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Jim Rogers) 예일대 역사학, 옥스퍼드대 대학원(철학·정치경제 전공),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짐 로저스(Jim Rogers)
예일대 역사학, 옥스퍼드대 대학원(철학·정치경제 전공),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 대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에게 인터뷰 요청 이메일을 보낸 건 지난해 성탄절 아침(한국시각)이었다. 답변을 기대하기 어려운 시기였지만, 과거 인연(3년 전 전화 인터뷰를 했다)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로저스 회장은 1969년 스물일곱 나이에 ‘헤지펀드 제왕’ 조지 소로스와 함께 글로벌 투자사인 퀀텀펀드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1980년까지 12년간 3365%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며 월가를 뒤흔들었다(같은 기간 미국 증시 성장률은 50%였다). 가족과 함께 2007년 싱가포르에 정착한 그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강연과 투자자문,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약 두 시간 후 로저스 회장이 “전화 인터뷰는 가능하다”며 “언제가 좋겠냐”고 물어왔다. 올해 각각 16세, 11세 된 늦둥이 딸을 둔 로저스 회장이 소문난 ‘딸바보’란 것을 알기에 가족과의 모처럼 휴식을 방해한 것 같아 미안했다. 가능한 일정을 보냈더니 저녁 무렵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을 메일로 보내왔다. 가족과 휴식을 즐기기 위해 서둘러 답변을 써주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했더니 이틀 뒤 다시 추가 답장이 왔다. 답변 내용 중 일부를 강조하고 더 자세히 설명한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반기에 증시와 경기 안정을 위해 (중국과 무역전쟁에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겠지만, 경기가 계속 나빠질 경우 미·중 무역전쟁은 하반기에 훨씬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 것”이란 내용이었다. 재선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트럼프 입장에서 경기 하락의 원인을 대외적인 요인으로 돌릴 수밖에 없으리라는 설명이다.

그로부터 사흘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방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매우 좋은 통화를 했다” “(미·중 무역 협상에서)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해 투자자들을 들뜨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들어 취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모닝컨설트가 지난해 12월 21~23일 유권자 199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은 39%에 그친 반면 부정적으로 본 비율은 56%에 달했다. 로저스 회장의 예상대로 트럼프의 트위터 발언이 정치적 계산에 따른 ‘제스처’에 불과한 것인지, 하반기에 미·중 무역전쟁이 더 심각해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올해 미국과 세계 경제 흐름을 어떻게 전망하나.
“미국 경제의 현재 상황은 나쁘지 않은 정도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전에 없이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 기준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면서 유지한 억지스러운 상황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경기 냉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경기는 이미 한참 전부터 위축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앞으로 몇 년 동안 경기가 나빠질 것이다.”

자산 버블의 붕괴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걱정할 만한 상황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도 과도한 부채였다. 그런데 그때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부채가 다시 큰 폭으로 늘었다. 또다시 대규모 거품 붕괴 사태가 발생한다면 내 평생 경험해 본 적 없는 최악의 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임시직·파트타임 비율의 증가 등 세계적으로 고용의 질이 저하되고 있는 현상도 우려할 만하다.”

지난 10여 년간 초저금리를 기반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가 2019년 이후 새로운 위기의 뇌관이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07년 167조달러였던 전 세계 부채 규모는 현재 247조달러(약 27경6343조원)로 급증했다. 총부채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320%에 달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경제에 미칠 여파는.
“두 나라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무역전쟁의 여파는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경제가 전반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모두에게 큰 재앙이 닥칠 것이다. 지지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트럼프는 상반기에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화적인 조처를 하겠지만 큰 효과는 없을 것이다. 경기가 계속 나빠지면 트럼프 입장에서 외부로 원인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무역전쟁이 하반기로 갈수록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의 영향은 어떨까.
“셧다운 여파는 아직 미미해 보인다. 어차피 별다른 일정이 없는 연말·연초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간이 더 길어진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 경제를 전망한다면.
“중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와 그 이외의 지역 경제가 과도한 부채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유로존의 경우 브렉시트 협상과 이탈리아 예산안 문제 등 지정학적 갈등 요인도 산재해 있다. 브렉시트 협상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더라도 영국과 유로존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는 남북관계가 변수다. 남북 간의 평화 정착은 한국의 방위비 절감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다.”

당신의 투자 원칙을 간단히 설명해 달라.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투자해선 안 된다. 현금과 채권 등 투자 수단에만 매몰될 필요가 없다. 자산으로 보유하거나 투자의 매개가 되는 화폐 종류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투자 수단을 잘 선택해 돈을 벌었더라도 환차손을 보게 된다면 결국 실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예를 들어 5년 전에 일본 엔화 보유 비율을 높였다면 이후에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화폐를 잘 선택해 묻어두면 돈을 벌 수 있다. 경기 하락 국면에서는 달러의 매력이 커진다. 달러가 예전만큼 확고한 안전자산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전히 매력적인 투자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투자는 어떨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해 생각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우리가 아는 모든 걸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지만 암호화폐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말이다.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도입을 검토한다면 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민간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정부보다 똑똑하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총자루를 쥔 건 정부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영국에선 금과 은은 물론 설탕과 조개껍질까지 화폐로 통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영란은행이 자체적으로 공인한 화폐 외에 다른 것을 화폐로 사용하면 ‘반역죄(treason)’로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상황이 정리됐다. 암호화폐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부정적인 경기 전망이 지배적인데 금 투자도 유망하지 않을까.
“위기가 오면 정부와 정부 발행 화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자연히 금과 은 등으로 관심이 옮겨간다. 혹시 금 가격이 온스당 1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면 많이 사두는 게 현명할 것 같다(1월 2일 현재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1316.10달러).”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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