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스타트업 ‘스타십’이 개발한 자율주행 배송 로봇이 수도 탈린의 구시가지를 달리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스카이프(Skype)와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가 탄생한 나라’ ‘세계 최초로 전자 투표와 전자 시민권 도입’ ‘1992년 초·중·고등학교 코딩 교육 도입’….

유럽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스타트업 강국 에스토니아를 이야기할 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에스토니아의 국토 면적은 4만5228㎢로 남한의 절반 크기에 불과하다. 그나마 절반은 숲이어서 임업이 최대 산업이었던 가난한 나라였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독립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00달러(약 214만원)에 불과했다.

인구는 약 130만명으로 서울의 7분의 1 수준이다. 리투아니아(340만명)와 라트비아(230만명)를 포함한 ‘발트 3국’ 중에서도 가장 적다. 그런 에스토니아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유럽에서 창업 활동이 가장 활발한 ‘핫스팟’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에스토니아에서는 매년 1만개가 넘는 기업이 새로 문을 여는데, 그중 200여개가 창의적 아이디어와 IT를 접목한 스타트업이다. 시딩(seeding·초기 투자) 단계를 넘겨 정부의 관리를 받는 스타트업 수는 2016년 말 기준으로 413개에 이른다. 인구 10만명당 31개로 유럽 전체 평균(5개)보다 6배 이상 많다. 영국(15개)과 독일(8개), 프랑스(8개) 등 강대국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글로벌 벤처 자금도 몰리고 있다. 2006년 569만유로(약 72억7600만원)였던 스타트업 투자금은 2016년 1억343만유로(약 1322억원)로 20배 가까이 늘었다.


세계적인 핀테크 업체 트랜스퍼와이즈의 에스토니아 탈린 사무소 내부. <사진 : 트랜스퍼와이즈>


외국인도 온라인으로 손쉽게 창업

창업 열기가 뜨거운 가장 중요한 이유는 15분밖에 걸리지 않는 간편한 창업 절차다. 200유로를 내고 전자 아이디 카드로 등록한 뒤 클릭만 몇 번 하면 ‘승인’ 통지서가 이메일로 날아온다. 법인세는 없다. 이익을 배당할 때만 20% 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증여세와 부동산 보유세도 없다.

2014년에는 외국인이 에스토니아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회사를 설립하고 은행 계좌를 열 수 있도록 ‘전자시민권(E-Residency)’ 제도를 도입했다.

디지털 혁신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세계 1위 인터넷 전화 업체 스카이프와 세계 최대 개인 간(P2P) 해외 송금 업체인 트랜스퍼와이즈로 대표되는 창업 성공 신화 덕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는 이제 에스토니아 GDP의 7%를, 수출의 14.2%를 책임지는 핵심 산업으로 성장했다. 결과적으로 에스토니아 국민들의 삶도 한결 윤택해졌다. 지난해 에스토니아의 1인당 GDP는 약 1만9600달러로 독립 이후 26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

에스토니아가 단기간에 세계적인 디지털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국가 모습을 갖춘 직후인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프로이센과 스웨덴·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다. 1940년 옛 소련의 16번째 공화국으로 복속됐다가 1991년 독립했다. 독립 당시 에스토니아는 ‘빈털터리’였다. 변변한 인프라도 없었다. 다행히 생존을 위해 하루빨리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국토는 좁고 가진 게 없다 보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짜기가 오히려 쉬웠다. 자연히 ‘신생국가가 살길은 인터넷에 있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독립 직후 핀란드가 아날로그 교환기를 공짜로 주겠다는 것도 마다하고 디지털 교환기를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또 은행 점포를 여는 대신 인터넷뱅킹을 보급하는 데 주력했다.

일선 학교에도 컴퓨터를 보급해 인터넷을 연결했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 접속권’을 기본 인권으로 보장하면서 어디서나 와이파이를 공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디지털화는 에스토니아의 안보에도 큰 도움이 됐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에서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위기감이 높아졌다. 에스토니아 인구 가운데 25%가 러시아계인데, 이들이 크림반도에서처럼 러시아와의 합병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디지털화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GDP의 2%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군사력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에스토니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지출하는 분담금과 비슷한 규모다. 투마스 헨드릭 일베스 에스토니아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에스토니아는 국방비를 한 푼도 지출하지 않는다”고 농을 하곤 했다.


디지털화로 GDP 2% 규모의 비용 아껴

새로운 환경에서 2003년 탄생한 스카이프의 성공은 이후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토양을 더욱 비옥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됐다.

2003년 스카이프를 창업한 사람은 4명의 에스토니아 엔지니어와 스웨덴·덴마크 사업가들이었다. 스카이프는 2005년 미국 이베이에 팔렸다. 매각 대금인 26억달러(약 2조7800억원)는 당시 에스토니아 GDP의 18%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스카이프를 공동 창업한 4명의 에스토니아인 엔지니어는 지분을 팔아 번 2억달러로 앰비언트사운드인베스트먼트(ASI)라는 투자회사를 세워 자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세계적인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트랜스퍼와이즈의 설립자는 스카이프 창립 멤버인 타베트 힌리쿠스다. 트랜스퍼와이즈는 2011년 영국에서 출범해 현재 세계 1위 온라인 송금 서비스 업체로 우뚝 섰다. 기존 은행보다 해외송금 수수료가 최대 10분의 1 정도로 저렴한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늘면서 급성장했다.

스카이프 공동 창업자인 아티 헤일라와 야누스 프리스가 공동 창업한 ‘스타십’도 ‘스카이프의 빛나는 유산’이다. 이 회사는 위성항법장치(GPS)와 센서 기술을 활용해 작은 로봇이 식료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한다. 에스토니아는 물론 미국·영국·독일·스위스 등 16개국에서 시범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는 독일 다임러그룹의 투자도 받았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현재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아카데미’를 설립해 해외 국가의 전자정부 구축을 돕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시스템통합(SI) 업체나 할 수 있는 일을 정부 차원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에스토니아 전자정부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독일을 포함해 26개국에 달한다.

이용성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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