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북서쪽으로 130㎞ 떨어진 미오베니. 이곳에 위치한 ‘다시아’공장에서 생산한 자동차가 트럭에 실려 출하되고 있다. <사진 : EPA 연합뉴스>

‘루마니아’라는 나라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과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다. 어둡고 음산한 느낌이 드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차우셰스쿠가 비참한 최후를 맞은 뒤 루마니아는 민주화됐고, 친서방 정책을 추진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다.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왈라키아 공 블라드 3세가 비록 공포정치를 일삼기는 했지만, 오스만제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려 한 영웅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드라큘라’ 소설의 배경이 된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화사하고 전원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블라드 3세가 살던 브란성(城)은 2016년 할로윈데이를 맞아 에어비앤비를 통해 70년 만에 투숙객을 받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동유럽 국가 중에서도 루마니아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루마니아는 이름(Romania)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고, 로마인이 옮겨와 살았다. 272년 로마군이 철수한 후에도 로마인들 대부분이 남았고, 원래 이곳에 살던 다치아(Dacia) 민족과 섞여 오늘날 루마니아 민족의 원조가 됐다. 그래서 다른 동유럽 국가와 달리 슬라브계가 아닌 라틴계 민족이고 언어도 라틴계 언어를 쓴다.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은 루마니아의 201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1만372달러로 추정했다.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는 2만3990달러다. 경제는 빠르게 성장해 5년 뒤인 2022년엔 1인당 GDP 1만4586달러, PPP 기준 3만169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는 2017년 루마니아 경제가 5.5%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했고, 올해 경제 성장률은 4.4%로 예측했다.

루마니아는 1인당 GDP는 적지만, 28개 EU 회원국 가운데 일곱 번째로 많은 2000여만 명의 인구를 보유한 나라이므로 내수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 또 EU 시장과 러시아, 터키를 연결하는 동유럽의 요충지여서 2007년 EU 가입 이후 외국인 투자가 계속 유입되고 있다.


과거 중·동부 유럽 최대의 자동차 생산국

경제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는 산업은 자동차다. 자동차 산업은 루마니아 GDP의 12% 정도를 차지한다.

루마니아는 냉전기에 중·동부 유럽에서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과 함께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89년 혁명 이후 자동차 산업은 쇠퇴했고, 1990년대 민영화 실패로 자동차 업체들이 파산했다.

2000년대 이후 루마니아에서 자동차 생산은 포드와 르노가 주도하고 있다. 르노는 1999년 루마니아 자동차 회사 다시아를 인수했다. 저렴한 인건비와 재료비 절감 등을 바탕으로 한 중저가 브랜드로 해외에서도 꽤 인기가 높다. 생산한 차량의 90% 이상을 34개국에 수출한다. 내수 시장에서도 30% 이상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가격대가 낮은 차량이 주력이지만 영업이익률은 10%대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저가형 자동차 브랜드로 평가받는다. 자동차 업계는 글로벌 경쟁이 워낙 치열해 영업이익률 5~6%만 돼도 선방한 것으로 보는 편이다.

포드는 2008년 과거 대우자동차 소유였던 루마니아 공장을 인수해 이곳에 진출했다. 진출 이후 120억달러(약 12조8400억원)를 투자했다. 지난해엔 2715명의 직원에 976명을 추가로 고용해 새로운 차종 생산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외에 폴크스바겐, 스코다, 오펠 등도 많이 수입돼 팔린다. 현대와 도요타도 판매 순위 10위 안에 들어간다.

코트라에 따르면 2009년부터 루마니아 자동차 시장은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20년 시장 규모는 200억유로(약 25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엔 루마니아에 등록된 자동차가 전년보다 6.2% 증가한 547만578대를 기록했다. 2017년 1~9월 자동차 판매 대수는 37만8424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했다. 자동차를 보유한 비율이 낮은 편이어서 꾸준히 판매가 호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생산량은 2005년 19만5000대에서 2015년 38만7000대로 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기준으로 루마니아엔 600여 개의 자동차 부품업체가 20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160억유로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2025년까지 자동차 부품 산업 규모는 연간 200억유로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루마니아 자동차 산업의 매력은 저렴한 임금이다. 2016년 기준으로 자동차 산업 분야 평균임금은 연간 7700유로(약 986만원)로 EU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설 ‘드라큘라’에 배경으로 등장하는 브란성. <사진 : 브란성 홈페이지>

스타트업도 성장 이끌어

과거 유럽에서 루마니아에 대한 인식은 ‘가난한 나라’였고, 노동자들은 고임금 일자리를 찾아 선진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루마니아는 2007년 EU에 가입했지만, 영국은 급격한 노동자 유입을 우려해 7년간 이민을 제한하다가 2014년에야 규제를 해제했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루마니아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루마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 중 하나고 인적자원 수준도 높다. 공산권에 속해 있을 때의 영향으로 루마니아는 수학과 과학, 기술 분야가 우수하다. 루마니아어는 슬라브계 언어가 아닌 라틴계 언어여서, 루마니아인들은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와 같은 비슷한 언어를 배우기에 유리하다. 루마니아에서 외국 TV 프로그램을 방영할 때 더빙하는 대신 자막을 달기로 한 결정이 외국어 능력 향상에 도움됐다고 한다.

게다가 루마니아의 초고속 인터넷 속도는 싱가포르, 홍콩, 한국,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빠르다.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데다 교육 수준이 높고 인건비도 저렴해 IT 기업이 아웃소싱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

웨어러블 기기를 만드는 미국 기업 핏빗(Fitbit)은 2016년 루마니아의 스마트 워치 브랜드 ‘벡터 워치’를 1500만달러(약 160억5000만달러)에 인수했다. 핏빗은 이후 루마니아 직원을 세 배로 늘렸고, 미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조사·개발센터를 수도 부쿠레슈티에 세웠다. 제임스 박 핏빗 최고경영자(CEO)는 “루마니아의 IT 관련 재능은 놀라울 정도다. 게다가 루마니아엔 우수한 대학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에 따르면, 루마니아에서 IT 산업은 15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GDP의 12%를 차지한다. 2025년까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금의 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루마니아 스타트업의 매출액은 총 3840만유로로, 전년 같은 기간(1100만유로)보다 배 이상 증가했다.

손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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