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밀한 고객 ‘타깃팅’이 필요하다.

110여년 역사의 일본 프린터·복합기 회사인 브라더(Brother)는 글로벌 시장에서 HP·캐논·엡손에 뒤를 이어 세계 프린터 시장 점유율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가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고객 타깃팅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브라더는 “우리의 타깃은 소규모 사무실, 홈오피스(사무실화된 공간), 중소형 기업”이라며 “다른 경쟁자들이 모든 영역에 관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 덕에 브라더는 침체 중인 프린터·복합기 시장 상황에서도 세계 40여개국에서 매출 6412억엔(6조3300억원), 영업이익 592억엔을 기록할 수 있었다(2016년 기준).

산업용 식기 세척기 제조업체인 독일 중소기업 빈터할터 가스트로놈(Winterhalter Gastronom)은 원래 학교·병원·구내식당·호텔·레스토랑에 물건을 공급하던 회사였다가 나중에는 호텔과 레스토랑에만 집중했다. 대신 식기세척기 외에 물 준비장치, 세척제, 관련 서비스 등을 함께 공급했다. 단순 식기 세척기 제조사에서 고객의 그릇과 유리잔을 깨끗이 씻는 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함께 공급하는 기업으로 타깃팅을 분명히 한 결과였다.

한국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을 넘어 ‘히든 챔피언(초우량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좁은 내수 시장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자사 제품(서비스)을 단순히 해외에 내다 파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우선 자사 시장을 ‘좁고 깊게’ 정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규모는 약 400조원 정도로 거대한데, 히든 챔피언들이 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10조원이 채 안 된다. 대기업들이 자리잡은 시장에 끼어드는 대신, 자기 나름대로 정의한 ‘자사 시장’에만 집중한 것이 생존 경쟁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시장을 정의했다는 것은 ‘자사가 집중하는 고객이 누구인지’ ‘수익을 내려는 시장이 어디인지’를 구체화했다는 뜻이다.

기술을 개발할 때도 핵심은 좁은 범위의 고객을 깊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단순히 매출의 어느 정도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는 식의 금액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한계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해당 기술을 원하는 고객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담당하게 되는 직원들은 히든 챔피언의 결정적인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강소기업 연구로 유명한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은 히든 챔피언의 내적 힘을 조사한 결과에서 전체 79.5%가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심’을 꼽았다고 했다. ‘직원들의 자질’은 72.9%, ‘직원들의 근무의욕’은 72.7%였다. 그만큼 직원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 기업들은 업무 성과에 따른 보상에 인색하지 않다. 한 직원이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며, 회사는 직원을 믿고 일을 맡기는 분권화가 보편적이다. 규칙에 의한 통제보다는 직원들의 창의력이 존중된다. 직원들의 연간 이직률은 2.7%로 매우 낮다.


일본 프린터 제조사 브라더는 소규모 사무실, 홈오피스에 특화된 제품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 브라더


기술과 경영 이어지려면 세제 개선돼야

더불어 중견기업의 가업 승계 관련 세제가 개편돼야 한다. 현재 가업상속공제제도에 따르면,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기업이 최대 500억원 한도 내에서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혜택은 매출액 3000억원을 넘는 순간 제로(0)가 된다. 중견기업의 상속·증여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인 50%에 달하며,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율(30%)까지 합치면 최고세율이 무려 65%에 달한다. 상속세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기업들은 세금을 내느라 기업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가업 승계를 ‘기술과 경영의 대물림’이 아닌 ‘부의 대물림’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매출 규모에 따라 혜택 절벽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한국에서 이 제도를 이용해 공제받는 건수는 연간 50여건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저도 까다로운 사후관리를 받아야 한다. 피상속인은 가업 승계를 받은 뒤 10년 동안 가업상속재산을 처분할 수 없으며 업종 전환이 안 되고, 상속 당시 고용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박상근 세무회계연구소 대표는 “세대 교체 시 이중과세로 인해 중견기업의 노하우와 기술이 사장(死藏)될 수 있다”며 “가업 승계 세제 혜택을 받기 위한 사전·사후 요건을 완화해 많은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0~80년대 창업해 한국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중견기업들이 세대 교체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기업 경영의 성숙기(성장세가 최고조에 이른 시기) 내지는 쇠퇴기에 속해 있다. 재도약하기 위해 혁신이 필요한 시기다. 그러나 상속세 문제에 매여 다음 단계의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투자 활동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매출 3000억원 이상 기업은 혜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공제를 받기 위해 기업 규모를 지속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경영자들의 ‘기업가 정신’이 위축되는 점도 문제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장은 “20~30년 이상 된 기업은 일자리 창출, 납세 능력 등이 평균을 넘어서는 등 경제적으로 기여하는 바가 큰 만큼 유연한 제도를 통해 대(代)를 이어 경영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4대째 이어온 ‘미래엔’ 출판 한류로 성장 지속


미래엔의 학습 만화 백과 ‘브리태니커 만화 백과’ 시리즈. / 미래엔

5월 3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업력 70년에 4대째 대를 이어오고 있는 교육출판기업 미래엔을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했다.

명문장수기업이 되려면 45년동안 주된 업종 변화 없이 사업을 유지해야 하며,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조세 납부 의무를 다해야 한다. 중기부는 올해부터 선정 대상을 매출액 3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까지 확대했는데, 그 첫번째 선정 기업으로 미래엔이 선정된 것이다.

미래엔은 1948년 ‘대한교과서’로 설립돼 국내 최초로 교과서를 발행했으며 참고서·출판 시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해 경쟁력을 집중했다. 2001년부터는 아동 출판 브랜드 ‘아이세움’의 ‘살아남기’ ‘보물찾기’ ‘내일은 실험왕’ 등 학습문화 시리즈를 미국·프랑스·일본·중국 등 14개국에 본격 수출하기 시작했다.

2016년 5월 기준으로 누적 판매 수는 5000만부, 연간 평균 수출액은 200만달러(약 21억6000만원)를 웃돌고 있다. 전체 매출액은 1819억원(2016년 기준)이다.

미래엔은 또 미국 백과사전 전문기업 브리태니커와 합작으로 2015년 11월부터 학습 만화 백과인 ‘브리태니커 만화 백과’ 시리즈를 선보이고, 콘텐츠를 인정받아 중국·대만으로 저작권을 수출하고 있다.

장우정 기자, 김승일 파이터치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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