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원인은 역사적 뿌리가 깊다. 유럽 사회의 기원인 로마 제국 당시 브리타니아(영국)는 변방 취급을 당했다. 기원전 55년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를 침공한 후, 영국은 약 400년간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았다. 로마의 점령이 끝난 후 영국에는 앵글로색슨족이 유입됐고, 바이킹이 침입해 로마 통치를 받았던 사람들은 새로운 유입 세력과 통혼하면서 점차 로마식 사고와 생활 방식에서 멀어졌다.

다만 1066년의 노르만 정복 이후 영국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틀 안에서 동질감을 가지고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십자군 전쟁(1095~1291)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 왕실과 귀족들이 선봉에 나서 십자가 깃발 아래 단결해 유럽 연합군을 유럽 대륙 밖으로 최초로 파견했던 사건이다. 이어 영국은 프랑스와 100년 전쟁(1337~1453)을 통해 프랑스를 유럽으로 여기며 적대감을 느끼게 됐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부터 영국에 반유럽 정서가 강하게 생겼다고 평가한다.

그러던 중 헨리 8세와 로마 교황청 관계가 틀어지면서, 급기야 1534년 영국 교회가 로마 교황청에서 분리됐다. 이 사건은 영국의 유럽과의 ‘첫 결별 선언’이었다. 조명진 전 유럽연합(EU) 집행이사는 “영국식 종교개혁은 이미 500여 년 전에 유럽과 단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최초의 ‘브렉시트’로 볼 수 있다”라고 평했다. 이어 가톨릭과 신교 국가 간의 30년 전쟁(1618~48)을 겪은 후 유럽은 더욱 양분됐다. 영국은 식민 패권을 잡은 이후 1815년 프랑스가 워털루 전쟁에서 영국에 패할 때까지 프랑스 통치하에 있던 유럽을 적대시했다.

이어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식민통치를 통해 ‘화려한 고립’을 만끽했다. 유럽이 아닌 세계를 무대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인은 바다 건너 유럽 대륙을 독일군 점령 지역으로 여겼다. 유럽에 대한 공포는 적대감으로 증폭됐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누적된 유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영국 사람의 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하는 EU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심에도 이런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실제 브렉시트 전에도 영국은 EU 회원국이면서도 주변국 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건 유로화 채택 거부다. 영국은 EU 국가였지만, 유로존 밖에 있어 유로화가 아닌 파운드화를 고수했고, EU 내 무비자 여행 관리 체계인 솅겐 지역에서도 제외됐다.


브렉시트로 심화하는 갈등

올해 1월 1일 브렉시트 발효 후 영국과 유럽은 갈등을 겪고 있다. 우선 ‘하나의 영국’을 위협하는 자국 내 분리주의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영국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네 개 연합체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 추진 과정에서 이들 네 개 연합체 간 균열은 더욱 커졌다. EU 잔류를 희망해 온 스코틀랜드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청사에 ‘영국의 EU 탈퇴에 반대한다’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EU 국기를 계속 달기로 했다. 1707년 영국에 병합된 스코틀랜드는 줄곧 분리독립을 요구해 왔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네 개 지역 중 유일하게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90년대까지 테러를 벌였던 무장 조직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U가 브렉시트에 따른 위기를 조기에 수습하지 못할 경우, 한동안 잠잠했던 다른 EU 국가들의 탈퇴 행보가 다시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도 여전하다.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EU 탈퇴를 뜻하는 ‘그렉시트(Grexit)’와 ‘이탈렉시트(Italexit)’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 실제 지난해 7월 이탈리아에는 ‘이탈렉시트당’이 창당했다. 정치학자들은 EU의 가장 큰 공적으로 2000년 넘도록 통합과 분열을 계속했던 유럽에 유례없는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브렉시트로 인해 이런 안정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유럽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유럽은 이미 이런 상황을 긴 역사 동안 많이 겪어왔기에 EU 존립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다만 대규모의 개혁을 겪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속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plus point

[전문가 기고] 김봉철 한국외대 EU연구소장
“브렉시트 이제 시작…새로운 글로컬라이제이션 과제”

김봉철 한국외대 EU연구소장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법학 박사 전 한국외대 국제학부 학부장
김봉철
한국외대 EU연구소장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법학 박사 전 한국외대 국제학부 학부장

2016년 영국의 국민투표와 EU에 대한 공식적인 탈퇴 의사 전달로 진행된 브렉시트는 2020년 EU의 운영에 관한 리스본 조약에 근거한 탈퇴 협정이 발효되면서 구현됐다. EU와 영국은 ‘새로운 무역과 협력에 관한 협정(New EU-UK Trade and Cooperation Agreement)’을 체결해 2021년 1월 1일부터 적용했다. 소문만 무성하던 브렉시트가 이제 진짜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U와 영국 사이에 체결된 이 협정은 무역의 자유화를 위한 자유무역협정(FTA) 수준이 아니라, 경제·사회·환경·해양수산 분야에서 양측의 새로운 관계 설정과 협력까지도 포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영국에서 효력을 갖지 않으며, EU와 영국 정부 사이의 분쟁은 별도의 절차로 처리한다.

이 협정으로 영국의 경제와 사회가 EU 단일 시장과 EU법의 규제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이제 영국은 유럽 대륙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 생존을 위해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새로운 개념의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이 필요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EU와 영국의 관계는 다소간의 거리를 유지하며 협력 방향을 설정하면서 필요한 분야에서 새로운 관계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영국에는 식민지 지배를 통해 많은 부를 축적했었다는 향수, 독일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EU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감정 등이 브렉시트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여기에 스코틀랜드 등 내부의 독립 움직임과 EU에 대한 정서 등도 탈퇴 논의에서 주제가 됐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브렉시트 이후에도 여전히 영국에 과제로 남아, 국제 사회에서 ‘새로운 영국’을 만드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영국은 기존의 코먼웰스(Common Wealth·영국 연방) 국가들은 물론 한국과 같은 제삼국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자신들만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을 추진하고 있다. 한·영 FTA가 대표적인 사례다. 양국 정부는 일찍 이 협정을 준비하며 한·EU FTA 수준의 무역 관계를 유지하도록 설정했는데, 브렉시트 체제가 작동하면서 이 FTA가 발효됐다.

한·EU FTA를 기반으로 한국과 EU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한 것처럼, 한·영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닌 양국의 협력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킬 국제법적 기초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국제연합(UN)이나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무대에서도 영국은 이전보다 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며, EU-영국-한국 사이에는 새로운 협력이 강조돼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EU에도 한국과 새로운 관계 설정 필요성으로 나타난다. 영국이 포함돼 만들어졌던 기존의 한·EU 관계는 새로운 이해관계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결국 브렉시트는 세계에 새로운 ‘헤쳐 모여’를 주문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세계화와 지역화의 합성어)’ 과제를 낳고 있다. 로컬 단위의 경제 활동이 결국에는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글로벌 스케일과 조응하며 그 형태를 새로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럽의 긴 역사를 반추해볼 때, 브렉시트는 반복되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의 한 조각일 수도 있다. 정보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다면 한국에도 충분히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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