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균 경북대 전자공학과, 코스닥 상장사 이니텍·이니시스 창업가, 現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경북대 전자공학과, 코스닥 상장사 이니텍·이니시스 창업가, 現 프라이머 대표

“신생 스타트업에 투자한다는 건 어린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직원의 무단결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앱 버튼 색상은 어떤 게 좋을지까지 일일이 챙겨야 하거든요. 그래도 사람만 보고 합니다. 사람만 잘 봐도 돈 법니다.”

‘한국 스타트업 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권도균(55) 프라이머 대표는 스타트업 투자 원칙으로 ‘숫자’도 ‘사업 계획서’도 아닌 ‘사람’을 첫 번째로 꼽았다. 2010년 설립된 프라이머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국내 최초의 액셀러레이터다.

지금은 갓 창업한 스타트업을 투자,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도 원래는 잘나가는 창업가였다. 엔지니어 출신의 권 대표는 1997년과 1998년 이니텍·이니시스 등 5개 회사를 연쇄 창업해 코스닥에 상장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인터넷 상거래가 막 시작되던 때, 고객이 온라인상에서도 돈을 낼 수 있도록 전자지불 중계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당시 만든 이니시스 전자지불 서비스가 아직도 쓰이고 있다.

그는 2008년 두 회사를 매각하며 천억원대 자산가가 됐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후배 창업가를 양성하는 길로 들어섰다. 프라이머는 초창기 스타트업에 자금을 댈 뿐만 아니라 경영 멘토링, 네트워킹까지 돕는다. 8년간 그의 손을 거친 신생 스타트업은 161곳에 달한다. 10~20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패션 플랫폼 ‘스타일쉐어’와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 부동산 중개 플랫폼 ‘호갱노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벤처 역사의 산증인인 권 대표를 9월 28일 서울 강남역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벤처 1세대이며, 스타트업 태동기를 모두 거친 산증인이다.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벤처와 스타트업 둘 다 같은 말이다. 이 역사에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1990년대 말 닷컴(.com) 열풍을 타고 번진 IT 벤처 붐과 2007년 아이폰의 등장과 함께 일어난 모바일·SNS 붐이 그것이다. 첫 번째 열풍 때 인터넷과 PC라는 변화를 타고 네이버와 넥슨, 다음 같은 걸출한 회사가 탄생했다. 두 번째 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모바일 붐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아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시대가 열리면서 창업 환경에 새로운 기회가 많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등장이다. PC에서 모바일로 환경이 변화하면서 모든 서비스가 사람의 동선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 배달부터 모바일 송금까지, 서비스도 다양하다. 지금은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바꾸는 상황이 30~50년간은 지속될 것이다.”

투자할 스타트업을 고르는 기준은.
“사람이다. 창업가들을 많이 만나 보니 성공하는 창업가의 특징은 타깃 고객의 문제 해결을 첫 번째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프라이머 1기 스타트업 ‘스타일쉐어’의 윤자영 대표는 연세대에 강연하러 갔을 때 처음 만났다. 23세 남짓한 여학생이 내게 한 말을 요약하면 ‘패션을 사랑하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식상한 패션지 사진이 아니라 스트리트패션(거리 패션) 사진을 공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30분이 채 안 돼 투자 결정을 했다. 두 번째는 ‘현실에서 통하는 상식적인 사업 모델’이다. 소위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들의 사업 계획서는 매우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 투성이다. 이를테면 조선공학 박사 학위를 가졌다는 한 창업가가 찾아와 반려동물 사진 소셜네트워크 회사를 만들려고 하니 투자해달라고 했다. 사업계획서는 정교했고 논리적으로 완벽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냐고 물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시대 흐름상 반려동물 시장이 유망하다고 생각해 아이템을 만들었다고 하더라. 직접 경험한 것인지, 현실 세계에 제대로 쓰일 만한 것인지를 볼 수밖에 없다.”

투자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가.
“이제 막 설립한 스타트업 창업가를 만나 사업 계획서를 검토하는 게 내 일이다. 공동 창업가로 참여할 팀을 선정하는 것이다. 한 해 1500개 정도의 사업 계획을 듣고 그중 200팀을 실제로 만나본다. 최종적으로 20~30팀 정도를 선정해 팀당 5000만원 정도를 투자한다. 상황에 따라 투자금을 2억원까지 늘린다. 이후 창업가와 자주 만나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20년간 쌓은 창업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것 같다.
“그렇다. 예컨대 회사가 지난 2주간 해온 일, 성과, 마케팅 방식 등을 점검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 다가올 문제, 고민 등에 대해 같이 토론한다. 극초기 스타트업은 사회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솔직히 손이 많이 간다. 직원의 무단결근 대처법부터 앱의 버튼 색상 등 사소한 디테일까지 함께 고민한다. 아이디어나 기술이 좋아도 경영에 실패하면 성장할 수 없다.”

투자한 회사마다 성적이 다를 것 같다.
“보통 성공의 기준을 직원이나 회원이 많아졌거나 매출이 증가하는 등의 외형적인 성장으로 본다. 실제로 벤처캐피털(VC)들은 투자금 대비 10배에서 많게는 20배까지 수익을 내려고 한다. 내 기준은 좀 다르다.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세 배 정도 수익이 나더라도 30년간 꾸준히 살아남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국가 경제의 한 축으로 지속 가능한, 자기 사업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럼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나.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총 다섯 차례 펀드를 조성했다. 2010~2013년 투자를 진행했던 첫 번째 펀드는 지난해 8.6배 수익을 냈다. 스타일쉐어, 마이리얼트립의 성장에 힘입어 수익률이 올해 15배는 될 것으로 예상한다. 웬만한 VC 수익률을 따라잡는 수준이다. 70억원 규모의 네 번째 펀드가 투자한 회사 중 ‘라엘’이라는 곳이 있다. 이 회사 덕분에 원금에 육박하는 수익을 거두고 있다. 또 210억원짜리 다섯 번째 펀드를 조성했다.”

최근 미국에서 VC를 만들었는데.
“프라이머와 미국 실리콘밸리 VC 사제파트너스가 뭉쳐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를 만들었다. 한국의 유망한 스타트업이 세계 시장에 도전하도록 길을 열어주는게 목표다. 5000만달러(약 56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한국과 미국 업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실리콘밸리에 약 7년 정도 머물다가 2년 전 돌아왔다. 미국은 민간 생태계가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물론 미국 정부도 중소기업 창업 지원 정책을 통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다만 차이점은 주도권을 관(官)이 아닌 민(民)이 잡고 있다는 점이다. 생태계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한국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민간 생태계가 자연스레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 자금 지원은 정말 잘하고 있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돼 정부가 무대 위로 올라서는 그림이 아니라 뒤편에서 환경을 만들어 주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공공이 주인공이 되려 하니까 전시 행정으로 가게 되고, 여기에서 비효율이 생겨 창업가가 들러리로 전락한다. 창업가가 주도하는 생태계가 조성되면 자연스레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넘는 스타트업)도 생길 것이다.”

후배 창업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을 때 최소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창업에 도전해보라. 관심 영역을 찾고 이를 실행해보라는 취지다. 창업을 통해 ‘성공’보다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회·경제, 크게는 국가적으로 낭비되는 것들과 비효율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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