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은 ‘1억 총활약 플랜’을 내세워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일본형 고용·전근 제도 등이 맞벌이 부부의 목을 죄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아베 정권은 ‘1억 총활약 플랜’을 내세워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 장려하고 있지만 일본형 고용·전근 제도 등이 맞벌이 부부의 목을 죄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엄마의 일입니다. ‘남녀평등 사회’라든지 ‘아빠 육아’라든지 폼나는 말들을 많이들 하지만 아이한테 있어서는 민폐죠.”

5월 27일 일본에서 한 국회의원의 망언이 나라를 들썩이게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측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리의 발언은 외신을 통해 그대로 해외로 퍼져나갔다. 워싱턴포스트(WP)는 “남성들의 육아 참여가 저조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 말”이라고 전했다.

일본의 맞벌이 가구 수는 인력난에 따른 정부의 여성 취업 권장책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1998년을 기점으로 맞벌이 가구(949만 세대)가 외벌이 가구 수(921만 세대)를 뛰어넘었고, 지금까지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 기준 이 격차는 더 벌어져 맞벌이 가구 수는 1188만 세대, 외벌이 가구 수는 641만 세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업 문화나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일본형 고용 관행을 맞벌이 가구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지목한다.

일본에서는 연공서열·종신고용·정년제로 압축되는 고용 제도가 뿌리 깊은 기업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직원 전체를 임원 후보로 채용하다 보니 장시간 근무도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한국은행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연간 근로시간(2017년 기준)은 1710시간이다. 한국(2024시간)보다는 짧지만 독일(1356시간), 프랑스(1514시간) 등 선진국보다 길다.

전근제도 일본의 맞벌이 가구가 맞닥뜨리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일본 기업에서는 부부 중 한쪽이 전근 조치를 받은 경우 배우자가 경력을 포기하거나 주말 부부생활을 시작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연구소(RIETI)의 조사에 따르면 전근 경험자는 전근의 제일 큰 단점으로 ‘가족과의 생활이 희생된다’를 꼽았다.

일본의 경제 주간지 ‘동양경제’는 6월 9일 자에서 “과거에 만들어진 고용 제도가 아직도 지속되고 있고 이런 ‘일본형 고용’은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육도 맞벌이 부부의 현실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자녀를 키우면서 부딪히게 되는 세 가지 벽으로 △어린이집 보육의 벽 △초등학교의 벽 △중학교 입시의 벽을 꼽는다.

일본의 어린이집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일본 전역의 어린이집 대기 아동 수는 약 5만5000명(2017년 10월 기준)으로 불과 6개월 전인 4월(2만6000명)에 비해 빠르게 증가했다. 지자체가 세금을 쏟아부어 정원을 확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학 전 아동 중에서 어린이집 입소를 신청한 아동의 비율이 2012년 33%에서 지난해 44%까지 상승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맞벌이 학부모는 PTA라고 불리는 학부모·교사연합회에서부터 평일에 진행되는 각종 회의, 면담, 가정 방문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본판 돌봄교실인 ‘방과 후 아동클럽’의 90% 이상이 저녁 7시면 끝나 맞벌이 가정 아동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원 등 사교육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학교 입시의 벽은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으로 진급하자마자 나타난다. 한국과 달리 중학교 진학부터 입시 전쟁이 시작되는 일본의 교육 특성상 명문 중학교 진학은 명문대 진학을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동양경제’는 “도시락 준비부터 통학, 숙제 도움 등 부모의 역할이 커지면서 맞벌이를 포기하는 여성이 많다”고 전했다.


1억 총활약 플랜으로 여성 일자리 정책

아베 정권은 2015년부터 ‘1억 총활약 플랜’과 ‘일하는 방식 개혁’을 내세워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50년 후 일본 인구가 8808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구 절벽 대비책을 세운 것이다. 

실제로 모든 상장사들은 2016년 제정된 여성활약추진법에 따라 여성 관리직과 임원 비율을 의무적으로 공시하고 있다. 또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 근무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단축하는 노동시간단축근무제(時短勤務制度)를 도입하는 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 밖에 일본 공적연금(GPIF)은 여성 친화 정책을 펴는 기업에 연간 1조엔을 투자하고 있다. 2020년까지 펀드 규모를 3조엔까지 늘릴 계획이다.

최근에는 강력한 근로시간 단축법도 제정됐다. 장시간 근로 관습을 개혁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지난달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한 ‘일하는 방식 개혁법’에는 연장 근로시간은 월간 100시간, 연간 720시간까지 제한하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운영하는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plus point

[Interview] 스즈키 요코 미쓰비시 UFJ 선임 연구원
“일본은 사는 곳 근처에서 요양 가능한 시스템 구축”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맞벌이 부부들의 개호(介護·고령자 등을 곁에서 돌보는 것) 문제도 쟁점이 되고 있다. 일본 맞벌이 부부의 개호 부담 현실에 대해 미쓰비시 UFJ 리서치&컨설팅에서 고령자·여성 연구를 하고 있는 스즈키 요코(鈴木陽子) 선임 연구원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일본 개호 현황은 어떠한가.
“2월 기준 일본에서 장기 요양·간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받은 고령자는 640만 명을 기록(후생노동성)했다. 2012년 내각부 취업 구조 기본 조사에 따르면 일하면서 개호를 하는 사람이 290만 명을 넘어섰다. 매년 10만 명 이상이 개호를 사유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

일본에서 개호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와 대책은 무엇인가.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설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거주하던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것도 큰 이유다. 또 부모를 시설에 보내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부는 가능한 거주지 근처에서 개호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별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고, 보험 제도에 방문 간호 등 서비스를 추가하고 있다. 또 육아개호(간호)휴직법에 따라 기업들은 간호를 사유로 한 휴직이나 휴가 등 지원 제도를 만들고 있다.”

맞벌이 직장인들이 개호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기도 한다는데.
“그렇다. ‘일과 개호 양립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과 개호 병행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잘 알아보면 개호 휴직이 법에 따라 지원되고 있고 2016년엔 대상 가족 1인당 3회에 나눠 93일간 개호 휴직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우선 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업은 개호와 일 양립을 지원하는 사내 제도를 충실하게 정비해야 한다. 또 각종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직장 인사 담당자나 지역 센터에서 상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령화로 개호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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