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부터 이틀간 방문한 ‘뉴스페이스 유럽 2018’ 콘퍼런스장의 열기는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우주 산업에 대해 토론하며 이 ‘판’에서 돈을 벌 궁리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다닌 시내와 근교는 가는 곳마다 공사장이었다. 어느 길로 들어서도 십중팔구는 새건물을 올리고 있었고, 가는 곳마다 대형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시민은 “경제가 살아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룩셈부르크는 한국과 여러모로 비교할 게 많은 나라다. 프랑스와 독일, 벨기에 사이에 낀 지리적 특성상 1000년의 역사 내내 외세의 침략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숱한 점령을 당했다. 산업 기반 시설이 없던 가난한 농촌 나라였지만 철강·금융 산업 육성을 통해 지금은 1인당 GDP 1위의 강소국으로 우뚝 섰다. 서울 면적 4배, 남한 인구 10분의 1에 불과한 이 나라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코노미조선’은 룩셈부르크의 우주산업 추진 사례를 통해 경쟁력을 살펴봤다.

지난 11월 우주 산업계에 신선한 소식이 들려왔다. 구글 래리 페이지가 공동 창업한 미국의 우주 광산 회사 ‘플래니터리 리소시스’가 지구 대기권 밖 수분 탐사용 소형 위성을 자체 개발해 발사한 것이다. 소행성 광물 채굴을 향한 의미 있는 첫 걸음이라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같은 시각, 플래니터리 리소시스의 도약에 웃음 짓고 있는 나라가 있었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 룩셈부르크 정부다.

2016년 룩셈부르크 정부는 플래니터리 리소시스에 2800만달러(약 315억원)를 투자하며 ‘우주 광산’ 정책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그로부터 1년 후 에티엔 슈나이더 룩셈부르크 부총리 겸 경제부 장관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세계 최대 민간 우주 콘퍼런스 ‘뉴스페이스 2017’에서 우주 산업을 국가 경제 정책으로 삼는 ‘우주자원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슈나이더 부총리는 “법을 만들고 규제를 완화해 룩셈부르크를 우주 자원 탐사 중심지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점 1│치밀한 전략

정부의 발표는 단순한 투자를 넘어 국가의 ‘미래 먹거리’로 우주를 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사실 룩셈부르크 정부는 공식 발표 이전부터 우주 산업 추진을 위한 제도적 발판을 마련해오고 있었다. 실제로 기업이 소행성에서 채굴한 우주 자원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유럽우주청(ESA)과 연구 협약도 체결했다.

“금융업 외 다른 산업으로 조세 회피처를 다각화하려는 꼼수”라는 일각의 비판에도 우주 산업 육성책은 일관성있게 추진되고 있다. 올 9월 룩셈부르크 우주국(LSA)을 창설하자마자 자국에 법인을 설립한 우주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1억유로(약 1280억원) 규모 펀드도 조성했다.


강점 2│잘하는 것에 선택과 집중

‘우주에 떠다니는 소행성에서 니켈, 백금 같은 희귀 광물을 캐내와 돈을 벌겠다’는 룩셈부르크 정부의 구상은 처음부터 화제를 몰고왔다. 미국 나사(NASA)나 막대한 자금력을 등에 업은 미국의 민간 기업 일부가 뛰어들어 추진하고는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관련 기술은 물론 우주 산업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전력이 없는 유럽의 소국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는 점이 이목을 끌었다.

이런 의아함에 대한, 룩셈부르크 현지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들의 대답은 명쾌했다. 1950~60년대 철강 산업으로 다져 놓은 ‘채굴’ 경험과 199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한 ‘위성’ 산업 분야 경쟁력을 더하면 ‘우주에서 광물을 캐는’ 우주 광산 산업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철강 회사 ‘아르셀로미탈’과 세계 2위 위성 운영 회사 ‘SES(Société Européenne des Satellites)’가 모두 룩셈부르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룩셈부르크 정부의 우주 산업 접근법은 철저히 ‘경제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독자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핵심이 ‘우주 산업이 룩셈부르크에서 클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LSA가 경제부 산하에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또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자체 펀드를 조성하거나 유럽투자은행(EIB)등 유럽연합 본부와 보다폰 등 민간 기업과 협력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지원은 현지에 법인을 설립해야 받을 수 있다. LSA에 따르면 현재 4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우주 기업들이 현지에 자리를 잡고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분야에서 창출되는 수익 20억유로(약 2조6000억원) 대부분은 위성회사 SES에서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우주 산업 생태계 조성을 우선 순위에 두고 추진하고 있다. 각국의 인재와 기업을 끌어모아 룩셈부르크의 경쟁력으로 키워내고 있는 것이다.


강점 3│끝없는 미래 먹거리 고민

“소국인 룩셈부르크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한발 앞서 혁신해야 한다. 세계 인재들이 모여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이유다.” (에티엔 슈나이더 부총리)

룩셈부르크는 과거부터 치밀한 전략을 토대로 빠른 산업 구조 전환을 통해 살아남은 나라다. 1970년대 국민들을 먹여살렸던 철강 산업이 오일쇼크 등으로 쇠퇴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금융 개방 정책을 펼쳤다. 정부가 세제 혜택,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나선 덕분에 금융업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18년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에 달할 정도로 크다.

그러던 룩셈부르크 정부가 우주 산업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 것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나라 경제가 흔들리면서다.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금융업을 대신할 신산업 육성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김승조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나라 지도자들은 미래 먹거리에 어마어마하게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공 가능성보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주 스타트업 딥스페이스인더스트리 관계자는 “작은 나라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큰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마크 세레스 LSA 국장은 “‘잘하는 것을 찾아 집중한다’는 명확한 목표와 전략을 세워 나온 것이 우주 정책”이라고 말했다.

송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