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처음 방영된 SBS의 ‘불타는 청춘’은 중장년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싱글 중장년 출연자들이 같이 여행을 떠나 1박 2일 동안 노는 것을 담은 관찰 예능이다. 출연자들은 주로 1980~90년대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중년 연예인들로, 김완선·장호일·김국진·김혜림 등이 나왔다. 중장년층 시청자들이 10~30대였던 시절에 인기를 누렸던 ‘추억의 인물’들이 한 프로그램에서 만나 또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그 자체로 방송이 된다.

방송을 시작하던 때만 해도 ‘전성기가 지난 나이 든 연예인들끼리 여행 가는 것을 찍어서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받았다. 그런 시선을 받으며 5년이 흘렀다. 2019년 현재,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던 프로그램들은 사라지고 ‘불타는 청춘’만 살아남았다. 올해 3월에는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출연진들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6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불타는 청춘’은 매주 화요일에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 중 시청률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가장 최근 방송인 9월 3일 ‘불타는 청춘’의 시청률은 6.6%(수도권 가구 시청률 기준)였다. 이날 최고 시청률은 7.8%였다. 이 지표를 봤을 땐 ‘50대 이상이 많이 봐서 시청률이 높은 것이겠지’라는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광고주들이 주시하는 화제성 지표인 2049 시청률(2.5%) 또한 이날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 중 1위였다. 중장년 ‘언니·오빠·누나·형들’의 매력이 젊은 시청자들도 사로잡은 것이다.

‘불타는 청춘’의 연출을 맡은 이승훈 SBS PD를 8월 30일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났다. 중장년 출연자들의 매력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건네자, 무뚝뚝한 얼굴에 금세 웃음기가 스며들었다. 그는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열정적이다. ‘지금 여기(촬영장)에서 동년배 친구들이랑 노는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죽기 전에 언제 또 이렇게 모여서 놀 기회가 있겠느냐’는 태도로, 다들 놀라울 정도로 적극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PD는 이어 “‘불타는 청춘’은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방송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 몰랐다”고 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은 정규 방송으로 편성하기 전 시청자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험적으로 제작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이다.


‘불타는 청춘’은 2015년 처음 방영된 SBS 장수 프로그램이다. 사진 SBS
‘불타는 청춘’은 2015년 처음 방영된 SBS 장수 프로그램이다. 사진 SBS
올해 3월 가수 김완선이 ‘불타는 청춘’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SBS
올해 3월 가수 김완선이 ‘불타는 청춘’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 SBS

프로그램이‘오래 살아남을 줄 몰랐다’고 했다. 그 이유는.
“‘개편 때 사라질 프로그램’ ‘곧 없어질 프로그램’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2016년 정도까지도 그런 소리가 귀에 들렸다. ‘광고가 안 팔린다’ ‘옛날 연예인들, 그것도 개그맨도 아니고 가수나 배우들을 출연시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무슨 재미가 있겠냐’ 같은 말들. 중장년 대상 콘텐츠가 방송 업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중장년에 접어들면서 인구 수는 많다지만, 방송·광고계의 목표 소비자층은 아닌 탓이다. 요즘은 그런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
“‘불타는 청춘’은 ‘룸메이트’라는 프로그램의 설 특집 ‘스핀오프(spin-off·기존 작품에서 파생된 작품)’였다. 룸메이트는 젊은 연예인들이 한집에서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기본 틀로 하되, 연령층을 높이고 같이 사는 것을 1박 2일 여행으로 바꾼 것이 ‘불타는 청춘’이다. 명절에 가족들이 함께 보기 좋은 소재를 찾아 가볍게 시작했다.”

출연자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시청자가 근황을 궁금해할 만한 사람을 섭외한다. 우리 프로그램엔 다른 예능에서 보기 힘든 출연자들이 많이 나온다. 그만큼 섭외에 공을 들인다. 방송에 나와달라고 설득하기가 참 어렵다. 자신이 대중으로부터 ‘잊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몹시 많아서, 방송에 나올 생각이 없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프로그램 출연자들은 보통 6개월에서 1년은 심사숙고한 끝에 출연을 결정한다. 2015년 프로그램을 출범할 때부터 섭외한 분들에게 아직도 나와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어떤 걱정 때문에 출연을 망설일까.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 할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을 한다. 방송을 오래 쉬다 보니 부담감을 가지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세월이 지나 나이 든 본인의 모습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염려하는 것 같다. ‘늙었다’ ‘왜 저렇게 생겼냐’ 같은 악플을 걱정한다. 이제 프로그램의 인지도가 좀 생기다 보니 댓글도 많아졌는데, 출연자들이 이 중에 악플을 보고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아 걱정된다.”

나이 제한은 없나.
“40대 밑으로는 섭외하지 않는다. 우리 프로그램에서 40대 초반이면 막내다(웃음).”

젊은 출연자들과는 다른 중장년 출연자들의 매력은.
“중장년 출연자들이 젊은 출연자들보다 좀 더 편하게, 즐기면서 촬영에 임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방송한다는 의미다. 출연하기 전까지는 무척 조심스럽게 고민하지만, 일단 촬영장에 오면 아주 적극적이다. ‘밤에는 주무시라’고 이야기해도 잠도 안 자고 밤새 이야기를 하면서 논다. 놀다가 인생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울기도, 웃기도 한다. 연출자가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아도 삶의 애환이나 슬픔, 웃음, 감동까지 본인들끼리 놀다가 다 꺼내 보여준다. 연출하는 입장에서 이런 면은 참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1박 2일간 촬영을 다녀오면 3회 분량이 나온다. 혹자는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웃음).”

‘불타는 청춘’의 출연자들은 대부분 ‘싱글 중장년’이다. 출연자들은 프로그램 안에서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며느리·사위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또래들과 우정을 쌓고 여행을 즐긴다. 미디어 속에서 누군가의 엄마·아빠 또는 며느리·사위 역할로만 비쳤던 중장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비튼다.

반면 그간 방송된 중장년층 타깃 예능은 대부분 결혼, 건강, 재테크 등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 주제를 다뤘다. 주로 자녀가 있는 기혼 남녀가 현실에서 이야기할 만한 주제에 대해 연예인 패널들이 나와 각자의 의견을 내는 식이었다. 중년 여성 패널의 남편·시댁 험담과 중년 남성 패널들의 가부장적인 면모가 대표적이다. 이런 장면들은 중장년층에 대한 고루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 불과하다.

출연자들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
“예전에 한 분이 ‘불타는 청춘 촬영 때문에 여행을 가면 상상 속에 있을 법한 젊어지는 마을로 놀러 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남녀가 섞여서 한공간에서 생활하며 가졌던 풋풋함과 설렘을 느낀다는 의미였다. 함께 출연하는 사람들이 나이대도 비슷하고 대부분 싱글이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불타는 청춘’이 장수 프로그램으로 생명력을 이어 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신선함이 있다. 보통 예능 프로그램은 예능을 많이 해본 베테랑 방송인들을 섭외해 방송의 기본 틀을 잡는다. 하지만 ‘불타는 청춘’ 출연자들의 80~90%는 배우 또는 가수다. 예능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국진이 형(개그맨 김국진), 광규 형(배우 김광규) 정도다. 예능인이 거의 없다 보니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방송’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더 신선하고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있다. 심지어 지금은 연예계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직업을 찾은 사람들도 나온다. 최근에 출연한 가수 김민우씨는 지금은 자동차 딜러다(메르세데스-벤츠의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영업부장). 색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동년배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니, 자연스럽게 방송으로 내보낼 만한 깊이 있고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온다.”

출연진들이 형·누나들인데,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이 PD는 38세다).
“나도 나이가 들어 친구들과 저렇게 재밌게 놀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이가 들면 삶의 자극에 무뎌지지 않나. (앞에 있는 커피를 쥐면서) 커피 같은 것도 처음 먹을 때는 신기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점점 좋아하는 것도 별로 없어지고, 가슴 뛸 일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연출할 때도 세월에 무뎌진 마음에 신선한 자극을 주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출연자가 오면 기존 출연자들에게는 공개 직전까지 숨기고, 게임을 통해 맞히게 한다. 처음에는 출연자들이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숨기냐’며 불평했다. 하지만 정작 누가 오는지 정답을 맞히면 무척 뿌듯해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나이가 들며 무뎌진 세포들을 조금씩 살아나게 만드는 건 오히려 이런 일상의 사소함이 아닐까.”


이승훈은 누구?

이승훈 SBS PD는 고려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2006년 CJ ENM의 채널 tvN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당시 ‘재밌는 tv 롤러코스터’의 인기 코너 ‘남녀 탐구생활’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MBC로 직장을 옮겨 ‘나는 가수다’ ‘라디오 스타’ ‘세바퀴’를 연출했다. 2012년 SBS로 이직해 ‘땡큐’ ‘오 마이 베이비’ ‘룸메이트’ 등을 연출했고, 2015년부터 현재까지 ‘불타는 청춘’의 연출을 책임지고 있다.


plus point

콘서트 뛰는 액티브 시니어
소녀 팬 못지않은 열정… “내 가수 보러 가지요”

이민아 기자

5월 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트롯 효 콘서트’ 사진 이민아 기자
5월 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트롯 효 콘서트’ 사진 이민아 기자

5월 5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내일은 미스트롯 효 콘서트’. TV조선에서 방영된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이라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출연한 공연이었다. 콘서트 시작 1시간 전인 오후 4시부터 공연장 근처 교통이 마비됐다. 4시 30분, 가까스로 공연장 앞에 도착했다. 관객들이 한 손에 티켓을 꼭 쥐고 뙤약볕 아래 줄을 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적게는 40대, 많게는 80대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설렘을 감추지 못하는 밝은 표정이었다.

공연장 2층에서 내려다본 관객석은 인파로 빈틈없이 빼곡했다. 인기 아이돌 콘서트에 버금갔다. 공연이 시작되고, 차세대 트로트 스타로 거듭난 미스트롯 우승자 ‘송가인’이 등장하자 관객들은 공연장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콘서트에서 만난 최미연(60)씨는 “노래를 따라부르고 응원하다 보면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대중 문화 콘서트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중장년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찾아다니고 팬클럽에 가입하는 등 10대 소녀 팬 못지않은 열정을 보인다. 5월 4·5일 이틀 동안 열린 ‘미스트롯 콘서트’는 1만4000석(하루 7000석)이 매진됐다. 서울을 시작으로 광주, 천안,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에서 공연이 계속됐고 매진 행렬도 이어졌다.

3월 30일 열렸던 ‘불타는 청춘 콘서트’도 6000석이 ‘완판’됐다. 방송 5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콘서트에는 김국진·강수지 부부의 진행으로, ‘불타는 청춘’에 출연했던 양수경·김완선·김도균·신효범·김혜림·015B·구본승 등이 나왔다. 이들은 모두 과거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중장년 연예인들이다. 콘서트의 모든 것을 끊김 없이 보게 해달라는 시청자 요구가 빗발치면서, SBS는 이례적으로 콘서트를 편집 없이 통째로 120분간 방영하기도 했다.

‘미스트롯’이 낳은 ‘중장년 아이돌’ 송가인 팬카페의 활동도 심상치 않다. 송씨는 한 방송에서 “무명 때는 140명 정도였던 팬카페 인원이 지금은 3만 명 정도가 됐다”고 밝혔다. 송가인 팬카페 ‘어게인’은 여느 아이돌 가수의 팬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송씨가 방송 촬영을 하는 날이면 도시락 '조공'도 불사한다. 조공은 팬 문화의 일부로,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활동 현장에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의 선물을 보내는 행위다. 촬영 현장 관계자들의 몫까지 많게는 100인분의 도시락을 챙긴다.

이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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