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바스카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학사, 옥스퍼드대 브룩스국제센터 객원연구원, 디지털 콘텐츠 기업 ‘카넬로’ 발행인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마이클 바스카
영국 옥스퍼드대 영문학 학사, 옥스퍼드대 브룩스국제센터 객원연구원, 디지털 콘텐츠 기업 ‘카넬로’ 발행인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마이클 바스카(Michael Bhaskar) 옥스퍼드핸드북 시리즈 공동편집장이 쓴 책 ‘큐레이션(curation)’이 나온 지 2년이 흘렀다. 수많은 정보·상품이 쏟아지는 과잉 사회에서 선택의 과잉 문제에 직면한 사람에게 ‘이제는 덜어내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외친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화제가 됐다. 432쪽 분량으로 큐레이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한 그는 출간 이후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의 큐레이션 전략을 컨설팅했을 뿐 아니라 글로벌 콘퍼런스와 해외 유수 대학의 심포지엄에 초청돼 강연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옥스퍼드대가 있는 대학도시 옥스퍼드에 살면서 일주일에 두 차례 구글의 인공지능(AI)연구소 ‘딥마인드’의 컨설턴트 자격으로 런던에서 일한다.

2년이 지난 지금 바스카 공동편집장은 ‘2018 책의 해’를 맞아 ‘콘텐츠 과잉 시대, 북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주제로 강연하기 위해 한국을 다시 찾았다. 매년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출판 시장에서도 독자의 취향에 맞는 책,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줄 책을 찾기 위해선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강연을 하루 앞둔 11월 28일 서울 광화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국내 매체들과의 미팅이 30분 단위로 줄지어 잡혀 있었다. 앞쪽 매체와의 얘기가 길어져서인지 약속했던 시각보다 30분쯤 지난 다음에야 만날 수 있었다. 바스카 공동편집장은 “정보와 새로운 제품, 서비스가 나오는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지면서 ‘큐레이션’의 필요성도 덩달아 커졌다”며 “우리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이 큐레이션의 대상이 됐고 우리 모두 ‘큐레이터’가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큐레이션의 가치와 개인·기업의 생존전략에 대해 물었다.


사회에서 큐레이션이 중요해진 이유는.
“이전까지 큐레이션은 예술계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일에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한 단어였다. 1990년대부터 사회 곳곳에서 큐레이션이란 단어를 활발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달로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사회 전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잉’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생겨나면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불행해졌다. 모든 것이 과잉이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주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됐고 이런 상황이 사람들을 짓누르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마다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늘어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과거 ‘더 많이 생산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서 벗어나 ‘더 좋게 만드는 것’ ‘개별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선택하고 추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과잉 공급에 압도된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더하기’보다 ‘덜어내기’가 중요해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큐레이션을 잘할 수 있나.
“큐레이션 대상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추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창업 초기 스포티파이는 많은 음악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3000만~4000만 곡의 선택지를 만들고 사용자들의 음악 감상 목록을 살펴보던 이 회사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용자들은 수천만 곡의 선택지를 두고도 항상 듣던 곡만 듣는다는 것이었다. 스포티파이는 음악 전문가와 DJ(disk jockey·음악 선곡으로 청취자를 이끌어가는 사람)를 고용하고 음악 자동 추천 서비스를 위한 알고리즘 개발에 나섰다. 수천만 명의 가입자가 듣는 곡의 패턴을 분석해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추천한 결과, 사용자에게 음악 감상의 신세계를 열어줄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1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 1위 음악 스트리밍 업체가 됐다. 이 기업의 알고리즘은 가입자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데이터가 중요한 건가.
“AI 기반의 기계식 큐레이션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양질의 데이터’가 중요하다. 학습 알고리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선 AI의 반복적인 기계학습(머신러닝)이 중요한데 이때 필요한 것이 데이터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통한 기계식 큐레이션도 중요하지만 최근 중요성이 커진 것은 ‘휴먼 큐레이션(인간에 의한 수동식 큐레이션)’이다. 과거 넷플릭스, 아마존 등 많은 플랫폼 기업이 기계식 큐레이션을 발전시키면서 큐레이션 전문인력을 구조조정했지만, 최근에 전문가들을 재고용하면서 수동식 큐레이션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취향, 관심사 등 데이터에 의존한 추천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이 들어간 창조적인 추천을 위해서는 사람의 큐레이션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외주 인력으로 구성됐던 큐레이션 전담 인력을 자체 인력으로 채워 넣은 것만 봐도 기업들이 휴먼 큐레이션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스포티파이는 DJ를, 애플은 뉴스 에디터(편집자)를, 아마존은 서평 쓰는 사람을 다시 고용하고 있다.”

큐레이션의 단점은 없나.
“기업이 알고리즘을 통한 기계식 큐레이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필터 버블(걸러진 콘텐츠만 소비해 편향된 정보의 거품에 갇히는 현상)’이나 콘텐츠 중복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큐레이션을 통한 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은 편향된 정보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 봤던 것과 비슷한 것만 계속 보다 보니 사람이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나쁜 큐레이션의 예다. 이 경우 ‘이 정보가 큐레이션 된 정보’라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큐레이션은 사용자의 취향이 반영된 익숙한 정보나 제품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대규모 의료 정보 업체의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는 친구가 있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는 방대한 의학 정보에서 유용한 콘텐츠를 선별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큐레이션’이 주 사업 영역이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지난 10년간 업계 주류 기업으로 컸다. 선별된 의학 정보를 원하는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된 사업이 큐레이션인 이 회사의 임원진조차 아직도 더 많은 콘텐츠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적게’인데도 말이다. 큐레이션이 점점 더 많은 산업 영역에서 필수적인 부분이 돼 가고 있지만, 정작 산업 주체들은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 사업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큐레이션과 직접 관련이 있는 회사라면 큐레이션 업무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관련 업무를 하고 있지 않더라도 큐레이션에 대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큐레이션은 현재와 미래 시대를 대비할 기업의 신생 자산이기 때문이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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