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를 강타했던 소식은 중국 동영상 공유 서비스 앱인 ‘틱톡(TikTok·중국명 더우인)’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가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30억달러(약 3조3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번 투자로 바이트댄스의 기업가치는 750억달러(약 84조3700억원)로 늘어 그동안 세계 최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으로 꼽혀온 우버를 제쳤다. 틱톡은 15초에서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영상을 찍고 공유하기를 즐기는 중국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현재 월평균 5억명이 이 앱을 이용한다. 틱톡이 이렇게 많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추천 엔진 덕분이다. 틱톡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의 취향을 파악해 맞춤형 영상을 ‘큐레이션(curation)’해 보여준다.

애플은 2014년 한 해 동안만 큐레이션 관련 업체 세 곳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9월 음악 인식 서비스 앱인 ‘샤잠(Shazam)’을 인수했다. 샤잠은 TV 방송이나 영화에 나오는 음악 등을 들려주면 이를 분석해 영화 제목이나 곡명을 알려준다. 애플은 샤잠이 확보한 고객 데이터와 음악 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큐레이션 기능을 강화해 애플뮤직으로 음원 스트리밍 1위 업체인 스포티파이를 추격하겠다는 계획이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큐레이션 전담 인력 3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지금 상태로는 페이스북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데이터 중 폭력적이고 부적절한 게시물을 걸러내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골라내 추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하루 동안 페이스북에서 생산되는 데이터는 약 27억개로, 600(테라바이트)에 달한다.

이러한 글로벌 IT 공룡들의 움직임은 전 세계 플랫폼 기업들이 ‘큐레이션’에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 기업은 큐레이션 관련 기업 인수·합병(M&A), 기술 투자, 전담 인력 고용 등의 방식으로 큐레이션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큐레이션

큐레이션이 뭐길래 이토록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큐레이션은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선별과 배치를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려내는 기술을 말한다. 과거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만 쓰였던 개념이 이제는 언론과 패션, 인터넷 쇼핑을 비롯해 금융·유통·여행·음악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로 작용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대학생 추다솜(27)씨의 일과를 살펴보자.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추씨는 조모임 과제로 자료조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유튜브에 들어간다. 요즘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 검색창에 ‘Z세대’를 입력하자, ‘Z세대는 무엇이 다른가’라는 16분짜리 강연에서부터 5분짜리 ‘Z세대 테스트’, Z세대를 직접 만나 그들을 분석한 30분짜리 다큐멘터리까지 다양한 영상이 검색됐다. 하나를 클릭하자 화면의 오른쪽에 또 다른 Z세대 관련 영상이 추천됐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관련 영상을 보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추씨는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가면서 음악 스트리밍 앱인 멜론을 실행했다. 특별히 생각나는 노래는 없지만 음악을 듣고 싶어 ‘포유(For U)’ 메뉴를 눌렀다. 포유는 멜론이 회원 개인의 음악 재생이력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시간·장소·상황(TPO)에 맞는 음악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다. 멜론은 추씨가 오전에 종종 인디 밴드 ‘어쿠스틱 콜라보’의 잔잔한 음악을 즐겨들었던 이력을 바탕으로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곡을 추천했다.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추씨는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열어 넷플릭스를 켰다.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었던 추씨에게 넷플릭스가 공포영화 ‘리추얼: 숲속에 있다’를 추천했다.

평소 그가 스릴러·공포물을 즐겨봤던 습관을 분석해 그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꼽은 것이다. 만족스럽게 영화감상을 마치고 노트북을 끌려는 찰나에 추씨의 눈에 또 다른 추천영화가 들어왔다. 추씨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일 딱히 특별한 일정이 없다는 걸 떠올리곤 ‘재생(play)’ 버튼을 눌렀다. 침대에서 편안하게 영화 몇 편을 내리 감상하던 그는 잠시 전자시계를 바라보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오늘도 밤을 꼬박 새워버렸네.”

추씨의 하루는 오늘날 ‘큐레이션’이 우리 일상을 얼마나 파고들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튜브가 추씨가 검색한 ‘Z세대’에 맞춰 동영상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이어 관련 영상을 우선순위에 맞춰 선별해 보여준 것과 멜론의 음악 추천, 넷플릭스의 영화 추천 서비스가 모두 큐레이션 기술에 속한다.

IT 업계는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산출되는 정보의 양이 하루에 2조5000억MB(메가바이트) 이상이라고 추산한다. 정보의 생성 속도도 매년 60%씩 증가하는 추세다. 날마다 새롭게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때문에 수많은 선택지 중 덜어낼 것을 덜어내고 개인에게 딱 맞춘 정보를 찾아주는 큐레이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데이터가 정보가 되기 위해서는 문맥(context)에 맞게 분류·구조화돼야 한다.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개인별 맞춤형 추천을 하는 기능이 바로 큐레이션이다. 이 정보가 제대로 된 사람에게 제공됐을 때에야 비로소 가치 있는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책 ‘큐레이션’의 저자 마이클 바스카 옥스퍼드핸드북 시리즈 공동편집장은 “모든 게 넘쳐나는 정보·제품·서비스 과잉사회에서 더 많고 더 좋은 콘텐츠를 추구했던 기존의 방식은 성공전략이 아니라 실패전략이 됐다”며 “양질의 콘텐츠만을 선별·조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큐레이션’이 콘텐츠 기업들의 최선의 전략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큐레이션 기술이 중요해진 배경에는 콘텐츠 비즈니스 생태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 생산자라고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콘텐츠를 생산하고 직접 유통까지 했다.


큐레이션, 콘텐츠 생태계 변화로 급부상

언론사가 뉴스를 생산해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독자에게 제공했고, 영상이나 음악을 만든 업체가 각자 만든 콘텐츠를 홍보하고 판매했다. 그러나 콘텐츠 생산자가 다양해지면서 중간에서 이러한 콘텐츠를 모아 소비자에게 제공해주는 플랫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콘텐츠를 한데 모아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혔고, 한 공간에서 손쉽게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글, 네이버, 다음 등 각종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플랫폼 그리고 스포티파이, 멜론, 애플뮤직, 네이버뮤직과 같은 음원 스트리밍 업체 등이 바로 플랫폼 사업자들이다. 수많은 콘텐츠를 한데 모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해 소비자 개개인에게 맞춰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기술을 적극 도입하며 사용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더 좋은 큐레이션 기술로 소비자 편의를 높일수록 더 많은 사용자가 몰렸다. 이 사용자를 잡기 위해 생산자들도 플랫폼에 몰렸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주도권이 생산자에서 플랫폼 사업자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큐레이션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큐레이션 기술의 중요성을 깨달은 플랫폼 사업자들은 사활을 걸고 기술 고도화에 나섰다. AI 큐레이션의 절대강자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1997년 DVD 우편 배송으로 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취향에 맞는 영상 콘텐츠(드라마·영화)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세계 최대 온라인 스트리밍 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우 정교하게 세분화된 넷플릭스의 영화 카테고리는 2014년에 7만6800여개를 넘어섰다. 이 카테고리는 ‘가장 세련된 콧수염이 등장하는 영화’ ‘방학에 볼 만한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와 같이 아주 구체적이다. 넷플릭스의 범주화 작업에는 전 세계에서 1000여명 이상의 직원과 첨단 알고리즘 시스템이 투입되고 있다. 연구·개발(R&D)과 기술 관련 투자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 바스카 공동편집장은 “넷플릭스는 고객별 맞춤 선별 콘텐츠를 제공하는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통해 규모를 늘려 성공했다”며 “정교한 추천에 만족한 사용자는 결국 넷플릭스 생태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아마존 역시 큐레이션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현재 아마존 매출의 30% 이상이 이 추천 시스템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큐레이션 전략은 초창기 책에서부터 현재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으로 확대됐다.

아마존은 1990년대부터 편집자들이 직접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추천하는 수동식 큐레이션 전략을 폈다. 이 방식은 1990년대 말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의 정책에 따라 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1998년부터 AI 전문가가 개발한 알고리즘이 제품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고객별로 개인화된 제품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교한 알고리즘이 인간의 큐레이션을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아마존 편집자의 대부분은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은 다시 인간에 의한 수동식 큐레이션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한 기계식 큐레이션 방식이 통찰력에 기반한 취향을 선보인다거나 독특한 관점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아마존 내 큐레이션 페이지인 ‘캐노피’ 창업자 브라이언 암스트롱은 “소비자들은 수동식 큐레이션 방식에 내재된 큐레이터의 생각을 인지하고 그 가치를 알아본다”며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에 의한 큐레이션과 알고리즘에 의한 자동 큐레이션 방식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플랫폼, 데이터 양에서 뒤처져

공격적인 투자로 큐레이션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글로벌 IT 업체들과 달리 한국의 큐레이션 현황은 많이 뒤처져 있다. 국내 플랫폼 1·2위 사업자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AI 개발 인력을 채용하고 큐레이션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등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업체들과 비교하면 사용자 데이터 양에서부터 차이가 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AI 알고리즘 기술은 특정 기준치를 적용해 데이터를 계속 걸러내는 방식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데이터가 많을수록 더욱 정교해진다”며 “결국은 큐레이션의 질을 높여 사용자를 모으고 그들이 플랫폼에 오랫동안 체류하게 함으로써 다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의 IT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만큼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을 따라잡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시각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국내 플랫폼 업계는 AI, 기계학습(머신러닝) 등 큐레이션에 필요한 최고 수준의 기술을 구현해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며 “앞으로 추천 기술을 보다 정교화해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글로벌 사용자들을 끌어들여 이들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플랫폼 기업의 사업모델에 구조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유튜버들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를 늘려 광고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네이버나 카카오도 콘텐츠 생산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창록 경북경제연구소 원장은 “개인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엔 플랫폼에 좋은 콘텐츠가 많아야 사용자가 모인다”며 “콘텐츠 생산자에게 물질적·비물질적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플랫폼 사업자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eyword

큐레이션(Curation) 넘쳐나는 콘텐츠 중 양질의 콘텐츠만을 선별·조합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재창출하는 것

plus point

패션 산업도 큐레이션이 대세

수천 가지 의류 중 다섯 가지를 추천하는 스티치픽스의 제품. 사진 스티치픽스
수천 가지 의류 중 다섯 가지를 추천하는 스티치픽스의 제품. 사진 스티치픽스

패션 업계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넷플릭스가 사용자의 시청 기록을 분석해 좋아할 만한 영화와 드라마를 추천하듯, 고객의 구매 기록과 취향을 파악해 옷을 추천한다. 제품에 따라 20달러를 내면 인공지능(AI)과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고객에게 맞는 스타일링 아이템 다섯 개를 원하는 날짜에 보내주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선택하면 나머지 제품은 무료로 반품받는다.

스티치픽스의 패션 큐레이션 서비스는 수천 가지 의류 제품의 홍수 속에서 옷을 고르는 데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니즈를 정확히 충족시켰다. 한 번 옷을 주문한 고객의 재구매율은 85%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은 9억7700만달러(약 1조원)로 4년 만에 12배 이상 늘었다.

‘파페치(Farfetch)’는 전 세계 부티크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최고 제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이다. 호세 네베스 파페치 최고경영자(CEO)는 아마존이 미국 유통 시장을 장악한 후 소형 유통 업체가 줄줄이 폐업하는 것을 보고 명품 부티크를 운영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 사업을 시작했다. 부티크란 소규모 회사나 가게 주인이 디자이너가 만든 의류·소품을 선별해 판매하는 매장이다. 파페치는 전 세계 700개 부티크가 온라인으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와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다.

파페치의 강점은 고도화된 큐레이션이다. 파페치 직원이 전 세계 40개국에 머물면서 감각적인 부티크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협업한 다음 홈페이지에 올릴 제품을 고른다. 부티크 주인과 파페치의 전문 큐레이터가 두 차례의 큐레이션을 진행하는 셈이다.

plus point

국내 최초 큐레이터에게 수익 나눠주는 동영상 서비스 앱 ‘아잇’

곰앤컴퍼니가 지난 10월 출시한 동영상 공유 서비스 앱 ‘아잇(AIT)’은 사용자가 구독 중인 영상 중 맘에 드는 영상을 골라 주변 사람과 공유하면 보상을 한다. 아잇에서 영상 여러 개를 선택해 카카오톡 등 SNS에 공유하고 메시지를 받은 사람이 영상을 시청하면 공유자인 큐레이터에게 2~20원가량의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다.

곰앤컴퍼니는 ‘Z세대가 SNS 등을 통해 영상을 공유하면서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 서비스를 만들었다.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각종 디지털 기기를 접해 디지털 문화와 친숙하다.

김조한 곰앤컴퍼니 아잇사업팀 이사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유튜버가 자신의 채널 구독자를 늘려 광고수익을 얻는 것처럼 큐레이터에게 수익이 돌아가게 하면 어떨까란 생각에서 이런 서비스를 만들게 됐다”며 “양질의 콘텐츠가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콘텐츠 생산자와 공유자, 플랫폼 기업이 상생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백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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