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_22.jpg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라바짜의 교육 시설에서 에스프레소를 뽑아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기원 후 6세기,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에 살던 양치기 ‘칼디’는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염소들은 평소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자세히 보니 입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고 있었다. 칼디는 그 열매를 따먹어 봤더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발견된 커피는 아랍권으로 전파됐다. 교리상 술을 마시지 못하는 무슬림들은 중세에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며 긴 밤을 지새웠다.

유럽에 커피가 전파된 계기는 12~13세기에 일어난 십자군 전쟁이다. 당시 아랍 세계에서 마시던 커피는 유럽의 병사들에겐 ‘사탄의 유혹’이었다. 금지된 음료였지만 사탄에 비유될 만큼 맛과 향은 매혹적이었다. 르네상스 초기 베네치아 상인들은 밀무역으로 커피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보수적인 교인들은 커피가 유행하는 꼴이 못마땅했고, 1605년 교황 클레멘트 8세에게 ‘커피는 이교도의 음료이고, 이교도의 음료는 곧 사탄의 음료이므로 사람들이 마시는 것을 금지해 달라’고 청원했다. 교황은 조사를 위해 커피를 마셨고, 커피에 반했다. 그는 커피를 ‘기독교인의 음료’라고 선포하고 커피에 세례를 내렸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아랍에서 싹 틔운 커피 문화는 이탈리아에서 만개했다. 커피 산지는 아니지만, 커피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카페가 유럽에서 처음 등장한 곳이 베네치아다. 1720년 베네치아에 문을 연 카페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라고 불린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커피도 이탈리아에서 유래했다. 곱게 간 원두에 고압의 물을 투과시켜 추출한 ‘에스프레소’도 이탈리아에서 개발됐다. 이탈리아보다 커피 문화가 먼저 발달한 터키에선 주전자에 물을 붓고 커피 가루를 넣어 센 불에서 저으면서 끓인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한국인이 즐겨 마시는 ‘카페 아메리카노’가 되고, 우유를 넣으면 ‘카페 라테’가 된다. 

한국의 커피 시장에선 ‘스타벅스’ ‘커피빈’ 등 미국 회사가 유명하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커피 종주국 이탈리아는 오랜 역사 만큼이나 커피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전 회장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럽식 커피 문화를 접하고 원두뿐만 아니라 다양한 커피 음료를 판매하는 매장을 구상했다.

254_22_1.jpg
‘카페 플로리안’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 사진 카페 플로리안

 이탈리아에서 양대 커피 명가로 불리는 커피 기업은 ‘라바짜(Lavazza)’와 ‘일리(illy)’다. 라바짜는 이탈리아 최대 커피 제조 업체다. 1895년 루이지 라바짜가 토리노 지방에서 연 작은 식료품점에서 시작해 4대째 이어오고 있다. 1910년 세계 최초로 원산지가 다른 원두를 혼합해 맛을 내는 ‘블렌딩 기법’을 개발해 유명해졌다. 로스팅한 커피를 제공하거나, 분쇄된 커피 제품을 수퍼마켓에서 판매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탈리아 커피 시장의 48%를 차지하고, 이탈리아 2200만 가구 중 1560만 가구가 가정에서 라바짜를 즐기고 있다. 로스팅한 커피를 소비자에게 판매하려면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 라바짜는 1923년 포장 방법을 자체 개발해 본사가 있는 토리노 이외의 지역에도 커피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라바짜의 라이벌인 일리는 헝가리에서 이탈리아로 이주한 프란체스코 일리가 1933년 설립했다. 일리는 1년 뒤 세계 최초의 가압 질소충전 캔 포장을 발명해 특허를 얻었다. 로스팅된 커피를 먼 지역까지 수송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시 1년이 지나 1935년엔 ‘일레타’라고 하는 혁신적인 에스프레소 머신을 발명했다. 그전까지 에스프레소 머신은 증기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했지만, 일레타는 압축 공기를 사용했다. 이 기계는 곧 이탈리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254_22_2.jpg
일본 유후인의 한 카페에서 주인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라바짜는 지난해 9월 밀라노의 유서 깊은 오페라 극장 라 스칼라 인근에 브랜드 최초의 플래그십(최고급) 매장을 열었다. 올해 스타벅스 1호점이 들어설 곳과 가깝다. 라바짜는 300㎡ 규모의 이 매장에서 특별히 블렌딩한 커피와 고급 음식을 제공한다. 일리도 지난해 4월 밀라노 유행을 선도하는 거리인 비아 몬테나폴레오네에 140㎡의 실내 매장과 60㎡의 정원으로 구성된 최고급 매장을 선보였다. 라바짜와 일리의 움직임은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진출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스타벅스는 올해 9월 밀라노 두오모 성당 인근 고풍스러운 옛 우체국 건물에 2400㎡ 규모의 유럽 최대 매장을 열어 커피 종주국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블루보틀 창업자, 도쿄에서 깊은 영감

일본엔 1700년쯤부터 커피가 전래됐다. 나가사키 데지마(出島)에서 네덜란드와 교역을 했고, 이때 커피가 소개됐다. 상인이나 무역업 종사자 등이 아닌 일반인들이 마시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개항 이후다. 최초의 커피 하우스(카페)인 ‘가히차칸(可否茶館)’은 1888년 도쿄에 문을 열었다.

일본은 세계 4위의 커피 시장이다. 하지만 커피 전문 기업의 전망은 밝지 않다. 과거 도토루와 호시노 커피숍이 일본 커피 문화를 개척했다. 한때 커피 전문점은 16만개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오랜 기간 불황을 겪으며 ‘100엔 커피’가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는 커피 전문점 대신 가정에서 커피 소비가 늘어나고 있고,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주도하는 고급 커피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집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실 땐 더 맛있는 고품질의 커피에 지갑을 여는 것이다. 일본 커피 시장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 연속 성장했다. 2017년엔 약간 감소했지만, 시장 규모는 2조9000억엔 수준에 달한다.

커피 시장을 주도하는 트렌드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다. 스페셜티 커피는 지리, 기후, 생산지 등 특별한 환경에서 자란 커피 중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의 평가를 거쳐 기준점수 80점 이상을 받은 우수한 등급의 커피를 말한다. 일본의 커피 시장은 세계 4위이지만, 스페셜티 커피 분야에선 1위다. 스페셜티 커피는 일본에서 수입하는 전체 커피의 6~7%로 추정된다. 10년 전엔 1~2%였던 것이 5배 성장한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다도(茶道)가 발달했다. 커피에도 전통이 접목됐다. 많은 카페가 자신만의 안목으로 원두를 선택하고 직접 로스팅해 정성껏 내려 준다. 스페셜티 커피는 단순히 비싼 원두를 소비하는 게 아니라 커피의 생산부터 제조, 소비까지 전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일본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졌다.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일본, 특히 도쿄의 오래된 커피숍에서 아주 깊은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손덕호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