타났다. ‘리플’이 소수의 리플 지지자를 초청해 콘센서스 뒷풀이 행사를 진행했는데, 여기에 그가 초대된 것이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리플은 암호화폐 가운데 시가총액 3위(약 26조원)다. ‘포브스’ 등 주요 외신들은 “스눕 독이 파티에서 라이브 공연을 했으며, 리플에 대해 눈썹을 치켜뜨며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는 가수 싸이의 ‘행 오버’ 뮤직비디오에 등장했던 것으로 유명한 스눕 독은 ‘암호화폐 홍보대사’라고 할 만큼 암호화폐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왔다. 2013년에는 “다음 앨범을 비트코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고, 실제 비트코인 투자에도 적극 나섰다.

유명인들이 블록체인 행사에 등장하거나 자금 조달 홍보에 동원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세계적인 호텔 재벌 힐튼가(家)의 상속녀인 패리스 힐튼은 지난해 9월 트위터에 블록체인 기업 ‘리디안코인’의 자금 조달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유명 권투 선수 플로이드 메이웨더도 블록체인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홍보에 동원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블록체인 업체 투자를 홍보하는 유명인들은 투자가 적절한지, 법을 준수하고 있는지 등을 보증하기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서 “투자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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