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마 올릴라 CEO가 노키아를 이끌었던 1992~2006년은 노키아의 폭풍 성장기로 꼽힌다. <사진 : 블룸버그>

기업의 흥망성쇠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이는 바로 최고경영자(CEO)다. 노키아의 흥망성쇠도 CEO에 따라 달랐다. 요르마 올릴라(Jorma Ollila)가 노키아를 이끌었던 1992~2006년은 폭풍 성장기로 꼽힌다. 올릴라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그는 휴대전화 이외의 사업 대부분을 정리하며 ‘휴대전화 왕국’ 노키아를 건설했다.

그러나 올릴라를 이은 후임 CEO 두 명은 노키아 몰락의 주범으로 언급된다. 바로 올리-페카 칼라스부오(Olli-Pekka Kallasvuo)와 스티븐 엘롭(Stephen Elop)이다. 칼라스부오는 스마트폰으로 변화하고 있는 휴대전화 패러다임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노키아의 휴대전화 부문을 매각하며 MS의 ‘트로이 목마(스파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1 | ‘핀란드 경제 대통령’ 요르마 올릴라
(1992~2006년)

“휴대전화가 소수의 사무용품에서 다수의 생활용품으로 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여기에 집중하겠다.” 요르마 올릴라가 1992년 노키아 CEO에 오르며 던진 경영 방향이다.

이후 올릴라는 제지·고무장화·컴퓨터·가전 등의 사업을 팔아치웠다. 이를 통해 만든 자금을 고스란히 휴대전화 사업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2년 동안 그룹 직원 수가 약 1만8000명 줄었다. 일부 언론에선 그를 두고 ‘가혹한 칼잡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노키아의 문어발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통신 분야에만 매달리는 것은 위험하다’는 내부 반발도 컸다. 그때마다 올릴라는 “통신과 함께 살거나 죽는다”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동시에 젊고 능력 있는 내부 인재를 중심으로 경영진을 새롭게 구축했다. 보다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휴대전화 시장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올릴라의 전략은 주효했고, 1998년 노키아는 경쟁사인 모토롤라를 제치며 휴대전화 시장 1위 업체로 올라섰다. 그가 CEO에 오른 후 6년 만의 성과였다. 이후 올릴라는 ‘핀란드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다.


2 | 회계 전문가 올리-페카 칼라스부오
(2006~2010년)

올리-페카 칼라스부오는 2006년 노키아 CEO에 올랐다. 그는 법률·회계 전문가로 CE

O 선임 전까지 노키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활동했다. 칼라스부오는 무엇보다 ‘비용관리’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재무 중심의 경영 원칙은 도전과 혁신이 중요한 휴대전화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노키아의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 시장이 형성되기 바로 직전인 2004년 모토롤라는 휴대전화 ‘레이저’를 출시했고,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노키아 투자자들은 “경쟁사가 기능이 별로 없는 휴대전화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데, 노키아는 하이엔드(high end) 스마트폰에 집착한다”며 경영진을 비판했다. 당시 노키아는 통화 기능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는 휴대전화(피처폰)는 결국 수익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 미래 성장동력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육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판매량이 미미했고, 실적이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칼라스부오는 투자자들의 비판을 의식, 2006년 피처폰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스마트폰 사업부를 피처폰 사업부로 통합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 수익성이 높은 피처폰 사업부가 스마트폰 사업을 좌지우지하는 사업 구조를 만들었고, 결국 조직이 시장과 고객의 요구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후 노키아는 2007년을 정점으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칼라스부오는 2007년 애플이 스마트폰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도 그 위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칼라스부오는 당시 “아이폰은 조크(joke) 같은 제품이고 시장에 먹히지 않을 것”이라며 여전히 피처폰 사업에 집중했다. “우리가 정한 것이 표준”이라고도 했다. 이 말로 그는 2018년 현재까지 기존 성공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몰락한 기업을 이끈 리더의 표본으로 유명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칼라스부오가 스마트폰 시장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피처폰 사업을 강화한 것을 두고 “치명적인 전략적 오류”라고 평했다. 칼라스부오는 2010년 스마트폰 사업 부진의 책임을 지고 노키아 CEO에서 물러났다.


3 | 첫 외국인 CEO 스티븐 엘롭
(2010~2013년)

“노키아는 지금 ‘불타는 플랫폼(burning platform)’ 위에 서 있다. 얼음 바다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노키아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영입된 스티븐 엘롭 CEO가 2011년 2월 노키아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엘롭은 “애플 등 경쟁사가 휴대전화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며 우리의 시장을 빼앗아 가고 있다”며 “이제 회사를 바꾸기 위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전자에 밀려 창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1980년 노키아(법률 고문)에 입사, 내부 출신 CEO인 칼라스부오가 휴대전화 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면 엘롭은 그 변화를 읽고 전략을 짰다. 그는 캐나다 출신으로 노키아의 첫 외국인 CEO다. 노키아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MS에서 비즈니스 사업부 책임자로 일했다.

우선 엘롭은 노키아의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심비안’ 사업을 정리했다. 대신 MS의 OS ‘윈도폰’을 노키아 스마트폰 전용 OS로 채택했다. 독자적으로 스마트폰 OS를 개발하던 전략을 바꾸고 MS와의 제휴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생산업체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OS를 지닌 구글과 연합, 스마트폰 시장을 창출한 애플에 맞서고 있었다.

그러나 엘롭의 선택은 노키아 휴대전화 판매 급감이란 결과를 낳았다. MS의 OS를 장착한 노키아의 최초 스마트폰이 출시되기까지 10개월이란 시간이 걸렸고, 이 기간에 소비자는 사라질 운명에 처한 심비안이 탑재된 노키아 휴대전화를 구매하지 않았다. 그 결과 노키아는 2012년 23억유로(약 3조4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07년 말 38달러(약 4만800원)를 웃돌던 주가는 2012년 초 5달러(약 5300원)대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엘롭은 MS에 휴대전화 부문을 아예 매각했다. 2013년 9월이었다. 시장은 이 인수·합병(M&A)을 두고 ‘패자들이 뭉쳤다’ ‘큰 시너지를 내지 못할 것이다’라는 냉소적인 평가를 했다. 당시 노키아의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4%대였고, MS의 스마트폰 OS 시장 점유율 역시 3%대로 저조했다.

엘롭은 2013년 노키아 CEO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MS로 자리를 옮겨 MS의 휴대전화 사업부(노키아 기기·서비스 부문 부사장)를 맡은 것이다. 이런 그의 행보 때문에 시장에선 ‘PC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MS가 스마트폰 시장을 노리고 노키아를 먹기 위해 엘롭을 파견했다’는 ‘엘롭게이트’설이 나돌았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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