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3일 서울 명동 쇼핑가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걷고 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바이러스 조기 종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기 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블룸버그
2월 3일 서울 명동 쇼핑가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걷고 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바이러스 조기 종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기 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블룸버그

위기의 한국 경제가 연초부터 암초를 만났다. 중국발(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2%에 턱걸이한 한국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와 반도체 가격 반등 기대에 힘입은 수출 회복을 발판 삼아 경기 반등 모멘텀을 찾고 있던 한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지난해 한국 GDP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0.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올해 한국 정부의 GDP 2.4% 성장 목표가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1월 20일 국내 첫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이 나온 이후 확진 환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쇼핑, 공연 관람 등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해 내수 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중국을 오가는 항공 노선이 폐쇄되면서 항공·관광 산업도 위축되고 있으며 바이러스 진원지이자 중국 제조업 허브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의 현지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확산하면서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도 늘었다.

수출 경기도 꽁꽁 얼어붙을 조짐이다. 정부는 올해 1월까지 이어진 14개월 연속 수출 마이너스(-)가 2월에는 기저효과와 조업일수 증가 등으로 플러스(+)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 휴무일을 연장한 게 변수가 되고 있다. 내수·생산·수출의 ‘트리플 위기’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밀접히 연계돼 있다. 지난 2003년 중국에서 발생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7년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갈등, 지난해 미·중 무역 분쟁에 따른 경제 충격까지 중국발 쇼크가 일어날 때마다 한국 경제는 몸살을 앓았다.

네덜란드계 금융 그룹 ING와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GDP 성장률이 1% 감소할 때 한국의 GDP 성장률은 0.35%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에 이어 홍콩 0.3%, 태국 0.3%, 일본 0.2%, 베트남 0.2% 등의 순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중국 GDP가 1% 감소하면, 한국 GDP는 0.2%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국내외 연구기관은 잇달아 올해 한국의 GDP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분석기관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2월 4일 보고서를 내고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0%로 낮췄다”라며 “2019년 성장률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루팅 노무라증권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이 지난해 4분기(6%)보다 훨씬 더 낮아질 수 있다”며 “이에 따라 한국 GDP 성장률은 0.4%포인트 하락이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올해 2분기에도 진정되지 않으면 한국의 GDP 성장률이 1분기 최대 0.7%포인트, 연간 최대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03년 사스 사태 당시 한국 GDP 성장률은 0.1%포인트,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0.3%포인트 각각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2017년 9월부터 2년 넘게 하강 곡선을 그리던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당시 29개월(1996년 3월~1998년 8월) 연속 하강 기록을 깨고 역대 최장기 하강기에 진입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른바 ‘L’ 자형 침체다.


“정부가 명확한 메시지 줘야”

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2월 4일 확대 거시금융경제 회의를 주재하면서 “신종 코로나 사태가 조기에 종식되지 못하면 국내외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방한 관광객 감소 △내수 위축 △중국 경기 위축에 따른 수출 감소의 3가지 경로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에 해당하는 체크 리스트를 작성해 매일 지표를 점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주체들에 ‘현재 상황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역 강화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바이러스 전염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데 모든 정책 수단을 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월 3일 신종 코로나 대응 관계부처 장관회의에서 “바이러스 조기 종식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경기 둔화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부정적인 경제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월 4일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경기 하방 압력을 막기 위해 추경 편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자유한국당도 신속한 재정 투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512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을 편성한 정부의 부담감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plus point

대통령이 강조한 수출 반등 전망에도 ‘찬물’

올해 반등이 전망되는 한국 수출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암초를 만났다.
올해 반등이 전망되는 한국 수출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암초를 만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2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연초부터 일평균 수출이 증가로 전환됐다”며 “새해 들어 우리 경제가 나아지고 반등하는 징후들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은 올해 반등을 꾀하는 한국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해 한국 수출액은 전년보다 10.3% 감소해 2008년 금융위기 후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이런 낙관적인 전망은 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 등 양국 무역 분쟁 회복 가능성,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개선 기대,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가격 하락세 진정 등의 예상에 기댄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올해 중국 GDP 성장률 6% 달성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데다 미·중 무역 협상 1단계 합의에서 제시된 중국의 미국산 물품 추가 구매 역시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는 2월 3일(현지시각) “중국 정부의 신종 코로나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로 767억달러(약 91조원) 규모의 미국 제품 추가 구매가 무산될 수도 있다”며 “무역 협상 1단계 합의 이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2월 4일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에 출연해 “신종 코로나 여파로 무역 협상 1단계 합의에 따른 중국으로의 수출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문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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